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위자료 청구권 인정
긴급조치 9호 피해자 국가 배상 판결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통상임금 등
미성년 자녀 있는 성소수자 성별 정정
동성군인 사적공간 서 성관계 처벌 불가
[헤럴드경제=유동현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 재임 기간 동안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는 노동, 성소수자 인권, 역사 등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사안에서 비교적 전향적인 판결을 했다.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12명으로 구성된 전합은 대법관 4명이 판단하는 소부(小部)에서 의견이 일치되지 않거나 기존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경우 사건을 심리한다. 전합 판결은 하급심(1·2심)의 기준이 될뿐더러, 시대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가치와 기존 질서가 충돌하는 사안에 대법원이 어느 쪽 손을 들어줬는지를 두고 당시 사법부를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日강제동원 위자료청구 ·긴급조치9호 배상…‘백년전쟁’ 논쟁 캐스팅보터
김명수 전합은 역사 피해자에 대해 배상을 인정하라는 취지의 판결들을 했다. 지난해 8월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긴급조치 9호로 수사나 재판을 받은 피해자와 가족에게 국가가 배상을 해야한다고 판결했다. 이는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이 긴급조치가 ‘고도의 정치 행위’기 때문에 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전합은 당시 경찰, 검사 등 다수 공무원이 관여한 불법행위를 개별로 따질 필요 없이 전체적인 국가작용 아래 국민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인정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대일 배상청구권도 재차 인정했다. 전합은 2018년 “피해자들의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앞서 2012년 대법원이 처음 이 같은 판단을 내렸지만 파기환송심을 거쳐 재상고 되자 김명수 전합이 이를 확정한 것이다. 이후 피해자와 유족 15명이 배상을 청구했지만, 정부가 일본 기업이 아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재단이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안을 내놓으면서 정부와 피해자 간 법적 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이밖에도 전합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을 비판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제재한 2013년 방송통신위원회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백년전쟁은 두 전직 대통령을 친일파로 묘사해 박근혜 정부 당시 진보와 보수 간 심각한 역사 논쟁을 불렀다. 이 사건은 대법관 사이 의견이 6대6으로 갈렸으나 전합 심리 관행상 마지막에 의견을 밝히는 김 대법원장이 ‘제재 부당’으로 판단하면서 사실상 캐스팅보터 역할을 했다.
노동사건 전향적 판결에 ‘친노동’ 비판도
김 대법원장 전합은 노동 사건에서 비교적 ‘친노동 경향성’을 보였다. 상징적인 사례는 지난 5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할 때 노동조합 또는 노조원 과반수 동의를 얻어야한다”는 전합 판결이다. 기존엔 노동자 동의를 받지 못하더라도 취업규칙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유효하다고 인정했지만 45년 만에 판례가 변경됐다.
대법관 7명은 다수 의견으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확정적이지 않고,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지 당사자가 쉽게 알기 어려워 법적 불안정성이 크다”고 이유를 들었다.
법조계에선 기존에도 법원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한 사례가 드물었던데다 첨예한 논쟁도 아니었던 이 규칙을 전합에서 변경한 데 주목했다. 이를 두고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판단하는 판사 재량권 자체를 제한한 판결로 현 대법원의 ‘노동권 존중’ 기조를 볼 수 있는 상징적 사안이란 평가가 나왔다.
이른바 ‘노란봉투법’ 쟁점과 닮은 꼴로 주목받은 현대자동차 노조 손해배상 판결에서는 회사가 노조원에게 불법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물으려면 행위 정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산정하라’고 판단했다. 이 사건 자체는 전합에 회부됐다가 다시 소부에서 판단됐다. 그러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판결이 나온 지 한달 만에 또다시 사회적 관심을 받는 주요 노동사건이 선고되면서 ‘친노동 판결’이란 비판이 거셌다.
이밖에도 2020년 통상임금을 산정할 때 연장·야간 근로시간을 실제 근로시간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근로자의 총근로시간을 산정할 때 지급받은 임금이 아닌 실제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통상임금 산정과 관련 기존 대법 판례를 뒤집은 첫 사례였다. 기존에는 임금의 1.5배를 받는 연장·야간 근로의 경우 근로시간 계산 시 1.5를 곱해왔다. 그러나 실제로 1시간을 근무하면 1시간으로 쳐야한다는 게 판결 취지다. 총근로시간이 줄면 시간급 통상임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근로자에게 유리하고 사용자에게는 불리한 판결이다.
성소수자 불리 판결, 10여년 만에 변경
전합은 지난해 11월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라도 정체성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성별을 정정할 수 있다는 판결도 했다. 이는 미성년 자녀에게 혼란과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등 이유로 금지해왔던 기존 대법원 판례를 11년 만에 뒤바꾼 것이다. 다만 미성년 자녀가 있지만 ‘혼인상태가 아닌’ 성전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인정했다.
동성 군인이 사적 공간에서 합의 하에 한 성행위를 군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도 했다. 군형법 96조2는 “군인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의거해 기존엔 장소나 합의 여부 관계 없이 처벌이 가능했지만 14년만에 대법원이 판례를 변경했다.
dingd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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