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들이 쓰는 암호는

암호 또는 암호에 가까운 특정 집단의 은어나 속어는 특히 전문가집단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러한 은어와 속어는 언어 자체의 효용보다는 집단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다. 실상 뜻을 알고 보면 익숙한 표준어로 충분히 순화시킬 수 있지만 구태여 일반에 통용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해 집단 내부를 공고히 하고 외부와 차별화하는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집단이 법조계와 의료계다. 법조계는 일본어의 잔재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특별한 절차를 요하는 행위에 관하여는 그 기간 내에 그 절차를 밟은 확답을 발하지 아니하면 취소한 것으로 본다(특별한 절차가 필요한 행위에 대해 그 기간 동안 해당 절차를 밟았다는 확답을 보내지 않으면 취소한 것으로 본다)’ 같은 민법 항목은 일반인에게 거의 외계어에 가깝다. 이외에도 법조계 내부에선 ‘벙커(후배 법관이나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판사)’ ‘금초(올해 초임된 검사)’ ‘깡치사건(복잡한 사건)’ 같은 그들만의 용어가 두루 쓰인다.

의료계에선 특정 업무를 일반 직업군과 연결시키는 경우가 많다. 고되고 힘든 응급실 근무를 놓고 ‘막장 간다’고 표현한다거나 뼈를 주로 다루는 정형외과 의사를 ‘목수’로 지칭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의사의 지시(order)를 받아 의료행위를 하는 비의료인을 통칭해 ‘오더리’라고 한다. 천안함 사태 때는 모 군의관이 순직한 군인의 시신을 ‘고기’라는 그들만의 은어로 표현했다가 유가족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간호사들 역시 은어를 많이 쓰는데, 부하직원을 못살게 굴거나 비인격적 대우를 하는 것을 가리켜 ‘태운다’는 표현을 쓴다.

언론 및 출판계도 예외는 아니다. 취재 영역은 ‘나와바리’, 단독 보도는 ‘독고다이’라고 하는 등 일본어 표현이 대다수다. 방송 종사자들이 ‘시바이’라고 말했다면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매우 잘 나온다는 뜻이다. 출판계에선 책의 표제를 ‘도비라’, 책의 뒷면을 ‘세나카’라고 부른다. 이 직업군은 ‘늘 바른말과 글을 써야 한다’는 점에서 일본어 표현이 다수 쓰이는 것은 모순이다. 이들 언론ㆍ출판계와 밀접한 관계인 홍보업계에선 ‘싸바리(조립돼서 접을 수 없는 종이상자)’ ‘누끼컷(카메라 한 대로 한쪽만 찍은 사진)’ 같은 낱말이 통용된다.

한국 사회에서 뭐니 뭐니 해도 은어가 널리 쓰이는 집단은 단연 군대다. 너무 많은 은어가 쓰이다 보니 바른말과 혼동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하명’ ‘신원조회’ ‘기합’ 등은 모두 잘못된 표현이다. 하명은 ‘지시’, 신원조회는 ‘신상조사’, 기합은 ‘얼차려’로 바꿔 불러야 할 일본어 표현이다. ‘더블백’과 ‘깔깔이’처럼 군대에서만 볼 수 있는 물품을 지칭하는 낱말도 각각 ‘의류대’ ‘방상내피’ 등으로 순화하는 게 좋다.

김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