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검찰 3018건 기소 5년새 12% 증가…표현의 자유 싸고 논란 가열
뉴질랜드 등 폐지하는 국가 늘어나…佛 벌금형만 선고·美선 年2~3건 불과
언론 감시 피하기 위해 국가·기업 악용…유엔인권위원회 등 비범죄화 주장
최근 명예훼손과 관련된 형사고소ㆍ고발이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대한민국은 ‘명예훼손공화국’이라는 오명까지 얻고 있다. 지난해 검찰에서 처리한 명예훼손 관련 사건은 1만3248건(2만2602명)으로 5년 전인 2008년 8814건(1만5177명)에 비해 50.3%나 증가했다. 기소돼 형사재판으로 넘어간 것만도 3018건을 기록해 처음으로 3000건을 웃돌았다. 명예훼손과 관련된 고소ㆍ고발이 늘어나면서 표현의 자유 위축, 수사기관 및 사법기관의 업무 증가 등을 지적하면서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일고 있는 상황이다.
4일 법조계와 학계 등에 따르면 현재 150여 국가가 형사상 명예훼손 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를 폐지하는 국가가 늘고 있는 추세다. 형사상 명예훼손 제도는 1992년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2001년 아프리카 가나에서, 2002년 스리랑카에서 잇따라 폐지됐다. 2007년에는 멕시코도 명예훼손 제도를 없앴다. 유럽에서도 2004년 이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에스토니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몰도바가 명예훼손 형사처벌 제도를 폐지했다. 프랑스,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는 형사상 명예훼손 제도는 남겼지만 자유형을 없애고 벌금형만 선고하고 있다.
국제적인 인권기관 역시 형사상 명예훼손죄 폐지를 주문하고 나섰다. 유럽인권재판소(ECHR)는 2006년 우크라이나 검찰이 총리를 비판하는 기자에게 형사처벌을 가한 것을 인권침해로 규정하는 등 언론인이 정부나 권력자를 비판한 대부분의 사건에 대해 언론자유 및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회원국 법원의 결정을 번복했다. 특히 ECHR는 인종혐오와 관련된 사건을 제외한 명예훼손에 대해 자유형을 선고하는 것을 과도한 형벌로 판단하고 있다.
2010년 내한한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랭크 라 뤼 역시 유엔에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제출했다. “다수의 명예훼손죄 소송이 진실이면서 공익을 위한 표현행위에 대해 제기되고 있고, 정부를 비판하는 개인을 처벌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중략)…명예훼손이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형사상 범죄로 남아 있어 본질적으로 가혹한 조치이며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부당하게 위축시키는 효과를 야기한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며 명예훼손을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인권위원회도 2011년 7월 발행한 ‘General Comment 34호’에서 “모든 당사국은 명예훼손의 비형사화를 고려해야 하고, 그 중에서도 자유형은 절대 이용돼서는 안된다”고 밝힌 바 있다.
선진국 중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과 독일, 독일 형법을 이어받은 일본이다. 다만 독일은 명예훼손으로 투옥된 사람이 거의 없고 유죄 대부분이 벌금형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15개 주가 명예훼손 형사처벌죄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들 주에서 제기되는 사건은 연간 2~3건에 불과할 정도로 제도의 실효성이 낮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검찰의 기소로 법원에 접수된 명예훼손 사건은 2008년 2697건에서 지난해 3018건으로 5년 만에 11.9%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명예훼손을 형사적으로 처벌하기보다는 형사처벌 조항을 없애고 민사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 ▷명예훼손 중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계속 형사처벌하되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형사처벌에서 제외하자는 주장 등 명예훼손의 비범죄화, 혹은 범죄영역 축소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6월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은 형법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처벌 조항을 삭제하고,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허위사실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요건을 추가했다. 또 공익을 목적으로 하거나 상대방이 공인인 경우에는 명예훼손죄로 처벌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조계에서도 명예훼손죄 폐지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폐지론자는 명예훼손은 개인 간 사적영역으로 국가가 나서서 형벌로 해결할 사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특히 국가나 기업이 언론의 감시와 견제를 피하기 위해 명예훼손법을 악용해 검찰의 기소를 종용, 권력유지의 방편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기 때문에 민사적 구제 및 방지가 어려운 만큼 명예훼손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로펌의 한 관계자는 “현행법은 ‘언론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더라도 그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면책특권 조항이 있다”며 “이 조항을 확대하면 굳이 폐지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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