[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한 세상 뜨겁게 사랑하고, 신나게 살라고 하시던 선배님이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는 여행길을 떠났습니다.”
‘영원한 디바’ 故 현미를 보내는 마지막 길은 무거웠다. 화통한 성격으로 모두를 아우른 고인과 함께 하기 위해 수많은 연예계 동료들이 그의 마지막을 지켰다.
11일 오전 전 9시 30분께 서울 동작구 중앙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故) 현미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이날 영결식엔 고인의 조카인 노사연, 한상진을 비롯해 이자연 알리 서수남 문희옥 양지원 남일해 등 동료와 후배들이 함께 했다.
후배가수인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정성 들여 쓴 조사를 낭독했다. 그는 “수많은 별 중 가장 아름답고 큰 별,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셔서 못다 한 꿈을 하늘나라에서 꼭 이루시길 바란다”고 했다.
영결식의 사회는 코미디언 이용식이 맡았다. 그는 “현미 선배님의 데뷔 70주년 콘서트는 하늘나라에서 송해 선생님이 사회를 보는 천국 콘서트가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가수 박상민은 추도사를 통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성량과 예술성,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생각하면 어느 후배도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스타”며 “대스타이자 닮고 싶은 선배님, 대한민국 큰 가수였다”고 말했다. 알리는 “(현미는) 수많은 불후의 명곡을 남겼다. 선배님의 가요계 업적을 후배들이 본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자연, 알리, 서수남, 문희옥 등 가수들은 현미의 대표곡인 ‘떠날 때는 말없이’를 조가로 합창했다. 조가를 마친 이후엔 유가족과 가수들의 분향과 헌화가 이어졌다. 고인의 큰아들 이영곤 씨는 “엄마 미안해. 잘 가. 잘 가야 해. 엄마”라며 오열해, 영결식장엔 아직 고인을 보내기 힘든 유족과 지인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가수 서수남은 헌화하면서 “누나. 오늘은 말이 왜 없나. 사랑한다”라며 눈물을 쏟았다.
고인은 영결식 이후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국내가 아닌 두 아들이 거주하는 미국에서 영면에 든다.
지난 1938년 평안남도 강동군(현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7년 미8군 무대에서 현시스터즈로 데뷔한 이래 1962년 번안곡 ‘밤안개’를 기점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2007년 데뷔 50주년 기자회견에선 “목소리가 안 나오면 모를까 은퇴는 없다. 나이가 80이든 90이든 이빨이 확 빠져 늙을 때까지 ‘밤안개’를 부를 것”이라며 당당한 음악인으로의 삶을 보여줬다. 슬하에 두 아들 이영곤·영준 씨를 뒀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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