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윤현종 기자] 이번엔 다르다. 과거 고유가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승승장구하던 중국ㆍ인도 등 아시아 에너지 부호의 운명이 엇갈리고 있다. 중국은 정권 차원에서 진행 중인 ‘석유방’ 사정광풍과 저유가 기조가 맞물리며 관련 분야 부자들의 기존 구도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인도 석유재벌과 홍콩ㆍ싱가포르 등 동남아 부호들 또한 사업환경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中, 석유방 지고 민간부호 뜨고=지난 4일 중국 정부는 관영언론을 통해 시진핑(習近平)정권이 추진 중인 부패 척결작업의 표적이 된 세력을 공식화했다. 그중 한 무리가 석유방(石油幇)이다. 석유방은 중국 국영 석유천연가스집단(CNPC) 출신 고위 간부들이다. 현재 사법처리 중인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정법위원회 서기가 수장을 맡고 있었다. 그 밖에 장제민(蔣潔敏) 전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주임ㆍ왕융춘(王永春) 전 중국석유 부총경리ㆍ리화린(李華林) 전 중국석유 부사장 등도 비리 혐의로 낙마했다.

석유방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각종 이권과 권력에 개입해 왔다. 중국 사정당국은 저우융캉 가족ㆍ측근 자산 최소 145억달러를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중국 석유시장을 사실상 독점했던 국영기업의 위력은 막대했다. 실제 2010년 기준 CNPC와 중국석유화학공업(시노펙)ㆍ중국해양석유(CNOCC) 등 3개 국영석유업체가 낸 법인세만 중국 110개 국영기업 법인세 총액의 절반에 육박했을 정도다.

이처럼 전 정권의 비호를 받던 석유방이 몰락한 자리엔 현지 민영석유재벌들이 속속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판 포브스인 후룬리포트에 따르면 작년 기준 중국의 에너지ㆍ석유분야 민간부호는 쉐광린(薛光林) 브라이트오일 회장 등 20명, 자산합계는 214억달러였다. 2011년 대비 부호 수는 6명, 자산 합은 279% 늘었다.

당시 서부텍사스유(WTI)와 북해산브렌트유 가격은 각각 배럴당 113.93달러ㆍ126.65달러였다. 2010년 이후 최고점이었다. 이는 중국이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것과 관련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최근 국제유가 하락을 전략 비축유의 확충 기회로 판단하고, 전체 원유 수입량을 크게 늘리고 있다. 중국의 원유 수입량은 사상 처음으로 하루 평균 700만 배럴을 돌파했다. 지난해 기준으로도 전체 원유 수입량은 사상 최대인 3억800만t이었다. 원유 등 석유화학제품의 내수비중이 높아 저유가 기조가 내수 위주인 현지 관련기업 사업성에 도움이 됐다는 의미다. 중국 석유화학산업 자급률은 아직 100%에 못 미친다.

인도 울고 동남아 웃고=반면 인도 석유재벌들의 자산은 초(超)고유가 시절과 비교해 크게 줄었다. 2011년 인도 석유ㆍ에너지부호 4명의 자산은 616억달러였으나 올 1월 현재 358억달러로 사실상 반토막이 났다. 특히 인도 최대 정유회사 릴라이언스의 무케시암바니 회장 등 오너일가 2명의 자산은 33%가량 줄었다. 신년 들어 이 회사의 주가도 큰 폭으로 빠진 상태다.

이는 저유가가 인도경제 전체엔 도움이 되고 있으나 석유화학제품을 수출하는 릴라이언스 같은 정유기업엔 저유가에 따른 공급과잉이 악재로 작용해서다. 과거 고가에 확보한 재고를 소진해야 하지만 수출 비율이 높은 상황에선 이마저 난감해졌단 분석이다. 2012년 이미 인도 석유 정제설비의 일일 생산량은 380만배럴로 국내 수요(일일 340만배럴)를 초과했다.

반면 동남아 석유왕들은 저유가를 새 사업기회로 삼으며 자산을 불리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 싱가포르 최대 오일무역회사인 힌 렁 트레이딩의 림우퀸(71) 창업주는 2011년 이후 자산을 8억4000만달러에서 18억달러로 갑절 이상 늘렸다. 대규모 생산보단 제품거래에 기반하다보니 시장적응력이 빨랐다는 평가다.

림 창업주는 아시아 최대 오일저장고인 유니버설 터미널(Universal Terminal) 지분 65%를 갖고 있다. 아울러 유니버설 터미널은 중국 푸젠성 메이저우 만에 17억 달러를 들여 저장고를 구축하기 위해 사업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는 저유가를 틈타 비축유 확보에 열중인 중국정부의 움직임을 재빨리 포착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