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김상수 기자]한국은 자동차 강국일까요? 이를 따져보려면 우선 강국이란 말부터 정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상 선진국, 강대국을 말할 때 그 조건은 다양합니다. 경제적인 가치를, 정치적인 가치를, 그리고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 등 다양한 조건을 수반합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자동차 생산국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합니다. 자, 그럼 한국은 자동차 강대국일까요? 자동차 생산국과 자동차 강대국은 무척이나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자동차를 ‘산업으로만’ 보는가에 따라 자동차 강국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를 단순히 타고 달리는, 혹은 사고파는 제품이란 인식을 넘어 삶의 동반자, 즐거움을 주는 문화로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동차 강국이란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을까요. 최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와 폴크스바겐 본사를 취재하며, 취재 기간 내내 생각했던 화두이기도 합니다. 독일을 자동차 강국으로 꼽는 이유, 그리고 한국을 아직 자동차 강국으로 꼽기에 망설여지는 이유.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거대한 규모가 역시나 대단했습니다. 20만㎡라는 숫자보다 실제 취재를 하면서 전시관을 오가니 더 크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입구에 위치한 1관부터 BMW가 자리 잡은 11관까지 셔틀버스가 아니라면 오가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1897년 처음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생겼을 당시에는 상류층 젊은이들이 각자 소유한 진귀한 차량을 뽐내고, 레이스를 펼치면서 한곳에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를 계기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짝수 해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승용차 모터쇼가 열리고, 홀수 해에는 하노버에서 상용차 부문 모터쇼가 열립니다. 역시 그 중 인기를 끄는 건 올해에도 열린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이죠.
올해에도 70여종의 신차가 대거 쏟아졌습니다. 이미 널리 알려졌듯 무인자동차, 전기차 양산모델, 유럽 시장 전략 모델 등 특색있는 신차가 많았습니다. 비록 엄청난 규모 때문에 다리는 아프지만, 그 대신 커다란 전시장에 갖가지 모델을 한번에 볼 수 있다는 건 자동차 기자나 마니아에겐 정말 큰 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70여종의 신차는 하나하나 국내에서도 관심이 큰 모델입니다. 월드프리이어,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신차도 수없이 많고, 특히나 콘셉트카가 아닌 양산형 모델의 월드프리미어도 상당했습니다. 자동차가 모터쇼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자동차만으로도 충분히 모든 이의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죠.
지난 서울 모터쇼의 월드프리미어는 9종입니다. 그 중 트럭, 콘셉트카를 빼고 나면 쌍용차의 체어맨W 개조 모델, W서밋이 유일한 양산차 월드프리미어였습니다. 현대차나 기아차는 사실상 흉내만 냈습니다. 물론 역사나 규모 등에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와 직접 비교하긴 무리가 있습니다. 이미 관람객 수로는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자평하는 서울 모터쇼입니다. 그만큼 국내 자동차 마니아의 수요는 이미 뜨겁다는 방증이죠.
그런 방증에 비해 내실은 여전히 부족해보입니다. 자동차 콘텐츠가 부족하니 그 대신 레이싱걸이 모터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모든 연령층에게, 특히 미래 잠재 고객인 아이들도 함께 즐기는 외국 모터쇼와 달리, 국내 모터쇼는 아이들과 함께 가기엔 좀 민망하다는 반응도 많았고요.
폴크스바겐 본사가 자리잡은 볼프스부르크를 방문해서도 왜 독일이 자동차 강국으로 꼽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폴크스바겐은 볼프스부르크를 하나의 거대한 테마파크로 개발했습니다. 카타워, 파빌리온, 자동차 박물관, 체험 오프로드 코스 등 자동차를 전혀 모르는 이들이 와도 즐겁게 놀다갈 수 있는 곳입니다. 차량을 인도하는 과정도 마치 영화와도 같은 풍경을 연출합니다. 화려한 카타워에서 자동으로 차가 운송되면 가족이 함께 이 과정을 지켜보고, 차 번호판을 달며 새 식구를 맞이하죠. 폴크스바겐 전체 차량 10대 중 3대꼴로 이곳에서 고객이 직접 차량을 받아간다고 합니다. 물론 운송비를 절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특별한 추억을 선사해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쉐보레 레이싱팀 감독으로 유명한 이재우 감독은 20년 동안 국내 레이싱계에서 활동한 인물입니다.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레이싱을 시작할 당시 모터스포츠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경기가 없을 때엔 정비를 비롯해 안 해본 일이 없다”는 말이 계속 머리에 남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상황이 호전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모터스포츠는 국내에선 불모지와 다름없죠. F1을 유치한 국가라는 외형은 갖춰 있지만 콘텐츠는 부실한 상황입니다.
미니카 하나에 함박웃음을 짓는 어린 아이를 보면, 자동차는 분명 제품 그 이상의 매력을 지녔다는 생각이 확고해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자동차 문화는 자동차를 제품으로만 보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물론 자동차 생산국이라는 지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줍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결국 가능성입니다. ‘만년 유망주’에서 그칠지, 이는 앞으로 국내 자동차업계의 노력 여하에 달렸겠습니다. 자동차 개발도상국에서 자동차 강국으로 가는 길이죠.
김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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