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도제 기자]5세 여자 아이를 키우는 A(39) 씨는 최근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 섬뜩한 생각에 휩싸였다.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사건으로 아이들 성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던 그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성교육에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이 든 것. 특히 사슴을 살려준 보답으로 나무꾼이 선녀가 목욕하는 장소를 알게 되고, 선녀의 옷을 훔쳐 결혼한다는 이야기는 관음, 절도, 사기 등 각종 현대판 범죄를 연상시켰다. 목욕하는 모습을 엿보고 옷을 훔치는 설정 자체는 여성에 대한 성범죄를 용인하는 듯한 느낌까지 줬다. A 씨는 “전래동화 중에는 남성이 배우자를 고르고 결정하는 구도가 많다”며, “옛 이야기도 현시대에 맞게 고쳐져야할 부분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예전 고등학교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서동요’도 마찬가지다. 이는 선화공주가 밤마다 몰래 서동(백제 무왕의 어릴때 이름)의 방을 찾아간다는 노래를 지어 유포시켜 왕비로 맞이하게 된다는 내용인데, 여기에서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배제되고 있다.

윤창중 전 대변인, 배우 박시후, 배우 고용욱 등 유명인들이 각종 성폭력에 연루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딸을 키우는 아빠들의 마음이 불안하다. A 씨처럼 동화책 읽기도 조심스럽고, 문학사적으로 의미있는 작품에 대해서도 삐딱하게 바라보게 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엇 때문에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것일까. 종류도 다양하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 접촉의 심각성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제각각이다. 성추행은 권력형, 대가형, 주사형, 습관형 등의 유형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남성의 본능이 있는 한 성범죄를 막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사실 성을 둘러싼 이야기는 인류사와 함께 하고 있다. 그 중에는 현대판 성범죄로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도 많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제우스가 에우로페를 납치해 동의 아래 관계를 맺는 부분이 나온다. 이는 오늘날 성범죄의 한 유형이다. 또 전쟁사 속에서는 소수민족이나 노예 등 사회적 약자가 성범죄의 대상이 되는 것은 흔했다. 중세 유럽에 영주에게는 결혼을 앞둔 신부와 첫날밤을 보낼 수 있는 초야권(初夜權)을 주기도 했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성범죄를 용인하는 풍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 드라마를 통해 접해왔던 조선시대 과부보쌈(약탈혼) 풍습은 물론 돈을 갚지 못해 첩살이를 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과부보쌈은 지금의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다.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유교 문화가 오랫동안 자리한 까닭일까. 여전히 우리나라의 많은 남성은 성희롱 같은 것을 범죄로 보기보다 농담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군대에 가기 전에 총각 딱지를 떼는 통과의례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해못할 일도 아니다. 남자 아랫도리 이야기는 공직을 수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는 향수 섞인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들린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성범죄 발생률이 2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최근 조사에서는 우리나라의 성폭력 발생률이 OECD 국가보다 1.5배에서 2.5배 정도 높게 나온다. 우리나라 성폭력을 당하는 여성의 신고율이 10% 정도에 그치는 점을 감안할 때 성범죄 발생률은 이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박근혜 정부들어 성폭력을 척결해야할 4대 사회악 가운데 하나로 꼽고 성범죄를 줄이기 위한 조치가 강화되고 있다. 화학적 거세 판결이 내려지고 있으며, 성범죄자 신상 공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덧붙여 전문가들은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성희롱이나 성추행, 성폭행 등 남성의 극히 잘못된 행동을 ‘본능’이라는 점을 핑게삼아 이로 인한 피해를 불가피한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성범죄를 줄이기 위한 정책도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인식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계층을 떠나 모든 사람들의 인격이 존중받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pdj24@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