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정의 앞에‘타협’은 없다…사회적 이슈마다 돌직구로 날선 비판하는 前 경찰대 교수의 삶과‘보수의 품격’
국정원 댓글 의혹 비판, 엄정한 경찰수사 촉구는 민주주의 질서 지키기 위한 소신 밝힌 것…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 지켜보며 숱한 아쉬움…그 때의 안타까움, 그 사건 계기로 범죄수사기법 평생 연구
강하고 나쁜 사람에게는 차가운 악마로, 착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솜털이 되고 싶어
끝까지 보수주의자로 남아 그릇된 보수주의자 괴롭히고 힘들게 만들 것…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파일러’ ‘인간적인 자베르’ ‘한국판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등. 표창원 전 경찰대학 교수를 소개하는 말은 차고 넘친다. 거침없이 정곡을 찌르는 언변 덕에 ‘미스터 돌직구’란 별명을 얻었고, 사람들은 그의 화법을 ‘표창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늘 돌직구만 날리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날카롭게 우회하는 커브도 던진다.
“스토킹을 할 경우 범칙금 8만원만 내면 된다.” 새로 개정된 경범죄처벌법의 허점을 비꼬는 멘트 덕분에 ‘표팔만’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채 쌀쌀한 기운이 가시지 않은 초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에서 만난 표 전 교수는 부쩍 늘어난 별명이 싫진 않은 기색이었다. 그만큼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 경찰대 교수직을 박차고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그의 얼굴에서 불안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요즘 너무 바빠요. 예상 밖이죠. 사실 사직할 때는 한동안 쉰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직하자마자 일이 더 몰리네요.”
현재 그가 맡고 있는 방송은 고정프로그램이 3개다. 일간지와 주간지 연재 기고만도 6~7개. 방송 준비에 촬영, 기고문을 쓰다보면 한 주가 휙 지나간다. 최근엔 ‘보수의 품격’과 ‘나는 셜록 홈스처럼 살고 싶다’는 제목의 책 두 권을 내기도 했다.
잘 나가는 ‘비정규직 지식노동자’지만 그는 현재 상황에 대한 판단을 미뤘다.
“야구처럼 끝날 때까지는 아직 제 상황이 정리된 게 아니예요. 국정원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도 남아 있고…. 이 모든 사건이 해결돼야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을 것 같아요.”
그가 교수직을 사퇴한 것은 지난해 12월 국정원 직원의 불법 선거개입 여론조작 의혹 사건이 벌어진 직후다. 그는 경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한편으로 교수직과 함께 기계적 중립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진정한 보수라면 친북좌빨 주장은 집어치우라”며 낡아빠진 색깔론에 일침을 가했다.
그는 또 “당당하고 떳떳한 진정한 보수가 될 것”을 주장했다. 덕분에 그는 현재 국정원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한 상태다. 하지만 그는 이만한 일에 주눅들 남자가 아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강하고 나쁜 사람에게 악마가 되자고 생각해요. 대신 착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솜털이 되고자 하죠.”
때로는 가을 서리처럼 차갑지만 따뜻할 때는 한없이 따뜻하다. 투표율 75.8%에도 “제18대 대선 투표율이 80%를 넘기면 프리허그를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며 거리로 나섰던 그다. 이런 반전있는 남자, ‘상남자’ 표 전 교수의 인생이야기를 들었다.
▶셜록 홈즈를 꿈꾼 소년 사람들은 표 전 교수에게서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의 모습을 읽기도 한다. 정의와 원칙 앞에 어떤 타협도 없는 형사법의 화신.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말쑥한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난한 형편 탓에 분노가 많아 툭하면 주먹다짐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소룡 영화에 심취한 소년은 패싸움에 휘말려 정신을 잃은 채 양호실에서 깨어나기도 하고, 중학생 시절엔 세 살 위 형과 다투다 칼을 휘둘러 형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엔 학생회의에서 “교내에 흡연실을 만들자”고 제안해 교사와 학생 모두를 아연실색케 했다.
장난기가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학입시 학력고사를 불과 몇 개월 앞두고서는 사제 폭탄을 만들어 장난을 치려다 손가락 몇 개를 잃을 뻔했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엔 전국 일제고사에서 전국 1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뛰어났다.
그는 “좋은 성적의 이면에는 반항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1980년대 억압과 폭력이 물든 학교, 주입식 교육 공장에서도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한다. 억지로 공부하라고 시키면 공부하기 싫어진다”며 스스로 길을 찾았다. 암기식 교육이 싫어 이해를 바탕으로 공부를 하니 야간자율학습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도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또 불만 많은 소년의 폭력성을 잠재우고 지혜를 불어넣어준 것은 수많은 책이었다. 그 중에서도 셜록 홈즈의 추리소설은 소년에게 새 지평을 열어주었다.
