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tvN ‘꽃보다 할배‘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는 노년들의 서열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서양에서는 나이 차이가 별로 의미가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서열을 정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할배들이 젊은 연기자 사이에서는 선배 역할을 하는 이서진에게 “나이가 몇살이냐”고 묻고 이서진이 나이를 말하자 “우리 반밖에 안살았네”라고 말하면 벌써 분위기로 제압돼버린다.
제작진이 3편에서는 박근형 할배의 ‘센 캐릭터‘가 방출된다고 미리 공지했기에 박근형을 주시했다. 이서진으로부터 ‘그 여자네 집’과 ‘불새‘를 연기할때 박근형이 얼마나 무서운 선생님인지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에 특히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박근형은 센 떡밥을 하나 던져주었다. 박근형은 프랑스 동부 국경지대의 아름다운 ‘쁘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의 잔디 광장에서 이서진이 렌터카 스틱기어를 몰고 할배들을 픽업하러 오면서 헤매는 사이 “최불암이가 늙은이도 아닌데 꼭 늙은이 행세를 하려고... 밥상이니 뭐니 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더라고”라고 말하며 최불암 성대모사까지 했다. 최불암보다 7살이나 더 많은 이순재와 4살이 더 많은 신구가 이를 보고 껄껄 웃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아버지상이자 노년인 최불암 선생님을 놀리시다니...
박근형과 최불암은 40년생, 만73세로 동갑이다. 박근형이 8일 먼저 태어났다. 하지만 데뷔는 박근형이 63년(KBS 공채 3기)으로 최불암보다 4년이나 앞섰다. 둘의 역할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대표적인 노안인 최불암은 30~40대에도 일치감치 중년 아버지, 아저씨, 초노의 할아버지 역할을 많이 맡았다. 하지만 젊은 시절 한국의 알랭 드롱이었던 박근형은 영화, 드라마, 사극, 현대극을 오가며 당대 최고의 여배우와 스킨십이 있는 연기를 펼치며 화제의 중심에 서있었다. 비중에서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
나이가 들며 최불암은 더욱 인자하고 토속적인,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이미지를 굳혔다면 박근형은 연기자로서 엄밀함과 꼼꼼함을 추구하는 대배우로서의 중후함을 풍긴다. 이런 사람들이 장난치듯 대화하는 그 모습만으로도 재미있다. 만약 여기에 최불암이 실제 출연해 와있었다면 어떠했을까?
박근형은 드라마계에서는 가장 무서운 연기선생님으로 통한다. 이제는 그의 선배가 별로 없다. 이순재, 신구와 오현경(36년생) 남일우(38년생), 김영옥(37년생), 전원주 (39년생) 정도다.
여자 배우로는 사미지와 김용림과 동갑이다. 여배우들이 꼼짝 못한다는 강부자와 김혜자, 나문희는 박근형보다 한살 아래인 41년생이며 반효정은 42년생이다.
할아버지 역할을 많이 하는 변희봉은 42년생, 이정길은 44년생, 임현식과 박인환은 45년생, 노주현과 김용건은 노인축에도 끼지 못하는 46년생이고, 한진희와 임채무는 49년생이다. 1951년생인 김수미는 박근형의 관점에서 보면 노인도 아닌데 노인 행세를 하는 대표적인 또 한명의 배우다.
앞으로도 박근형을 중심으로 해 선후배, 동료들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이런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하나씩 나왔으면 좋겠다. 왜나햐면 그 어떤 다른 TV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걸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토크쇼에 나오면 일상적인 비하인드스토리를 조금씩 털어놓지만 그런 것과는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장난으로 약간 ‘디스‘하는 듯한 뒷담화 형식인 ‘꽃보다 할배’가 훨씬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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