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멈춘 일본사회…주오大 야마다 교수에게 ‘행복 방정식’ 을 묻다

일본·한국 모두 가족중심 사회 남녀가 평등하게 가정을 지탱해야 정치도 국민 행복도와 밀접한 관계 다양한 연구·정책대안 마련 힘써야

[도쿄=신창훈 기자] 희망격차사회, 패러사이트 싱글(기생독신), 혼활(婚活)과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낸 야마다 마사히로(山田昌弘) 일본 주오대(中央大) 교수. 그는 이 단어들을 통해 성장이 멈춘 일본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헤럴드경제는 2일 야마다 교수와 신년 인터뷰를 했다.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는 새로운 ‘국민행복시대’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제로 성장사회에 필요한 ‘행복 패러다임’을 석학에게 듣고 싶어서다.

야마다 교수는 “전 세계 선진국 중 일본과 한국 정도가 갖고 있는 특수한 사회유지 구조, 즉 ‘전적으로 남편에 의지하는 가족 부양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지금과 다른 사회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일갈했다. (그는 한국을 ‘확실한 선진국’이라고 칭했다)

그는 또 “젊은층의 경제력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것이 모든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이라며 “사회보장 시스템의 개혁을 통해 세대간 부의 재분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은 모든 사회보장 제도가 노인층의 복지에 맞춰져 있어 젊은층은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는 지적이다.

야마다 교수는 변화가 없는 일본사회에 대해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중단해 버리는 일본의 정치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결정하지 못하는 정치(決められない政治)’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정치는 일본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향후 20년이면 한국이 모든 면에서 일본을 앞지를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야마다 교수와 일문일답.

-패러사이트 싱글(기생독신)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학자로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그런가? 가족사회 연구자들은 알겠지만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일본에서 패러사이트 싱글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가.

▶패러사이트 싱글족은 현재 1000만명에 달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중년의 패러사이트 싱글족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35~44세 사이인데 약 300만명 된다. 이들이 결혼해 가정을 꾸리지 않고 부모의 경제력에 의지해 살고 있다. 최근 엄청나게 늘고 있어 걱정이다.

-원인을 찾는다면.

▶일본경제 상황을 보면 당연한 결과 아니겠나. 수입이 늘어나지 않으니까 결혼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은 남편이 가족을 부양하는 사회구조다. 가족을 부양할 수입이 없는 젊은이가 많아지고, 중년이 되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까 결혼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요즘 괜찮은 일본 여성들이 일본인 남성이 아닌 아시아 각국, 특히 동남아시아 남성과 결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통 선진국 여성이 후진국 남성과 결혼하는 일은 흔치 않다. 결혼 대상이 된 동남아시아 남성들은 부자들이다. 이것 역시 현재 일본의 침체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선생께서는 요즘 정부가 주관하는 ‘행복연구회’에 참여하고 있는 걸로 들었다. 연구회 활동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돈이 있는 것과 돈이 없는 것이 행복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런 걸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결국 일본은 경제성장이 안 되는 사회다. 경제성장이 없는 상태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아주 근본적인 의문을 갖고 출발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정부로서는 현재 어떤 계층이 불행하다고 느끼는지, 그리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어떤 계층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을 것이다. 그런 것을 토론ㆍ연구하면서 정부에 조언하고 있다.

-한국도 경제가 성장하지 않고 있다.

▶선진국은 대체로 그렇지 않나.

-한국이 선진국인가.

▶그럼 선진국 아닌가? 한국은 아마 20년 정도 지나면 일본을 완전히 제칠 것이다. 다만 격차가 점점 커지는 게 문제가 되겠지만….

-성장이 멈춘 사회에서의 ‘행복 방정식’은 무엇인가.

▶글쎄…. 그걸 알 수 있을까. 단 행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부족한 것이 채워질 때 오는 행복 즉 마이너스가 제로가 될 때 느끼는 행복이다. 이를 ‘소극적인 행복’이라고 하자. 이런 행복은 경제성장과 1인당 GDP(국민총생산)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경제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소극적인 행복으론 만족을 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부터는 적극적인 행복을 추구하게 된다. 일본의 경우 전후 고도 성장기에 풍요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 즉 결혼해서 집을 사고 차를 구입하고 좋은 전자제품을 갖추고,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행복이었다. 이런 메커니즘은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는 시기에는 가능했다. 하지만 성장이 멈춘 지금, 과거와 같은 행복 추구 시스템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회가 됐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 어떤 방식으로 행복 방정식을 추구하고 있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성장해도 국민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일본도 그렇지만 한국 역시 가족중심 사회다. 한국은 아직 풍요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 자체가 행복일 것이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나뉘어 있는 게 문제다. 경제가 성장해도 풍요로운 가정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면 불행한 사회다. 풍요로운 가정을 만들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사회는 국민 전체의 행복지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경제성장이 멈춘 사회에서의 행복 방정식은 ‘다른 사람과 비슷한 생활이 가능한 가족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제성장이 멈춘 사회에서 국민의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다. 현재 남성, 특히 젊은층의 경제력 격차가 커지는 게 모든 문제의 근본이다. 과거에 남성은 취직하면 안정적인 수입이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수입도 늘어났다. 하지만 지금은 취업도 안 되고, 정규 직원도 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경제력이 없는 남성이 늘어나고 있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않으니까 결혼도 못하는 것이다. 남성이 가족을 부양하는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가정을 지탱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또 사회보장 시스템을 통해 젊은 세대로의 부의 재분배가 필요하다.

-지난해 일본에서 유행한 말이 있다. ‘결정하지 못하는 정치’라는 말인데, 후진적인 정치도 국민들의 행복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물론 정치도 국민의 행복도와 관계가 있다. 특히 일본 정치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게 문제다. 어떤 정책을 추진하려 할 때 조금이라도 반대가 있으면 그만둬 버린다는 것이다. 정책의 결정은 그 정책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에겐 손해를 의미한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추진 문제만 하더라도 일본을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것임에도 반대하는 사람이 조금 있으니까 결정을 안 해 버리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 정치는 현상유지가 최선인양 흘러왔다.

-한국 정치도 일본 못지않게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한국은 움직이는 사회다. 일본과 비교하면 앞으로 나아가는 사회 아닌가. 나는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이 한국사회를 역동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된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은 지금까지 그런 계기가 없었다. 바뀌지 않더라도 대충 풍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니까 변하지 않았다.

-선생께서는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 일본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거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거의 2년이 돼 가는데 변화된 게 있나.

▶대지진 직후 일본 사회는 지진복구를 위해 하나가 돼 있었다. 하지만 그것인 단순히 감정적인 대응에 그쳐 새로운 모습으로 승화되지 못했다. 일본 사회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개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