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혜 작가 작년 ‘로에베 공예상 우승’
2016년 제정이래 한국인 우승은 처음
전통 모티브서 영감 얻어 현대적 재해석
작품 한점 완성까지 꼬박 한 두달 걸리죠
말총. 말(馬) 꼬리털이나 갈기를 뜻하는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조선시대 이 말총을 활용해 갓, 탕건, 망건을 만들어 남성용 머리장식으로 썼다. 터럭 한 올을 마치 실 한가닥처럼 이어붙여 만드는 말총 공예는 제주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번성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단발령과 함께 거의 사라졌고 이제는 소수의 장인에 의해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정다혜(36) 작가는 이 말총으로 바구니 형태의 오브제를 만든다. ‘성실의 시간’이라는 이름의 작업이다. 작가가 처음부터 말총 공예를 전공했던 것은 아니다. 학부에선 조각을, 대학원에선 섬유를 공부했다. 세부 전공을 고민하다 2017년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의 지역 공예마을 사업에 신진 작가로 참여하면서 말총을 만났다.
물론 말총 만드는 것을 배우고 이를 활용해서 자신의 공예 언어로 풀어내기까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압축적 성장’의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19로 오롯이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도움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업은 말총을 한 올 한 올 이어 바느질로 완성한다. 전체적 모양새는 빗살무늬 토기같은 선사시대 항아리를 닮았고, 실들의 짜임새는 단순하지만 심심하지 않다. 짜임 기법과 무늬는 조선 시대 남성들이 쓰던 모자 망건, 방건, 사방관에서 영감을 받았다.
사장 되다시피한 옛 공예의 기술을 활용하되, 현대적으로 변주한 그의 작업에 스페인 럭셔리 브랜드 로에베(LOEWE)도 찬사를 보냈다. 지난해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우승자로 꼽힌 것. 지난 2016년 상이 제정된 이래 한국인이 우승한 것은 정다혜 작가가 처음이었다. 수상 뒤 1년, 헤럴드경제가 정다혜 작가를 만났다. 수상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작가는 “이제는 사람들이 작품을 보면 말총 공예라고 알아봐 주신다”고 답했다. 아래는 일문 일답.
-5월 초 런던 공예주간 참여에, 지난 16일에는 미국 뉴욕에서 올해 로에베 재단 공예상 심사위원도 맡았다.
▶원래 하루 종일 작업만 하는데, 이번 달은 쉬는 기간이 됐다. 런던은 주영한국문화원에서 런던공예주간의 일환으로 열린 ‘Light of Weaving: Labour-Hand-Hours(라이트 오브 위빙: 레이버 핸드 아워스)’라는 전시에 참여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함께한 행사였다. 정부에서도 한국전통공예를 외국에 알리는데 관심이 많다. 일주일 가량은 크롬웰 하우스에서 개인전도 열었다. 뉴욕은 로에베 재단 공예상 심사위원으로 다녀왔다. 전년도 수상자는 이듬해 심사를 하도록 되어있다.
-지난해 로에베 재단 공예상 수상은 본인에게도 좋은 소식이었지만 한국 공예계에도 힘이 나는 뉴스였다.
▶개인적으로도 기쁜 일이었지만, 주변에서 더 좋아하셨다. 로에베는 전통공예를 가져오되,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원한다. 공예상의 목표가 ‘전통을 되살려 현대를 풍요롭게 한다’다. 전통성, 혁신성, 창의성이 키워드인데 내 작업에서 이를 읽어낸 것 같다.
수상했을 때 한 선생님께서 “공예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다면, 말총은 비주류다. 그걸 네가 수면 위로 꺼냈다. 이같은 가능성이 있는 다른 분야가 많은데, 그게 올라 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축하해주셨는데 그게 기억에 남는다. 아직도 한국 공예의 많은 부분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수상 이후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
▶작업하는 것은 똑같다. 이전에도 고군분투하며 작업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하하). 혼자 집에 마련된 작은 작업실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장인들 출퇴근하고 야근하듯이 일한다. 다만 가장 달라진점은 ‘알아봐 주신다’는 것이다. 내 작업을 보고 말총 공예라는 것도 알고, 찾아주는 사람이 많아졌다. 전시 때 보러오시기도 하고. 이전엔 미래가 막막하고 불안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어서 작업을 했다면 이제는 개인전이나 그룹전을 비롯해 명확한 프로젝트를 염두하고 작업한다.
-말총으로 바구니 형태의 오브제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2017년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의 사업에 신진 작가로 참여하면서 말총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다. 말총을 활용한 공예는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선 말총으로 원단을 만들어 양복 심지, 의자 커버 등으로 활용한다. 말총을 꼬아서 만드는 공예는 칠레에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한 올 한 올 고리를 감으면서 꼬아준다. 이렇게 하면 말총의 탄성이 극대화 되고, 입체가 되기에도 적합하다.
원래 입체를 좋아한다. 물건이 공간 안에 들어와서 만들어내는 존재감이 늘 흥미로운 테마다. 말총 공예를 시작하면서 망건과 탕건 짜는 것을 먼저 배웠다. 망건처럼 평면이다가 탕건처럼 입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말총을 스스로 세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체는 자주적이다. 독립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털오라기 하나인데, 그게 입체적인 게 된다. 당시에 나도 그런 입체적인 삶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면서 매달렸던 것 같다.
-바구니 형태는 익숙한 듯 특이하다. 문양도 마찬가지다.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밋밋하지 않고, 또 한국 전통문양이라기 보다 동시대적 미감도 보인다.
▶형태는 리서치를 많이 했다. 삼국시대까지의 유물을 좋아하는데, 투박하고 손맛이 느껴진다. 빗살무늬에서 영감을 얻었다. 말총이 견딜 수 있는 기울기가 있다. 여러 번 실험을 하면서 재료의 성질에 맞게 형태로 다듬어 아교로 마무리한다.
문양은 사실 정말 옛날 문양에서 따왔다. 15세기엔 사방관이라고 네모난 모양의 위가 막힌 모자를 썼다. 사방관의 4면이 모두 다른 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그것을 활용했다. 바둑탕건이나, 능창대군 망건에도 비슷한 물결무늬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민속박물관, 경운박물관, 온양민속박물관 등에서 유물 리서치를 했고, 소개로 어떤 문중에서 소장한 사방관을 조사하기도 했다. 수 백 년전 미감이 지금에도 유효한 건데, 선조들의 혜안이 놀랍지 않나!
-작품 제작에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 같다.
▶보통 한두달을 꼬박 매달려야 한 점을 완성한다.
-정말 ‘성실의 시간’ 이다!
▶그렇다(웃음). 집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아침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작업을 시작한다. 종일 앉아서 손으로 하는 작업이라 점심은 정말 허기만 면할 정도로 가볍게 먹고 저녁까지 일한다. 저녁 식사 후엔 또 잠자기 전까지 계속한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기에 짬짬이 시간 쪼개서 하는 방식으론 원하는 퀄리티가 나오지 않는다. 시간을 통으로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말총 공예를 통해 다양한 형태 실험을 할 예정이다. 지금은 베슬(그릇) 형태의 작업을 주로 하고 있지만 그곳에만 머물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감을 주는 유물이 너무 많다.
이번 영국 전시 때 한 할머니 관람객이 ‘세상이 너를 기다렸다’고 평해주셨다. 무언가 마음을 울리는 포인트가 있었다. 손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존중, 디지털로 뒤덮인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쉽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만진다는 것, ‘촉감’은 인간의 감정과 연결된다. 치유로도 연결되는 공예의 힘을 이제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다.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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