“폭력이 아닌 두뇌로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는 셜록 홈스에 매료되면서 감정을 조절하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웠죠.”
그가 경찰대로 진학하게 된 배경에는 셜록 홈스의 꿈이 자리잡고 있었다.
▶꿈많던 경찰대 시절…좌절과 고뇌의 날들 말썽 많았던 그의 학창시절을 보면 과연 그가 왜 ‘제복’을 선택했는지 의아할 수도 있다. 반항의 학창시절과 경찰 사이에는 꽤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제가 불합리한 걸 싫어해요. 권위나 힘으로 억누르는 건 제복의 참다운 본질이 아니죠. 제복이 상징하는 것은 규율과 합의, 존중과 배려입니다. 어떤 특권도 존재하지 않는 책임과 의무, 도전이죠.”
그에게 제복이란 능력과 노력에 따른 성과와 평등을 상징했다.
하지만 운명같았던 경찰대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가 경찰대에 입학한 것은 1985년 전두환 정권의 폭압이 극에 달하고 반대급부로 민주화 시위의 물꼬가 터질 무렵이다.
일반대학에 진학한 친구는 투사가 되어 거리로 나서고 경찰대 선배는 이를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만 하는 엇갈린 운명이 무거운 고뇌로 다가왔다. 그는 대학시절의 가장 대표적 감정을 ‘슬픔’이라고 꼽았다.
연고전이 있었던 어느 주말, 친구를 만나러 연세대 앞을 방문했던 그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우연히 지나던 옛 고등학교 친구가 그를 발견하고 “야, 짭새다, 밟아!”라고 소리친 것. 다짜고짜 학생들이 다가와 주먹을 휘둘렀다.
1987년 1월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다. 경찰의 고문에 박 군이 희생됐고,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더니 죽었다”며 사건을 덮으려 했다. 경찰이 국가폭력의 가해자가 돼 있었다. 그 역시 차가운 거절과 의심의 시선에 여러 차례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권력에 굴종하는 경찰의 모습이 슬펐죠. 잘못된 일을 하는 조직의 일원이 되고 싶지 않았아요.”
하지만 그만의 고뇌는 아니었다. 양심있는 경찰, 피 끓는 경찰대 학생 모두의 고민이었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처럼 ‘나는 누군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친구와 논쟁도 많이 하고. 야만과 탄압의 시대에 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계속 되물었죠.”
그러나 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거리로 나설 수는 없었다. “일반대학에 다니던 친구는 혁명을 주장했지만, 저는 모두가 나설 수는 없다, 혁명의 상황에도 질서가 무너지면 결국 약한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 법질서를 유지하는 경찰의 기능은 필요하다고 주장했어요.”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아야 하지만 전면적인 혁명보다 점진적인 개혁에 마음이 끌렸던 그였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도산 안창호 선생을 꼽으며 말을 이었다.
“안창호 선생은 ‘내가 먼저 올바른 사람이 되고, 그런 노력이 전파돼서 우리 민족 모두가 깨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다른 사람은 어느 세월에 그게 이뤄지냐고 무력으로 뒤집어야 한다고 했지만 난 동감할 수가 없었어요. 아무리 세상이 흔들려도 지켜야 할 자리와 위치가 있죠. 다만 스스로가 오염되고 타락하지 않는 가운데 힘을 기르자고 생각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살인의 추억’…화성에서의 경찰 생활 경찰대를 졸업하고 드디어 대한민국 경찰이 된 그는 1990년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른바 ‘화성 연쇄살인’으로 알려진 경기 남부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이다.
그해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에 위치한 기동대 2소대장으로 부임한 그는 악몽같은 범죄를 마주하게 됐다.
“대학 다닐 때부터 일어난 사건이라 관심이 있었죠. 수사를 해보고 싶어 근질근질했습니다. 첫 부임지인 제주도에서 화성으로 발령이 났을 땐 운명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기동대 소대장 신분에 수사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고 검문검색과 치안유지를 담당하며 수사 상황을 면밀히 지켜봤다. 결국 이 사건에 대한 치열한 분석은 그의 저서 ‘한국의 연쇄살인’의 한 챕터를 이루게 됐다. 그렇지만 사건은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표 전 교수는 수사 지휘부의 혼란상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대통령의 관심사다보니 한꺼번에 너무 많은 수사인력이 투입돼 수사팀도 중복되고 우왕좌왕 혼란 그 자체였죠. ‘무조건 잡아라. 잡은 놈은 특진, 못 잡으면 징계’식이니 정상이 아니었어요.”
