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동안 달라진 마약 밀수·밀반입
1달 단속하면…과거 1년치 마약 나와
마약 가격 높은 한국…“해외 마약상들 눈독”
건당 1000만원 받고, 고급차 타며 ‘마약 유통’
일상 파고든 ‘마약 유혹’ “교육만이 살길”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1. 취업 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태국인 A씨는 지난해 태국에 있는 초등학교 동창와 공모해 필로폰과 합성마약 야바 2만여정을 수입했다. A씨 동창은 알루미늄 호일에 마약을 감싼 뒤 마치 육포를 보내는 것처럼 꾸며 국제우편을 보냈다. 이렇게 우편물에 들어있던 마약만 시가로 3억 6000만원어치였다. A씨는 지난해 2심 판결에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2. B씨는 프랑스에서 클럽용 신종마약(MDMA)과 케타민를 밀반입해 지난해 징역 8년형을 선고 받았다. 총 5900여명이 투약 가능한 MDMA마약을 수입한 B씨는 어린이 과자포장지에 숨겨진 마약이 든 국제우편물을 받았다. B씨는 한 번 우편을 받을 때마다 마약상으로부터 280만원에서 450만원을 챙겼다.
최근 전국 법원 판결을 보면 한 달에 한 번 꼴로 해외에서 마약을 밀수해 재판에 넘겨진 사례가 등장한다. 마약의 출처도 다양하다. 태국, 미국처럼 마약 시장이 활발한 국가부터 프랑스,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까지 전세계에 있는 ‘검은 손’들이 한국에 마약을 공급하려 손을 뻗치고 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떠오르는 마약 신흥 시장이기 때문이다.
1달 단속하면…과거 1년치 마약이 우르르
26일 헤럴드경제가 지난 10년간 관세청과 법무부에서 공개한 마약 적발 및 검거 통계를 분석한 결과, 국내 유입·유통되는 마약이 10년 동안 18배 이상 증가하는 등 국내 마약 시장은 급성장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적발된 마약은 총 3만3757g이었으나, 10년 뒤인 지난해는 18배 뛴 62만4451g이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집계된 단속량은 6만4435g이었다. 이제는 1~2달만 단속해도 과거 1년 동안 적발됐던 마약량을 훌쩍 넘는 것이다.
마약이 유입되는 국가도 다양해졌다. 중국, 미국에서 주로 유입되던 과거와 달리 마약 시장이 형성된 전세계에서 한국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난해 국내로 유입된 마약의 출처 비중을 살펴봐도 미국, 중국, 라오스, 태국, 베트남이 16~17%로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국내로 들어오는 마약의 종료도 필로폰(메트암페타민), 야바 그리고 신종 마약 등으로 다양해졌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밀반입하다 적발된 주요 마약류 중에서 필로폰이 50만2905g으로 가장 많았고, 코카인이 43만5720g, 야바가 4만9469g으로 뒤를 이었다. 대마초는 1만1997g로 다른 마약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양이 밀반입됐다.
마약 가격 높은 한국…“해외 마약상들 눈독”
다른 나라가 아닌 유독 한국으로 마약이 유입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한국은 마약상입장에서는 마약판매시 이익을 많이 남길수 있는 국가다. 한국은 과거 ‘마약청정국’이라 할 정도로 범죄자나 특권층 자제 위주로 소비됐다. SNS 등으로 상황이 달라졌지만 미국 등에 비해서는 마약은 여전히, 구하기 힘든 물건이다. 가격 역시 다른 국가에 비해 높게 형성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가격이 대검찰청의 ‘2022년 마약류 월간동향’에 따르면 필로폰 1회(약 0.03g)투약분 가격은 10만원선에 형성돼 있다. 필로폰 1g당 40여달러(우리 돈 5만원대)인 미국에 비해 여전히 높다.
