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걸출한 놈이 왔다.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31일 개봉예정)이다. ‘본 시리즈’나 ‘007’이 안 부러운 한국형 첩보액션영화로 21일 서울의 한극장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통해 강렬하고 매끈한 위용을 드러냈다. ‘도둑들’에 이어 할리우드 장르를 한국적으로 완벽하게 ‘토착화’시킨 작품으로 꼽을 만하다. ‘본 시리즈’를 비롯해 ‘미션 임파서블’ ‘007 시리즈’ 등 최근 할리우드 첩보 액션 영화의 트렌드를 반영하면서도 남북분단 상황을 중심에 넣었고, 한국적인 정서를 아울렀다. 한국형 장르영화의 발전 속도를 증언하는 작품이다. ‘도둑들’에 이어 한국의 대중영화가 천착하고 성취한 영화적인 쾌감과 오락적인 가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국정원 요원과 북한 첩보원은 물론 미국 중앙정보부(CIA) 및 이스라엘 비밀경찰인 모사드, 러시아 국제 무기 거래상, 아랍의 무장단체까지 아우르는 국제적인 이야기의 규모는 촘촘하고 탄탄한 드라마로 뒷받침됐다. 외화획득을 위해 북한이 베를린에서 러시아 및 아랍무장단체에 미사일 밀수출을 시도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기 밀거래에 투입된 일명 ‘공화국의 영웅’이자 베를린 주재 북한 비밀 첩보원인 표종성(하정우 분)을 둘러싸고 남한의 국정원 요원 정진수(한석규 분)와 북한의 내부 감시요원 동명수(류승범 분)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는 것이 드라마의 줄기다.
세 남자가 최후의 대결을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남한과 북한, 미국, 이스라엘 정부 및 정보기관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서로에게 총구를 겨냥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으며 음모와 배신의 비밀 작전을 펼쳐간다. 말끝마다 “빨갱이”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는 정진수와 ‘당’에 대한 헌신과 충성심으로 투철한 표종성이 정치 논리에 따라 남북한 권력으로부터 점차 밀려나고, 벼랑끝에 몰린 두 남자는 신념과 생존을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으로의 북한 최고 권력승계 과정에서 내부 투쟁은 미사일 밀수출과 김정일의 은닉 계좌 처리를 둘러싼 갈등으로 표현된다. 각 국 정보기관이 도청과 CCTV를 통한 추적, 피아가 구분없는 정보 밀거래를 하는 장면들이 이어지며 첨단 첩보 스릴러로서의 면모를 과시한다.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숨돌릴만하면 이어지는 추격전과 대규모 총격전, 그리고 빠르고 호쾌한 격투장면은 액션영화로서 쾌감을 극대화했다. 빈틈없이 짜맞춰진 음모와 배신, 투쟁의 드라마가 전개 되는 가운데에도 우정과 연민, 로맨스의 진한 정서를 자아내는 시퀀스가 빠지지 않았다. 하정우와 극중 부인이자 독일주재 북한공사 통역사로 나오는 전지현과의 멜로는 관객의 마음을 적시기에 충분하다.
전체적으로 긴장과 이완, 액션과 정서의 리듬이 탁월하게 연출됐다. 속편에 대한 암시를 주는 마지막 장면을 참고하면,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경우 한국의 첩보 액션영화 시리즈로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고 하겠다. 류승완 감독의 작품 경력에서는 데뷔작 B급 액션영화였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시작으로 1960년대 한국 첩보 영화에 ‘오마주’(존경)를 표한 ‘다찌마와 리’까지 이르는 장르영화에 대한 모색과 탐험이 완성된 경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영화사로 보면 열악한 영상ㆍ촬영기술과 허술한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007’ 같은 작품에 경도됐던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전반의 스파이 액션영화에서 시작해 ‘쉬리’에서 한차례 도약기를 경험했던 한국형 첩보영화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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