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남자가 있다. 이들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통기타를 만나 더욱 풍성해지고, 특히 '신부에게' '사랑해도 될까요' 등은 전주만 듣고도 바로 알 수 있는 '국민가요'이다. 여기까지는 1997년에 가요계에 첫 발을 내딛은 유리상자의 이야기.
박승화는 유리상자에 앞서 1993년 솔로 1집 음반 '사랑해요'로 데뷔했다. 가수의 삶을 살아 온지 올해로 꼭 20년째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음반 준비에 전념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18일 발매된 20주년 기념 음반이다.
타이틀 곡 '다시 한 번'을 포함해 '노을' '약속' '산골 별이와 달이의 이야기' '그래 이젠' '레몬에이드' '수선화', 리메이크 곡 '뛰어' '샐러리맨' '그대 생각날 때 마다' 등 총 10곡이 담겨 있는 정규 음반이다. 그간의 노하우와 연륜, 더욱 깊어진 감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번 음반은 유리상자, 또 박승화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다.
박승화는 '20주년 기념'이 주는 특별한 만큼 한 곡 한곡에 노력을 기울였다.
"아무래도 20년을 해왔다는 사실이 새삼 감회가 새로워요. 유리상자가 아닌, 솔로 활동 20주년이 맞이하게 되니까, 하나의 길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만의 어떤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느낌을 갖고 지난해부터 하루하루 기다렸어요"
1년 전 곡을 쓰고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리메이크 할 곡도 직접 선정하고 또 바꾸며 자신의 20주년을 기다렸다.
"다들 묻더라고요, 왜 정규 음반이냐고. 앞으로 계속 가수 활동을 할 것이고, 스스로 20주년을 기념하는 음반, 그리고 후배들과 아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건 나쁘지 않잖아요(웃음)"
◆ 다시 한 번…소리쳐 불러봐...뜨거웠던 가슴 그 시절로 돌아가
/ 소리쳐 불러봐 이 노래를 세상 걱정 모두 잊고서 뜨거웠던 가슴 그 시절로 돌아가 /
타이틀 넘버 '다시 한 번'의 한 소절이다. 포근하면서도 힘 있는 멜로디는 박승화의 작품.
"20년 전 아무것도 모를 때는 시키는 대로 움직였어요. 물론 곡도 누군가에게 다 받았고요. 이번 음반을 작업하는 동안 옛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나'가 없었던 옛날, 지금은 비로소 '나'를 찾은 느낌이에요. 유리상자로서는 낼 수 없었던, 박승화의 볼륨을 높일 수 있었죠"
가사의 일부만으로도 알 수 있듯 사랑노래는 아니다.
"라디오를 하고 있다 보니까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누군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배우죠. '단풍놀이를 못가는 가을, 냉장고 안 깻잎 무침을 보니 단풍이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을 수 있겠어요? 하면 할수록 더욱 소중함을 느끼다보니 사랑 노래보다는 힘을 낼 수 있는 내용, 멜로디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모던 락이지만 소프트한 느낌이에요. 타이틀 넘버는 '공감'을 중요시 여겼죠" 그래서 탄생된 곡이 '다시 한 번'이에요"
역시 가수다. 노래 이야기에 가장 눈빛이 반짝인다. 특히 지난 1년은 그에게 '축제'와도 같은 나날들이었다. 가득 채운 10곡에 애정을 듬뿍 쏟으며 보낸 그 시간을 '행복한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어느 순간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고부터 녹음 시간이 비교적 짧아지더군요. 가수가 녹음을 하는 기간은 콘서트, 혹은 축제와도 같아요. 그 시간을 즐기고, 또 발표 후를 기대 하면서 '살아 있구나'라고 느끼는 거죠. 준비 기간은 1년이 넘고, 녹음만 세 달 동안 진행했어요. 정말 행복했죠. 향후 성과보다 그 시간이 마냥 즐거웠습니다"
◇ 그대 생각 날 때 마다…고(故) 김광석, 박학기
박승화는 '다시 한 번'을 타이틀 넘버로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며, 두 사람과의 인연을 떠올렸다. 주인공은 고 김광석과 박학기.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의 '데뷔 20주년'에 큰 공을 세운 이들이기도 하다.
