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기로 승부하는 스나이퍼로 '진땀' … 게임 흐름 읽는 메딕 병과 선택 후 '미션 클리어'

벌써 10일째 헬기를 탄다. 매일 같이 타다보니 익숙해질법도 한데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온몸에 가득하다. 머리 위에 보이는 상사 계급장이 무색하다. 한줄 브리핑. 그놈의 블랙우드는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짧은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창문이 열리고 전경이 들어온다. 이번에는 폐허가 된 건물 옥상이다. 이미 잿더미가 된 건물 속에서 무엇을 할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언제나 안전한곳인줄만 알았던 헬기가 포화를 맞는다. 급하게 뛰어내리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함정이다! 구조 헬기를 보낼테니 살아남아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일단 헬기에서 뛰어내린 다음 포복자세를 취했다. 어쨌든 엄폐물까지 기어가야 한다. 빨간 불이 시야에 아른거린다. 스나이퍼다. 내가 잡아야 한다. 스나이퍼 직업을 선택한 이상 내 책임이다. 빠르게 일어서서 주변을 둘러본 다음 다시 앉는다. 찰라의 순간 동안 RPG가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간다. 헬기를 저격한 놈인가 보다. 적 두명. 처리할 수 있을까. 아군은 이미 반대편에서 교전을 시작했다. 빨간색 느낌표가 뜬 걸 보니 반대편에서 적이 몰려올 모양이다. 적들이 오기 전에 눈앞에 있는 적들을 빨리 처리해야한다.

엄폐물을 찾아 벽 끝까지 기어갈 수 있었다. 적 위치도 대략 파악했으니 머리만 내밀고 순간적으로 쏜 다음 다시 누으면서 RPG를 피하기로 했다. 빠르게 콘트롤 키를 누르자 적 위치가 대략 눈에 들어온다. 3층 왼쪽 방 옆쪽에 서서 이쪽을 노린다. 줌을 당기려는 순간 다시 시야 가득 빨간불이 눈에 띈다. 적도 나를 파악했다는 뜻이다. 다시 X키를 누워 엎드린다. 빨간불이 사라진다. 에임을 유지한 상황에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순식간에 처리해야 스나이핑 당하지 않는다. 한방이라도 맞으면 RPG 지향사격에 광역 데미지를 입고 죽는다. 콘트롤키 마우스 오른쪽버튼을 누르자마자 쏴야한다. 담배 한 대가 간절하다. 이를 악물고 콘트롤키를 누른다. 줌을 당기는데 그 자리에 스나이퍼가 없다. 이럴 수가. 빠르게 주변을 훑는다. 이런. 적 스나이퍼도 엄폐물 뒤로 숨었다. 인공지능 NPC인데 너무하다 싶다. 게다가 노멀게임이 이정도니 하드 난이도는 상상하기조차 싫다.

잠깐 노출된 사이에 또 RPG가 꼽힌다. 아슬아슬하다. 멀리서 엔지니어가 달려온다. 늑장 부리는 사이에 아군 교전에 끝난 모양이다. 한숨 돌렸다. 아머만 가득 차 있으면 데미지를 무시하면서 스나이퍼를 잡고 바로 옆에 RPG까지 잡을 수 있다. 아머 킷을 들고 달려오던 엔지니어가 눈앞에서 총을 든다. 어? 하는 순간에 몇 번 방아쇠를 당긴다. 이봐 죽는다고. 보이스챗이 간절하다. RPG가 날아올 것만 같다. 아뿔싸. 늦었다. 재빨리 고개를 들고 지원사격을 결심한다. 콘트롤키를 누르자 마자 줌을 당긴다. 눈앞에 스나이퍼의 시체가 들어온다. 굴욕이었다. 나름대로는 '퀘이크3'시절에 레일건좀 쏴봤고, '카운터 스트라이크' 1.6시절에서는 AWP를 들고 아즈텍과 더스트를 활보했었다. 수 년 만에 다시 잡은 FPS는 자존심을 무너트리기에 충분했다. 30대 반응 속도로는 결코 스나이퍼를 할 수 없다. 이 판단이 드는 순간 다른 직업을 플레이 하기로 했다. 항상 뒤에 달려와서 붕대를 감는 메딕이라면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메딕은 주로 뒤편에 포진하면서 죽어가는 아군들을 치료하는 직업이다. 주로 사용하는 총기는 샷건류로, 접근하는 적들이나 불시에 튀어 나오는 적들을 쏘기 좋다. 데미지가 비교적 센 편이어서 원샷, 혹은 투샷만에 적들을 잡아낼 수 있다. 때문에 주로 스나이퍼 옆에 서서 접근하는 적들을 처리하거나, 라이플병 뒤에서 커버를 담당한다. 메딕의 진가는 아군들이 죽어 쓰러질 때 발휘된다. 아군이 죽은 뒤 10여초 안에 제세동기를 꺼낸 다음 사용하면 아군을 부활시킬 수 있다. 이 때 반드시 AP게이지가 100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아군이 죽은 순간 동안은 잠시 치료를 멈추고 게이지를 우선 채우는 게 중요하다. 아군이 죽은 곳 인근에는 항상 강력한 데미지를 가할 수 있는 병력들이 존재한다. 시간 없다고 무턱대고 돌격해서 제세동기를 난사하다가는 그나마 남은 메딕도 바로 죽어버릴 수 있다. 주변을 잘 살피고 안전한 곳을 찾아간 다음에 데미지를 입지 않는 상황에서 아군을 부활시켜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무리하게 아군을 살려냈다가는 똑같은 장소에서 저격하는 스나이퍼나 로켓병 코버트 옵스 등에게 다시 쓰러지는 아군을 볼 수도 있다. 특유의 직업 특성상 혈기넘치는 10~20대 청년들보다는 침착하고 냉철하게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

화려한 샷을 자랑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침착하고 안전하게 아군을 보호하는 역할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었다. 특히 헤비거너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일부러 아군 반대 진영으로 뛰면서 헤비거너의 총을 몸으로 막고, 아군이 공격하도록 활로를 열어주는 플레이를 하면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대놓고 샷건을 쏘면서 돌격할 수는 없지만, 아군 전체가 안전하게 승리할 수 있도록 하는 서포터의 역할은 쏠쏠한 재미를 준다. 메딕이 종횡무진 활약하더라도 높은 킬수를 기록한 아군의 점수를 넘기 어렵고, 쿨타임마다 보급상자를 던저주는 라이플의 보급 점수 보다도 낮은 경우가 종종 있어서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다. 대신 같은 미션을 수십차례 도전하고 있는 팀들에 들어가서 팀이 클리어할 때 만족도는 상상을 초월한다.메딕을 플레이 하고 나서 쌓인 친구 리스트는 덤이다. 안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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