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승완 기자] 퍼블리카, 코티나, 브리스타, 칼리스타….

한반도에 자동차가 상륙한지 110년이 되고, 우리나라가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으로 성장하면서 대한민국에도 그간 많은 차들이 태어나고 사라져갔다. ‘시대를 대표했던 명차’로 여전히 기억되는 차가 있는 반면, 태어났을때의 야심을 채 꽃피우지도 못하고 잊혀져 간 차도 있다. 이제는 단종되어 찿아보기 힘들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머릿속에서는 달리고 있는 차들을 되짚어봤다.

▶ 시발계까지 … 장대한 시작 始發 = 수입이 아닌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차라는 의미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는 ‘시발(始發)’이다. 40대 이상의 사람이라면 이게 욕설이 아닌 자동차 이름이라는 걸 당연히 받아들이는 차. 대한민국의 지난날을 훑는 흑백화면의 다큐멘터리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시발 택시’로 더 유명한 그 차다. 1955년 서울에서 정비업을 하던 최씨 3형제가 미국으로 부터 받은 지프의 엔진과 변속기, 차축 등에 드럼통을 펴서 얹은 차체로 만든 첫 차다.

지금보면 예민한 매력이라곤 전혀 찿아볼 수 없지만 당시에는 ‘우리 손이 간 자동차가 달린다’는 사실 만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영업용 택시로 특히 각광을 받았고, 상류층 부녀자들 사이에선 ‘시발계’까지 성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발의 인기는 10년을 가지 못했다. 5.16 군사혁명으로 들어선 정부가 소형차부문의 사업자로 일본 닛산과 기술제휴를 형성한 새나라자동차를 선정하면서다. 1962년 시발보다 훨씬 맵시가 좋은 ‘새나라’가 등장하면서 결국 이듬해인 63년 말 시발자동차는 생산이 중단됐다.

▶ 코로나에서 그라나다까지 … 시대의 세단들 = 가족과 여자친구를 태우고 화목하게, 번듯하게, 또 보란듯이 거리를 달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동차에 품고 있는 가장 큰 욕망이다. 그렇다보니 셀수없이 많은 세단들이 80년대 후반까지 등장했다.

70년대 산업화시대를 대변했던 3대차는 신진자동차의 ‘코로나’, 현대차의 ‘코티나’, 아시아자동차의 ‘피아트 124’였다. 각각 토요타, 포드, 피아트와 기술제휴가 된 작품들이다. 크진 않았지만 무던한 주행능력과 한국 도로사정과의 좋은 궁합으로 큰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들 3대 히트모델은 76년 ‘위대한 차’에게 국민세단의 자리를 단번에 내어준다. 국산화 90%를 자랑하던 명실상부한 최초의 우리나라차. 바로 현대차의 포니다. 포니는 판매 첫해 1만726대가 팔려나가고 단번에 국내 승용차시장 점유율 43.6%를 차지하면서 국민차 자리에 오른다. 포니외에 일본의 마쓰다의 기술을 빌어온 기아차의 브리사와 새한자동차의 제미니도 시대에 잘살아보세를 외치던 시대를 대변하며 인기를 끌었다.

자동차 자체가 귀하던 시절에 육중한 몸매로 위용을 자랑하던 대형고급차들도 있다. 1967년 처음 등장한 ‘뉴 크라운’이 대표적이다. 집한채값이 70만 ~ 80 만원 하던 시절. 차값이 무려 310만원을 자랑하는 고급중의 고급차였다. 장관이나 재벌총수들이나 타볼 수 있던 부와 명예의 상징이었다.

1978년 현대차가 내놓은 그라나다도 고급차의 대명사였다. 독일 포드사와 기술제휴로 개발한 유럽 정통 스타일이 가진 품격과 몸집에 많은 부자들이 매료됐다. 특히 4륜 독립현가장치, 인체공학적 시트 등이 적용되면서 전에없던 ‘승차감’이라는 개념이 크게 어필했던 작품이다. 1980년 등장한 대우차의 로얄살롱도 부의 상징이었던 자동차 가운데 하나다.

▶ 멀고먼 …‘뚜껑 열리는 차’의 꿈 = 한국시장에서 스포츠카는 여전히 풀지 못한 난제다. 그럼에도 몇십전에 스포츠카 시장에 야심찬 도전장을 던졌다 사라진 차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92년 쌍용차가 내놓은 칼리스타도다. 너무 앞서갔던 차 가운데 하나다. 원래 영국 자동차 브랜드 ‘팬더’가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생산했던 차로 쌍용이 포드에서 핵심부품을 가져와 생산했다.

2000cc, 2900cc 두 모델이 출시됐고 2.9 모델은 최고출력 145마력에 최고속도 시속 208km/h를 자랑하는 등 국내 최초의 로드스터(지붕을 접을 수 있는 2인승 스포츠카) 다운 성능을 장착했었다.

하지만 너무나 예민한 디자인이 문제였다. 거만한 듯 솟아오른 전면부의 헤드라이트와 극단적으로 긴 오버행(앞바퀴 중앙에서 앞 범퍼까지 길이)등, ‘그저 무던한 차가 제일이던’ 한국시장에 발을 붙이기엔 차의 디자인이 너무 아티스틱(예술적)했다. 3년간 70여대가 생산되는데 그쳤다.

1996년 기아차가 내놓은 엘란도 ‘비운의 경량 로드스터’다. 영국 ‘로터’스의 차로 기아차가 생산과 판매권을 넘겨받고, 부품의 85%를 국산화하면서 우리시장에 내놨다. 차체에 플라스틱소재인 VMRP가 적용되면서 제로백이 7.4초를 기록하는 등 성능이 뛰어났고, 젊은 층이 공감대를 가질 만한 디자인에 다양한 색상의 차량이 등장하는 등 기존 시장에서는 보기 힘든 매력을 많이 가진 차였다. 하지만 역시 큰 인기를 끌진 못했다. 4년간 1053대가 생산되는 데 그쳤다. 하지만 마니아층에는 인기가 여전히 두텁다. 기아차는 아직도 시흥사업소에 엘란 전담반을 운영하고 있다.

GM대우(현 한국GM)가 2008년 내놓은 G2X도 조용히 사라져간 로드스터 가운데 하나다. GM대우가 새턴 스카이 2.0 터보를 엠블럼만 바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내놨다. 볼륨감이 느껴지는 미국식 디자인에 264마력을 내는 2000cc 트윈 스크롤 터보 엔진 등 성능도 나쁘지 않았지만, 한국인들의 구미를 당기기에는 가격이 문제였다. 4300만원대의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가격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매를 망설이게 했다. 결국 1년만에 100대가 조금 넘게 팔린 후 단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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