초동대처도 엉망이었다. 경찰은 피해자의 시신이 관내에서 발견될까봐 전전긍긍했다. 질책과 추궁이 두려워 은폐 시도도 있었다.
“시신이 발견되면 자살이나 사고로 위장하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시신에 함부로 손대고 뒤집고 난리였죠.”
당시 범인은 현장에서 대변을 보고, 마시던 우유를 남기기까지 했다.
“증거는 많았는데, 예닐곱명의 수사진이 하나하나 차근차근 매뉴얼대로 정리하고 조사했다면 미제 사건으로 남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이 ‘살인의 추억’은 그에게 수사 실패에 대한 무거운 연대책임을 안겨줬다. 그리고 범죄수사기법 연구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의 원동력이 됐다.
▶법질서를 훼손하는 국정원은 보수가 아니다
그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준 사건인 만큼 표 전 교수는 국정원 사건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보수를 자처하는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다면 이는 민주주의 질서를 지킨 게 아니라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수주의의 핵심인 법질서의 근간을 국정원이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가 정권 재창출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표 전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국정원 사건의 핵심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고 꼬집었다.
“약점 많은 정권에 대해 비판과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을 적으로 돌리고 종북으로 낙인 찍고 약점 잡아 처벌하고 싶었던 겁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이버 심리전을 통해 우군화하려는 공작이었죠.”
그는 권력화한 국정원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관리감독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사람의 독단과 독점적 권한이 국가를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참된 보수는 무엇일까.
“원칙은 지키며 자유를 추구하고 받아들이는 것, 모든 규범을 정의에 두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참보수다. 그는 참된 보수를 위한 작업에 평생을 걸었다.
“전 끝까지 보수주의자로 남아서 그릇된 보수주의자를 괴롭힐 거예요. 보수의 내부에 남아서 자기비판하고 힘들게 만들 거예요.”
더 강하고 더 나쁜 사람을 만나면 악마가 된다는 그의 다부진 의지가 보이는 한 마디였다.
표 전 교수는 당분간 현재 맡고 있는 방송과 기고 활동에 전념할 생각이다. 독립유공자협회 홍보위원장으로도 활동할 계획이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독립을 위해 애썼던 진정한 보수의 맥을 현대로 이어주는 역할, 친일과 독재로 인해 흐려졌던 혼과 역사를 다시 살려갈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저술 활동도 계속 이어 나갈 계획이다. 하지만 “당분간 ‘한국의 연쇄살인’과 같은 책을 쓸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연쇄살인’은 희대의 살인마에 대한 범행과 심리구조를 파헤친 대표적 저서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시간과 감정이다. 각 사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작업도 만만찮거니와 더 큰 문제는 피해자와 피해자 유족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엉겨붙는다는 것.
“유족의 마음을 담아서 쓴다고 하지만 결국 상처를 되새기고 아프게 만든 건 아닌가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죠. 또 제 책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건의 디테일과 엽기성만 활용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니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요.”
‘한국의 연쇄살인2’를 기다리는 열혈 팬들은 아쉬워할 소식이다. 하지만 팬들로서는 경찰대 교수 표창원은 잃었다 해도 자유인 표창원을 얻었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셈이다. 이제 중립성이란 족쇄를 풀고 사회의 부조리를 향해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표창 스타일’의 맵고 통쾌한 글이 더 기다려진다.
표창원, 그는 누구…
▶1985년 고려고등학교 졸업, 경찰대학 입학 ▶1989년 경찰대학 졸업 ▶1989년 제주도 중문지역 전경대 소대장 ▶1990년 경기도 화성지역 기동대 소대장 ▶1991~92년 경기도 부천경찰서(현 부천남부경찰서) 형사과 ▶1992~93년 경기도지방경찰청 외사계 ▶1993년 영국 엑서터대학교 범죄학 석사과정 입학 ▶1998년 영국 엑서터대학교 범죄학 박사과정 졸업 ▶1998년 경찰청 제도개선기획단 연구관 ▶1999~2001년 경찰대학 전임강사, 연세대·아주대 등 출강 ▶2001~2004년 경찰대학 조교수, 행정학과장 ▶2005~2006년 미국 샘휴스턴주립대학교 교수 ▶2006~2012년 경찰대학 부교수 ▶2012년 경찰대학 교수직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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