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에서 통용됐던 화폐는 금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거운 금덩어리를 항상 들고 다닐 순 없어 평시엔 금에 대해 잘 알고 무게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금세공업자에게 맡겨두고 보관증을 받았다. 이후 사람들은 물건 값을 지불할 때마다 금세공업자에게 가서 금을 찾는 일이 귀찮아 금 대신 보관증을 화폐처럼 사용했다. 직접 금을 찾아가는 사람이 줄어들자 금세공업자들은 실제로 갖고 있는 금보다 많은 보관증을 발행해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빌려주기 시작했다. 금세공업자들은 자기 소유 금 하나 없이 보관증만으로 수익을 올리게 됐다. 이것이 근대적 은행의 시작이다. 또 은행이 끊임없이 대출을 권하는 이유다.

지난 대선 이후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경제민주화였다. 경제는 익숙하지만 낯선 용어다. 자본주의 경제사회에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돈을 벌고 쓰는 일에 익숙하지만,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대해선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TV가 시청자들의 궁금증에 답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해 화제를 모았다. 이들 방송은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자본주의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지난해 9월에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자본주의’는 경제학의 기본원리와 자본주의의 속성을 쉬운 언어와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 호평을 받은 다큐멘터리였다. ‘다큐프라임-자본주의’는 5부에 걸쳐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금융 상식 뒤에 숨겨진 거짓말은 무엇인지, 대중의 심리를 속속들이 알고 펼치는 마케팅 공세 뒤에 가려진 그들만의 비밀을 해부한 뒤 자본주의에 관한 세계 석학들의 견해를 모아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해 많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 11월, SBS 창사 특집으로 방송된 4부작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은 ‘다큐프라임-자본주의’와는 달리 경제인류학적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조망해 눈길을 끌었다. ‘최후의 제국’은 세계 경제를 이끄는 미국과 중국에서 출발해 히말라야 산자락과 파푸아뉴기니의 정글, 태평양의 오지 아누타 섬까지 240일간 6만 5000㎞를 여행하며 공존의 가치를 탐색했다. 어려운 용어나 경제학자를 등장시키는 대신 ‘최후의 제국’은 문명사회에서 빈부격차에 신음하는 도시인들의 삶과 문명의 건너편 오지에서 서로 베풀고 보듬으며 살아가는 원시부족들의 삶의 비교하며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보여주고 끊임없이 자본주의가 회복해야 할 가치를 물었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 모두 명쾌한 대안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다큐프라임-자본주의’는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의 복지자본주의에서 길을 찾았지만 다소 성급한 마무리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후의 제국’은 현실에서 너무 먼 이상향과 같은 공간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 아니냐는 의문점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다큐멘터리 모두 시청자들이 막연하게만 느껴온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을 일상적인 수준에서 고찰하고 그것을 넘어설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의 장을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