마약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 C씨는 “마약 시세는 들쭉날쭉한 면이 있기에 가격이 올랐다 내렸다 하지만 해외에 비해 여전히 비싼 건 사실”이라며 “마진을 남기기 위해 한국에 진출하려는 마약상이 있다는 말은 어느 정도 신빙성 있다”고 말했다. 이범진 마약퇴치연구소장 역시 "미국이나 태국은 마약 생산국이고, 마약 사범이 많아 마약이 안 비싼 반면 한국은 마약 제조를 많이 하지 않아 태국에 비해 10~20배 비싸다"며 "해외 마약 사범입장에서는 한국에 한번만 유통해도 엄청 남는 장사이니 국내 유입량이 늘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들의 경각심이 적다는 점도 한 몫 했다. 마약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체계적인 교육이나 치료 시설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김현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팀장은 “해외나 국내 마약상들이 국내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며 “마약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해외에서 마약이 밀려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제도 개선에 팔을 걷었지만, 상대적으로 느슨한 마약 밀수 단속도 마약 유입이 쉬운 이유 중 하나다. 관세청은 최근에서야 마약밀수 단속 종합대책으로 ‘마약밀수 상시단속체계 구축’, ‘마약 등 불법물품 반입차단 중심으로 통관검사체계 전환’,밀한 협업체계 구축’, ‘인력·조직·장비 단속 인프라 근본적인 보강’ 등을 내놨다.
마약 밀수가 상대적으로 쉽고, 판매시 마진까지 높은 한국은, 마약 유통상에게는 매력적인 시장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건당 1000만원 받고, 고급차 타며 ‘마약 유통’
마약이 대거 유입되면서 돈을 받고 마약을 유통하는 범죄도 늘고 있다. 지난해 징역 12년형을 받은 D씨는 고액 알바의 유혹에 흔들려 범죄자가 됐다. 평소 마약 투약을 했던 D씨는 “국제 택배만 잘 받으면 1건당 1000만원씩 주고, 앞으로 마약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말에 남자친구, 친구와 공모해 마약을 밀반입했다. D씨 일당은 4차례에 걸쳐 필로폰 15㎏을 대거 반입했다. 이들 일당이 수입한 필로폰의 시가는 약 16억원 상당이었다.
국내에 있는 외국인이 마약 사범이 되는 일도 빈번히 발생한다. 태국인 E씨는 지난해 태국 내 있는 남성에게 “한국으로 보내는 마약을 대신 수령하면 애인의 빚을 탕감해준다”는 제안을 받고 시가 약 3억원 상당의 야바와 필로폰을 수입했다. 마약 밀수 범죄가 무겁다 판단한 법원은 E씨에게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공항이 있는 인천 지역은 밀수범들이 대거 몰린다. 지난 25일 인천지검에 따르면 올해 인천지검이 압수한 필로폰 양만 44.1㎏이었다. 지난해 전국 압수량(84.6㎏)의 절반을 넘는 수치다. 전국에서 적발된 마약 사범 수도 지난해 1392명으로 크게 늘었다.
불법 경로로 밀수된 마약은 서울 지역의 경우 유흥업소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유통된다. 강남 일대에서 차를 타고 다니며 마약을 유통한 사례도 등장했다. 지난해 관세청에 적발된 운전책의 경우 미국에서 시리얼 상자로 위장해 들여온 대마와 MDMA를 강남 일대에서 유통했다. 불특정 장소에 마약을 놓고 가는 일명 ‘던지기 수법’으로 유통 및 판매를 진행했고, 마약을 판매할 때 고급 슈퍼카를 다니며 강남 주택가를 돌아다니는 대범함도 보였다.
일상 파고든 ‘마약 유혹’ “교육만이 살길”
전문가들은 국내로 유입되는 마약이 늘면서 최근 청소년과 20대를 겨냥한 마약 범죄도 함께 증가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서울 지역 경찰서에서 마약 수사를 담당하는 한 경찰은 “물론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미국이나 태국처럼 길에서 마약을 하는 나라는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아는 사람을 통해 혹은 채팅으로 호기심에 마약을 시작하는 젊은 층이 많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마약 밀수를 사전에 차단하는 일만큼 마약 예방교육도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김 팀장은 “얼마 전 발생한 ‘마약 음료’ 사건의 경우 집중력장애(ADHD)에 좋다며 음료를 권유했는데, ADHD 등 치료제 처방이 쉽지 않다는 정보를 모두가 알고 있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체계적인 마약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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