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잊을만하면 되풀이되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민국 엄마들이 뿔났다. 지난 8일 인천 연수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 A(33ㆍ여)씨가 4살난 원생 B 양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인천 뿐 아니라 대한민국 엄마들의 충격과 파문이 커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인천 어린이집 폭행사건에 또다시 분노한 ‘앵그리맘’이 또다시 전국적으로 대규모 실력 행사에 나설 조짐마저 감지된다. 17일 인터넷 카페 ‘송도국제도시 주민연합회’의 회원들은 폭행 사건이 발생한 어린이집 인근 아파트 단지 앞에서 사흘째 폭행 사건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에 나서고 있다.
송도국제도시 주민연합회는 어린이집 폭행 사건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인 대책이 가시화될 때까지 1인 시위와 서명운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18일에는 인천 센트럴공원에서 대규모 집회를 계획·논의할 방침이다.
시위에 참가한 김모(36ㆍ여)씨는 “뉴스에서 보육교사가 여아를 때리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며 “내 아이가 폭행을 저지른 보육교사를 만나지 않았을 뿐이지 이 일은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며 분개했다.
각 온라인 포털사이트 육아커뮤니티도 분노로 들끓고 있다.
B양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행여 내 자식도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에게 폭행이나 폭언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포에서 6살 아이를 키운다는 한 엄마는 “심란한 마음에 애가 집에 오자마자 혹시 친구들이 선생님께 맞거나 심하게 혼나는 것 본 적 있었냐고 물었다”면서 “다행히 아이는 없다고 했지만 불안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어린이집에서 발생되는 아동학대 건수가 매해 100건을 훌쩍 넘고 있다.
통계청이 조사하는 ‘학대피해아동보호현황’의 연도별 아동학대 발생장소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집에서 발생된 건수가 지난 2010년 100건을 기록한 뒤 2011년과 2012년 각각 159건, 135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유치원에서 매해 3~19건 정도, 학교에선 매년 25~67건 발생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높은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자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아이를 믿고 맡길만한 공립 시설은 신청자가 몰려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된지 오래고, 사립은 폭행 사건에다 심지어는 썩은 음식물까지 먹이는 ‘인면수심’의 범죄가 끊이지 않고 터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저출산을 막기 위해 애를 낳으라고 장려하지만, 각종 아동학대 사건에 치솟는 사교육비 부담으로 가뜩이나 아이를 키우기 힘든 마당에, 이젠 믿고 맡길만한 곳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전국 어린이집 4만2830곳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인원이 46만3188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ㆍ공립 어린이집 경쟁률은 더 치열하다. 전국 4702개 국ㆍ공립 어린이집 대기인원은 22만882명으로 민간 어린이집보다 약 7.8배 더 들어가기 힘들다. 맞벌이 부부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국ㆍ공립 어린이집 들어가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라 차선책으로 민간 어린이집을 보낼 수밖에 없는데 사고가 계속 터지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마포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한 워킹맘은 “복직을 할 생각에 3살, 4살 딸을 민간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등록까지 했다가 인천 어린이집 사건을 보고 결국 일년 더 데리고 있기로 했다”면서 “퇴직을 해야하나 고민 중”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맞벌이 부부들의 경우 양가 부모나 아이 돌보미에게 자녀를 맡기는 것도 한계가 있다. 때문에 대부분 아이가 젖을 떼면 울며겨자먹기로 영아 어린이집 등에 보내는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어린이집을 둘러싸고 각종 사고는 물론 아동 학대까지 발생하니,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곳’이 사실상 없는 셈이다.
실제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전국 아동보호기관에는 총 6796건의 아동학대가 접수됐다. 상당수가 부모에 의해 벌어졌지만, 어린이집 학대도 3.0%에 달했다. 아동복지시설 5.3%, 유치원 0.8%, 기타복지시설 0.4%까지 합치면 10% 남짓이 아동관련 시설에서 아동 학대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급기야 ‘차라리 아이를 낳지 말자’는 분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결혼 2년차 맞벌이 부부 김모(31ㆍ여) 씨는 “애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겁이 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세월호 침몰로 수백명의 아이들이 그렇게 간 것도 큰 충격이었는데 잊을만 하면 어린이집 문제가 터지고 있다”면서 “애를 낳아도 제대로 키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직 신혼인 정모(29ㆍ여) 씨도 “이번에 터진 학대사건이 처음도 아니고 잊혀질만 하면 한 번씩 불거지는 문제가 아니냐”며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애만 낳으라는 정부도 무책임하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출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합계출산율은 0.968명으로 나타났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한 명이 평생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를 뜻한다. 즉, 서울에 아이 한 명조차 낳지 않겠다는 부부가 많다는 것이다. 전국 평균도 1.187명으로, 채 두 명이 되지 않는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저출산 현상에 대해 늦어지는 결혼이나 결혼관의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고있다. 특히 결혼한 직장 여성들의 일ㆍ가정 양립의 어려움은 출산을 저해하는 대표적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은 “어린이집 문제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걸 보편적인 현상이라 보긴 어렵지만 자신의 아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은 분명 존재한다”면서 재발 방지를 위한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잊을만 하면 불거지는 보육교사 학대 논란의 원인이 보육교사들의 직업 소명의식 부족과 낮은 처우에 있다고 지적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모든 보육교사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하면 좋겠지만 단순 일이라 생각하고 시작한 경우가 많다”면서 “대부분 임금이나 처우가 좋지 않아 그 때 받는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표출할 가능성이 적잖다”고 말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부모들이 초ㆍ중ㆍ고교의 경우 사립을 선호하면서 유독 어린이집은 국ㆍ공립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서 기인된다. 대부분의 민간 어린이집은 가능한 저렴한 임금으로 일할 수 있는 교사를 선호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교육을 받은 교사보다는 상대적으로 교육이 ‘덜 된’ 교사를 채용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또는 보육교사에 정당한 임금을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현실은 결국 임금 및 처우로 인한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푸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보육교사의 직업 소명의식이 필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제도적 허점도 개선해야 한다. A 보육교사가 일한 어린이집은 최근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육진흥원이 운영하는 어린이집 평가인증에서 만점에 가까운 95.36점을 받았다. 정 교수는 “어린이집 측에서 문제를 감추려들면 얼마든지 감출 수 있다”며 “이보다는 보육교사의 인성 교육을 확대하고, 채용 절차에 인성 검증 등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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