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겐 쉼터로…연인들에겐 데이트장소로 나이·성별 불문 청량한 문화공간으로 주목

영화제·무지개분수쇼등 여름이벤트도 풍성 무더위속 오아시스…외국인 발길도 북적북적

지루한 장마가 반짝 쉬어간 지난 26일 금요일 밤. 도심이 오색찬란한 네온사인 속에서 ‘불금(불타는 금요일)’으로 무르익어가는 밤 9시, 도심의 화려함을 등지고 서울 한강시민공원 뚝섬지구를 찾았다.

장마에 부쩍 불어난 한강은 도시생활 속에 지친 사람들에게 시원한 강바람을 선사하고 있었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강을 따라 이어지는 자동차 행렬의 붉은 궤적의 빛, 다리 곳곳의 알록달록한 아름다운 조명은 시간의 흐름마저 잊게 했다. 강남의 빌딩과 아파트 불빛이 강물에 반사되면서 한강의 고즈넉함을 더욱 운치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간혹 들리는 지하철의 ‘덜커덩’소리도, 강변북로의 자동차 달리는 소음도 한강의 고즈넉함에 묻혀버린다. 매미와 풀벌레 소리가 한여름밤 더위를 식혀 청량감마저 준다.

늦은 시간인데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강의 곳곳에서 여름밤을 즐기고 있었다. 잘 포장된 자전거 도로 위에는 불빛을 밝힌 사이클 행렬이 이어지고, 강변 계단에는 연인들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선상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라이브 음악을 듣고 있다. 아이와 함께 강가를 거니는 가족은 물론, 늦은 운동을 나온 중년 부부, 애완견과 함께 산책하는 젊은 부부, 잔디밭 위의 여러 동호회 사람들, ‘치맥(치킨과 맥주)’으로 한 주를 마감하는 직장인들까지, 다양한 군상 속에서 한강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한강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어린이에서 장년층까지 한데 어울려 쉴 수 있는, 모든 이들의 여름밤 안식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거 10대들의 탈선 장소나 취객의 고성방가, 시비 소리가 넘쳐나는 곳이 아닌 시민의 공간으로 탈바꿈, 새로운 서울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

뚝섬지구는 지하철 7호선 뚝섬유원지가 있어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남자 친구와 함께 온 김영선(28ㆍ서울 신당동) 씨는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강변에 앉으면 고급 카페에 있는 것보다 더 로맨틱해진다”면서 “한강은 연인들에게 너무 좋은 데이트 코스”라고 말했다. 로맨틱한 분위기 탓인지 곳곳의 연인들은 어깨동무 등 가벼운 스킨십을 하며 깊은 밤을 즐기고 있었다.

청담대교 다리 밑에는 영화제가 한창이었다. 서울시가 마련한 ‘한강 행복 몽땅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진행되는 영화제에는 100여명의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연인의 무릎을 배게 삼아 영화를 보는 사람, 치맥과 과일을 먹으며 영화를 즐기는 부류 등 다양했다. 인근에 거주한다는 조정현(38ㆍ서울 성수동) 씨는 “집에서 저녁 먹고 가족과 슬슬 걸어 왔다”며 “솔솔 부는 강바람에 편하게 영화까지 볼 수 있는 장소는 이곳뿐일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잔디밭에는 돗자리를 깔고 샌드위치와 과일을 펼쳐놓은 한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퇴근하고 안양에서 부인, 딸과 함께 한강을 찾았다는 김민수(34) 씨는 “장마도 주춤하고 주말에 다시 비가 온다고 해서 부랴부랴 드라이브도 할 겸해서 나왔다”며 ”오는 길이 좀 막혔지만 막상 와 보니 예전 데이트할 때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선상 카페 근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는 한 여고생은 “예전에는 혼자 오기가 겁이 났지만 막상 와 보니 밝고 활기가 넘친다”며 “집이 근처라 학원 마치고 종종 들르는데 마음도 차분해지고 흐르는 강물에 스트레스를 털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자정을 향해 달리는 시간, 반포지구로 자리를 옮겼다. 더욱 깊어진 밤 탓인지 반포대교 무지개 분수 밑에는 애틋한 연인들이, 강변과 편의점 주변에는 가볍게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직장인 안나현(24) 씨는 선선한 강바람을 맞으며 치킨에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퇴근 후 친구와 함께 한강을 찾았다는 그녀는 한강의 장점으로 여유로움을 꼽았다. 안 씨는 “저에게 한강의 여름밤은 남자 친구 같다”며 “하루종일 일하면서 지친 마음을 풀어 주는 다정한 남자 친구”라고 살포시 미소지었다.

벽안의 외국인도 종종 눈에 띈다. 영국에서 온 다니엘 피스(28) 씨는 “한강에 오면 차분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며 “템스강은 야경은 좋지만 더러워서 한강과 비교할 수 없다”고 전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현재 12개 한강시민공원을 운영하고 있다. 각 공원들은 다양한 시설들과 각기 다른 분위기로 시민들을 이끈다. 강북과 강남을 잇는 여러 개의 한강 다리들은 각자의 고유한 모습과 조명으로 그 자태를 뽐낸다. 여의도 프로프즈 이벤트나 반포지구 무지개 분수쇼, 뚝섬지구 자벌레 전망대, 한강크루즈와 캠핑장 운영 등 각종 행사와 다양한 시설로 한강의 여름밤은 더욱 빛났다.

이처럼 한강은 시민들의 안식처이자 휴식공간이 되고 있지만 문제점 역시 존재했다. 많은 시민들은 전단지와 쓰레기, 안전문제를 한강공원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소수이긴 하지만 과도한 애정행각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강을 자주 찾는다는 전형기(43ㆍ서울 중림동) 씨는 “공원 입구부터 치킨 전단지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며 “놀고 가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모아 버리려고 해도 쓰레기통을 찾기가 어려워 그냥 방치하고 가는 경우가 잦다”고 지적했다.

주부 이경자(58ㆍ서울 성수동) 씨는 “한가롭게 걷다가 쌩쌩 달리는 자전거에 놀란 적이 많다”며 “얼마 전엔 자전거와 사람이 부딪치면서 구급차가 오는 사고도 목격했다”고 전했다.

박세환ㆍ이태형 기자ㆍ김훈일 인턴기자/


gre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