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앞둔 ‘K-푸드’ 의 세계화 첨병 김치…‘어울림’ 정신 담고 21세기 지구촌 가장 ‘핫한 음식’ 으로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는 18세기 중반께 선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농가월령가’(1816년)에는 김치의 필수 양념으로 고추ㆍ마늘ㆍ생강ㆍ파를 소개했다. 반가의 음식에서 점차 대중화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도 19세기 초로 추정된다. 이 즈음 한양 주변에는 배추밭이 많이 들어섰으며,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경성근처의 밭을 가장 좋은 전답으로 꼽았다. 다산은 그 자신 마당의 절반을 떼어내 배추를 심고 매일 들여다보며 애정을 보였다.

김치의 생활화가 이뤄진 건 20세기초에 이르러서다. 재배면적이 넓어져 값이 싸지면서 지역마다 집마다 다양하고 특색 있는 김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김치는 도시락 세대에게는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보리쌀이 몇 개인지 헤아려야 했던 혼식도시락에 도시락 반찬이 시원찮던 시절, 김치는 쉽게 싸갈 수 있는 반찬이었다. 김치는 가방 속에서 뽀글거리며 익어갔고 책과 공책으로 흘러 얼굴을 벌겋게 달아오르게 했다. 김치 한 조각 깐 겨울철 난로 위 도시락의 환상적인 맛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김치는 단순한 반찬이 아니다.

김치는 본질적으로 섞임을 지향한다. 김치에는 새우젓, 갈치젓 등 각종 젓갈과 청각ㆍ무ㆍ파 등 각종 채소와 양념 등 수십 가지의 재료가 들어가 한데 버무려져 맛을 만들어낸다. 이 양념과 배추가 시간과 함께 숙성되면 또 한 번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 유산균덩어리의 건강발효식품으로 태어난다. 김치의 유산균은 요구르트보다 훨씬 많아 약으로도 개발될 정도다.

김치의 이런 어울림의 정체성은 식탁에 올랐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김치는 홀로 자랑하지 않으며, 밥과 다른 음식에 어울려 포만감을 주고 풍미를 더해준다. 특히 고기와의 환상적인 궁합은 고기를 주식으로 삼는 서구인의 입맛마저 빼앗고 있다. 김치는 또한 변신을 좋아한다. 전과 찌개, 국, 볶음, 볶음밥, 김치버거까지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잘 어울려 입맛을 개운하게 해준다.

김장문화에는 바로 그런 김치의 정신이 녹아 있다. 어린 시절, 김장하는 날은 으레 날씨가 궂었다. 눈발이라도 내릴 듯 무겁게 내려앉은 날, 앞집ㆍ뒷집 엄마들은 빨간 고무장갑 한 켤레씩 들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채반 가득 노란 배추가 쌓이고, 착착 무 써는 경쾌한 소리와 수다가 함께 섞여 왁자한 게 잔치가 따로 없었다. 노란 배추에 벌겋게 물을 들이고 속을 꼭꼭 채우다 입이 심심하면 돌돌 만 배추쌈을 저마다의 입에 넣어주던 정겨운 풍경은 이제 아스라하다. 유네스코 위원회는 이런 김장문화를 김치와 함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권고하고 “한국사회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재창조돼왔고 공동체의 연대감과 정체성을 증대시켰다”고 평가했다.

오는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확실시된 시점에서 김치에는 새로운 비전이 주어졌다. 한국이 김치의 종주국임을 천명하는 동시에 그에 걸맞은 위상 재정립이다. 이 과정이 순탄하고 환한 것만은 아니다. 김치 수요는 식문화의 변화와 함께 매년 0.7%씩 줄고 있다. 300여종에 이르는 허다한 김치의 종류도 단일화돼가는 추세다. 여기에 중국 김치 최대 수입국이라는 오명도 김치 종주국이라는 사실을 무색하게 한다. 한식 세계화의 첨병인 김치의 다양화와 함께 품질 향상, 레시피의 표준화, 시대의 창조적 변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21세기 가장 핫한 음식의 자리가 멀지 않다.

이윤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