"고 김광석 형님의 '일어나' 같은 노래를 하고 싶었어요. 다 같이 호흡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줄 수 있는 노래, 그게 이번 목표였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기가 싫을 만큼, 미련할 정도로 해왔어요. 물론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경제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주위에서는 '왜 TV에 나오지 않느냐'고 성화고. 포기를 하려고 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 때 저에게 은인이 나타났죠. 박학기, 그리고 김광석입니다"
통기타와 노래에 대한 열정은 변함이 없었으나, 경제적인 고충을 무시할 순 없었다. 그의 고민과 갈등이 전해진 것인지 두 형님들은 '가수 박승화'를 무대 위로 올렸다.
"당시엔 박학기, 김광석이라고 하면 대학로가 떠들썩했습니다. 한 달 공연을 하면서 매회 전석을 채웠으니까요. 두 형님들이 저를 부르시는 겁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저를 소개해 주셨어요. '통기타를 치는 가수'라고요. 특히 박학기 선배는 저를 놓지 않으셨어요. 일반적인 행사를 데려가시기도 했고, 용돈을 주시면서 격려를 해주셨죠. 지금도 언제라도 형님이 부르시면 벌떡 일어나 나갈 준비가 돼 있습니다. 저에겐 은인과도 같은 분이시니까요. 노래를 계속 할 수 있게 해준(미소)"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는 20년 이란 세월을 노래를 부르며 살아왔다. 어느덧 박승화와 노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음악을 하면서 좋은 쪽으로 중독되듯이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무대만 올라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나요.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다시 충전이 되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아, 나는 노래를 해야 하는 사람인가' 싶죠"
노래 없이는 이틀, 아니 하루도 힘들 정도다.
"좋게 중독이 돼 하루, 이틀 안하면 간질간질해요. 오죽하면 라디오에 없는 순서를 만들었어요. 매일 라이브를 하는. 처음엔 제작진도 미심쩍어 했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을 하고 있어요. 이제는 '노래하는 사람 같다'고 해주더라고요"
◆ 약속…상자 밖 박승화
유리상자는 노래만큼이나 분위기 자체도 온화한 팀이다. 박승화의 설명에 따르면 두 사람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노래로 하나가 될 때는 그 누구보다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이는 자기 목소리만을 높이려 하지 않는 두 남자의 배려가 묻어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박승화에게 유리상자는 솔로 데뷔 후 새로운 재미를 알려준 소중한 존재다.
"40대 중반이 됐습니다. 뒤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죠. 지금의 저, 또 유리상자의 위치는 후배들도 보이고 선배들도 볼 수 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콘서트 7080' 무대에도 오를 수 있고, '뮤직뱅크'에도 나갈 수 있는?(웃음)"
그런 그가 20주년을 맞아 상자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오롯이 '박승화'의 느낌으로 만 채워진 정규 음반을 발표했고, 홀로 콘서트도 계획 중이다. 박승화의 모습도 유리상자 만큼이나 소중하니까.
"박승화가 상자 밖, 솔로로 나온 것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휴가철이 끝나면 단독 공연이 예정 돼 있어요. 유리상자의 공연과는 달리 좀 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니, 약간의 남성다움을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웃음)"
앞으로 25주년, 30주년..시간은 흐르고 박승화는 유리상자로, 또 홀로 가수로서의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노래, 하면 할수록 좋아요. 어렵다는 생각보단 어느 날 문득 노래를 하다가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하고 깨달았어요. 내가 편하고, 듣는 이들이 편한 상태. 말로 표현하기 굉장히 어려운데,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지금도 그 때의 느낌을 기억하면서 무대에 오르죠"
박승화는 부르는 사람도, 듣는 이도 편한 음악을 하고 싶다. 푹신한 소파에 누워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가수,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목표다.
그러나, 욕심은 없다.
"섣부르게 장르를 바꿀 생각은 없어요. '할 수 있는 것만 잘하자'는 주의예요. 똑같은 생활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변화를 그리 반기지 않죠. 돈을 많이 벌거나 혹은 스타가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아요. 지금, 딱 이 위치가 좋아요. 사람들이 적당히 반가워하는 지금의 분위기가 좋습니다(웃음)"
상자 안이 아닌 밖에서 들려오는 박승화의 목소리, 볼륨을 높인 그의 노래를 음미해보자.
"유리상자가 아닌, 박승화라는 가수도 살아있습니다."
김하진 이슈팀기자 /hajin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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