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윤현종 기자ㆍ이혜원 인턴기자] 빌리어네어 반열에 오른 홍콩부자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막대한 현금자산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재산의 13.8%를 언제든지 쓸 수 있게 준비했다. 이 비율은 중국 본토 억만장자(2.4%)의 6배에 육박한다.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홍콩부자들의 속사정은 무얼까.

현금부자 9명의 ‘급전’ 19조 2600억…1위는 부동산재벌 리쇼키=전 세계 빌리어네어 상위 200명(13일 블룸버그 집계 기준) 중 홍콩 출신 부호는 9명. 이들의 순자산 합계는 1260억 달러다. 한화 139조2500억원에 달하는 재산 가운데 현금자산은 19조2600여억원(175억달러)정도다. 한 명 당 평균 2조1400억원을 가진 셈이다. 같은 블룸버그 집계에서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현금자산(6078억원ㆍ5억5000만달러)보다 3.5배 많다.

홍콩 부자 9명 가운데 현금이 가장 많은 이는 리쇼키(87) 헨더슨부동산그룹 회장이다. 우리 돈으로 따진 현금자산은 3조5360억원(32억달러)이다. 아시아 최대 갑부로 평가받는 리카싱(86)청쿵그룹 회장은 이보다 2000억원가량 적은 3조3156억원(30억달러)의 현금을 갖고있다.

이밖에 레이몬드 쿽(64) 순훙카이그룹 부회장 등 3명이 각 2조7630억원(25억달러)씩 보유해 현금부자 공동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뒤이어 조셉 라우(63) 전 차이니스에스테이츠홀딩스 회장의 현금자산은 2조4310억원(22억달러)으로 집계됐다. 이들 상위 6명은 모두 부동산개발업으로 부를 일궜다. 나머지 3명도 언제든 쓸 수 있는 돈을 합치면 한화 1조8000억원(16억2500만달러)에 달한다.

홍콩 억만장자의 현금보유 비율 13.8%는 중국대륙에 자리잡은 ‘본토부자’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마윈(50) 알리바바그룹 회장 등 13명의 순자산 합계는 1748억달러지만 현금자산은 총 42억7500만달러(4조7247억원)정도다. 비율로 보면 2.4%에 불과하다. 심지어 중국대륙의 ‘부동산 왕(王)’으로 불리는 왕젠린(60)완다그룹 회장은 집계상으로는 현금자산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엑소더스 vs 사업재편=이처럼 홍콩부자들이 현금을 뭉칫돈으로 갖고있는 건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언제든지 떠나고 싶을 때 홍콩을 뜨겠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엑소더스의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홍콩 부호와 중국 중앙정부의 관계다. 다시 말해, 중앙정부(중국 공산당)의 영향력이 미치는 홍콩 행정장관과 현지 재계를 장악한 주요 부자들과의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지난 2012년 홍콩 행정장관이 된 렁춘잉(梁振英)은 당선 직후 “과거 홍콩의 자유방임 전통에서 벗어나 정부가 소득 불균형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소위 ‘반재벌 공약’ 실행을 다짐했던 것. 자연스레 홍콩 부자들과 중국 공산당의 관계는 경색됐다. 당시 리카싱 회장도 렁춘잉을 지지하지 않았다.

부자들이 일반시민들의 반(反)재벌 정서를 못마땅해 하는 것도 한몫 한다. 특히 작년 가을 홍콩의 ’우산혁명’시위가 길어지자 부호들은 시위대를 비판했다. 부동산재벌 리쇼키 회장도 “(시위는)홍콩의 경제, 금융, 사회번영에 악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국제적 명성도 해친다”고 지적했다.

물론, 최근 홍콩부자들이 현금을 쌓아두게 된 ‘표면적인’ 이유도 따로 있다. 바로 사업구조개편이다. 특히 주목받는 건 리카싱 회장의 움직임이다. 사업재편을 위해 자산 매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6일 중화권 언론 등은 리 회장의 청쿵그룹 자회사 허치슨왐포아가 회사 산하의 항만업체(허치슨포트홀딩스) 지분 40% 가량을 중국 국영 컨소시엄에 팔고 현금화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매각 규모는 1500억 홍콩달러(21조36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 아니다. 지난달 9일 리 회장은 자신의 모든 사업을 부동산과 기타사업 두 분야로 나누는 구조개편안을 발표했다. 이 중 부동산개발 관련사업은 홍콩주식시장에 상장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곳 부호들의 사업 구조개편과 관련한 자산 현금화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 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이 1세대 창업주인 이들의 평균연령이 높아져 상속시기가 다가왔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실제 홍콩 현금부자 상위 9명의 평균 나이는 74세다. 특히 리카싱은 86세로 최고령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