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재판에서 중국 공산당이 독재와 자본의 늪에 깊이 빠져있음을 볼 수 있다.중국 공산당이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다. 어떻게 보면 재판정의 피고석에 있었던 것은 보시라이가 아니라 바로 중국 공산당 자체였다.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닷새에 걸쳐 101시간 동안 진행됐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의 재판에서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수수, 공금횡령, 직권남용 등이었다. 공소장에 따르면 보시라이의 비리 규모는 2679만위안(약 49억원)에 달했다.

당초 재판은 이틀, 길어도 사흘이면 끝날 것으로 예상됐었다. 지난해 8월 열렸던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의 재판도 단 하루 만에 종결된 것을 보면 그럴 만했다. 특히 검찰이 보시라이의 비리 금액을 예상보다 적게 책정했고 정치적 혐의도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시진핑(習近平) 정권과 보시라이가 이미 적절한 선에서 타협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었다.

그런데 재판이 열리자 예상을 뛰어넘는 장면들이 계속 연출됐다. 보시라이는 심리가 시작되자마자 혐의를 부인하기 시작했고 재판이 진행될수록 반격수위를 더욱 높여갔다.

보시라이는 이번 재판에서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영웅’을 연기했다. 당에 반항하면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를 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굴복’을 거절했다.

개혁ㆍ개방이 시작된 1978년 이후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실각한 정치국위원급 이상의 지도자는 몇 명 있었다. 장쩌민(江澤民)의 심복이자 상하이방의 선두주자였던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당서기가 지난 2006년 낙마했고, 그에 앞서 1995년 베이징방의 핵심이었던 천시퉁(陳希同) 베이징시 당서기도 축출된 바 있다.

두 사람은 재판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일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각각 징역 18년, 16년 형을 받았지만 건강상 문제 등을 들어 몇 년 후에 모두 감옥에서 나와 낚시나 바둑을 즐기는 편안한 노후를 보냈다.

반면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건으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는 달랐다. 그는 자기가 옳았다고 생각했으며 타협하지 않았다. 당 중앙의 권위에 대항한 그는 베이징 푸창(富强)의 뒷골목에 있는 자택에서 사망할 때까지 연금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의 가족과 비서들도 자유를 제한받았다.

보시라이는 굳이 후자의 길을 선택했다. 아버지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처럼 한때 몰락했던 많은 지도자가 훗날 복당(復黨)이나 복권(復權)되어 화려하게 부활했던 것을 지켜봤던 경험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본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진 것은 없지만 보시라이의 ‘도박’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거대한 격변과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이번 재판에서 보여준 보시라이의 저항은 좌파세력과 자신의 지지 세력을 자극했다. 마땅한 구심점이 없었던 이들은 다시 보시라이를 중심으로 응집할 것으로 전망된다. 응집은 좌·우 노선갈등을 심화시키고 이는 새로운 권력투쟁의 도화선으로 연결될 것이다.

이번 재판을 보면 현재 중국 공산당이 독재와 자본의 늪에 깊이 빠져있음을 볼 수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의 경고대로 이런 식이라면 중국 공산당은 모든 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중국 공산당이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다. 어떻게 보면 재판정의 피고석에 있었던 것은 보시라이가 아니라 바로 중국 공산당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