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 KBS ‘남자의 자격’이 3년 만에 폐지된다. 2009년 3월 첫 방송 이후 지금까지 3년간 진행하면서 정체성이 많이 흐려졌다. 초창기 금연도전, 패러글라이딩 도전, 지리산 등반, 단축마라톤, ‘남자, 그리고 암’, 남격합창단 등으로 호평을 받다가 합창단을 사골인 양 반복하면서 중년 남자 예능이라는 특유의 색채가 사라졌다. 그 후 아이템들도 조금씩 길을 잃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좋은 기획물들을 선보이며 살아나고 있었다. 절대권력, 연말정산, 일출여행, ‘국악의 참 놀라운 발견’ 등 괜찮은 아이템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난달 24일 방송된 윤형빈-정경미 혼수장만 편이 여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한 편이 프로그램 존폐를 결정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소재 고갈이라고 볼 수 없는 폐지의 이유가 존재한다.
초창기 ‘남자의 자격’은 중년 예능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의 부제에서도 느껴지듯이 아이템을 기다리게 만든 시절도 있었다. 중년 남자들이 몸이 말을 잘 안 듣는 시기에 접어들었지만 의외로 ‘아이’ 같은 순수한 면도 지니고 있고, 늦었지만 다시 도전해본다는 ‘인생 활력소’의 느낌도 주었다. 중년 아저씨도 포기하지 않고 뭔가를 시도하려는 주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중년 남자들은 보기보다 어린 구석이 있다. 예비군 훈련장에 모인 중년 아저씨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남자의 자격’은 중년 아저씨들의 이런 면을 잘 보여주었다. 중년 남자에게 ‘귀여움’까지 끄집어내기도 했다.
한국의 중년 남자들은 힘들어도 힘들다는 소리를 못한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데 직장과 건강 등 모든 조건들이 어려워져 간다. ‘남자의 자격’은 중년 남자들의 고단함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인생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기도 했다. 중년 아저씨도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고, 명함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생활하는 한 방법을 ‘남자의 자격’을 통해 터득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직장과 조직생활에서 힘든 중년 남자가 술과 담배에 의지하지 않고 선택하는 탈출구가 비록 판타지일지라도 시청자에게 공감과 안정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던 ‘남자의 자격’이 어느 순간 중년 아저씨 예능이라는 느낌이 사라졌다. 날로 먹는 멤버들이 늘어났다. 이제는 귀엽지도 않고 짜증이 나는 상황도 벌어졌다. 프로그램이 이런 분위기라면 시청자에게 힐링은커녕 공감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윤형빈 혼수장만 편은 기획의도는 좋았지만 고가인 혼수를 주는 것을 공공재인 방송을 통하려면 사적인 내용을 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반드시 거쳤어야 했다.
최근 방송된 ‘시장투어’와 ‘자연인으로 살아보기’도 중년 아저씨들만의 색채를 느끼기에는 부족해보였다. 멤버들이 광장시장, 서울약령시장 등 재래시장을 돌며 음식들을 맛보고, 마장동축산물시장에서 쇠고기 부위에 관한 퀴즈를 맞혀보고 최근 결혼한 윤형빈이 고기를 사는 장면은 ‘남격’이 아닌 맛집 프로그램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남자의 자격’은 이경규라는 맏형의 권위에 동생들이 도전할 때 재미가 생긴다. 이경규가 곤경에 처할 때 ‘남격’은 빛을 발한다. 이는 후배들에 의해 거센 도전을 받는 직장의 중년 남자(중간간부)들의 입장과도 상통해 묘한 매력을 자아낸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 후배들은 이경규의 체제에 순응해버렸다. 김준호와 주상욱이 이경규와 독자노선을 걷는 예능감으로 프로그램에 탄력을 주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이미지를 살리는 데에는 부족해보였다.
지금 예능은 힐링의 시대다. 다큐예능의 범람 자체가 힐링의 필요성을 방증한다.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힐링의 필요성이 ‘7번방의 선물’의 1200만 관객 돌파로 나타났다. ‘남자의 자격’은 힐링이 절실한 시대에 초반보다 갈수록 힐링에서 더 멀리 벗어났다. ‘남자의 자격’이 끝나도 중년 남자의 예능물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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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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