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상현ㆍ양대근 기자]박근혜 대통령과 이완구 국무총리의 부패척결 선언 이후 검찰을 필두로 하는 정부 기관들의 사정(司正) 정국이 본격화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정윤회 문건 파동’ 사건 등으로 최근 몇 년 동안 주춤했던 대기업 수사도 확대되고 있다.
포스코 건설 비자금 의혹 규명에서 시작된 검찰의 수사는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의 소환을 앞두고 분수령을 맞고 있다.
전 정권의 자원외교비리 수사도 속도를 내면서 사정의 칼끝은 이제 전 정권의 심장부로 향하고 있다.
사정(司正)의 사전적 의미는 ‘그릇된 일을 다스려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역대 정권의 경우 이번 경우처럼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사정을 히든카드로 꺼내든 사례가 적지 않았다.
정ㆍ관계 주요 인사들은 물론 재벌기업 총수들까지도 예외 없이 타깃이 되곤 했다.
▶양날의 칼=대규모 검찰 권력을 동원한 사정 수사는 집권 세력에겐 늘 ‘달콤한 유혹’이다. 지지율 반등과 국정 동력의 확보 등 성공시 주어지는 여러 반사 이득 때문이다. 하지만 과도한 사정 드라이브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검찰의 사정 수사는 ‘양날의 칼’, ‘독(毒)이 든 성배(聖杯)’로 불린다.
수사가 시작될 때마다 검찰은 “증거와 법과 원칙에 입각한 절제된 수사”를 공언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부패척결수사에서도 ‘외과수술식’ 수사를 약속하고 있다. 모두 과거 과도한 칼날의 ‘데자뷰’를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사 대상자가 체감하는 사정의 강도는 여전히 융단폭격에 가깝다.
전직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막상 수사가 시작되면 환부만 도려낸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며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는 아무래도 전면전의 수사 방식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그러나 성과를 내지 못하는 수사는 역풍을 맞고 결국은 민심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형사 전문 변호사로 특검에도 참여한 바 있는 탁경국 변호사는 “충분한 내사 등으로 검찰이 사전에 얼마나 중요한 증거를 확보해 놓고 있었느냐가 수사 결과를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검찰의 사정 수사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정권 등 외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주문한다. 그러나 동시에 검찰을 가장 잘 활용하고 부릴 줄 아는 정권 만이 사정의 과실을 제대로 향유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용철 변호사는 “권력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게 검찰 조직의 생리”라며 “현 정권은 역대 정권 중에서 그런 검찰의 생리를 가장 잘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반대로 대규모 사정이 실패로 끝났을 때 내상을 가장 크게 입을 수 있는 정권이라는 얘기도 된다.
▶성공한 사정, 실패한 사정=검찰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문민정부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하자 집권 3년 차인 1995년에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워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1999년과 2003년에 각각 외환위기와 불법 대선자금이 도마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 때에는 당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ㆍ관계 로비 의혹으로 검찰의 칼날이 향했다.
사정이 성공했을 때는 국면전환뿐만 아니라 ‘경제 투명화’로 투자가 촉진되고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까지 올리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특수통’으로 잘 알려진 검찰 고위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현대자동차의 비자금 사건과 지난 2003년 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구속한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건을 성공한 케이스로 꼽고 있다”고 밝혔다.
수많은 스타 검사를 배출한 것도 이 때였다.
안대희 전(前) 대법관은 지난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등 여야를 가리지 않는 뚝심 있는 수사로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과 함께 ‘국민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도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구속해 ‘재계 저승사자’라고 불렸다.
그러나 사정 정국이 꼭 원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만은 아니었다. 검찰 수사가 장기화하거나 눈에 띄는 성과를 얻지 못할 경우에는 ‘꼬리자르기식 수사’, ‘전면전식 수사’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 때마다 수사 도중 특수통 검사들은 줄줄이 옷을 벗어야 했다.
특히 정치적인 판단이 깔린 수사는 최악의 참사를 불러오기도 했다.
MB 정부는 정권 교체 직후부터 사정기관을 총동원해 참여정부 비리에 대한 전방위적, 저인망식 수사를 주도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2008년 8월 당시 검찰이 압수수색 등 수사 타깃으로 삼은 기업이 무려 20여개를 넘었다.
당시 한 달에 3개 기업꼴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비슷한 시기 꺼내 든 ‘박연차 게이트’ 카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서(急逝)’로 용두사미로 끝이 났고 이어 중수부 폐지와 ‘검란(檢亂)’이라는 더 큰 소용돌이로 빠져 들고 말았다.
검찰 내부에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수사가 또 있다.
2010년 중반 한화,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는 기업과 검찰 모두에게 타격을줬다. ‘공정사회’ 확립이라는 명분 아래 20여 차례의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300여명이 넘게 검찰 청사로 소환됐다.
그러나 잇따른 영장 기각으로 검찰은 체면을 구겼고 140여일동안 이어진 수사는 ‘표적 수사’라는 비판에 부딪혔다.
한화 관계자는 “해를 넘기면서 수사가 이어져 새해 경영 계획을 짜는 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었다”이라고 회고했다. 비슷한 시기 C&그룹 비자금 수사 역시 ‘정치보복’ 논란에 휘말렸다.
▶사정의 정치학=사정 정국의 정치적 효과는 검찰과 정권의 ‘보이지 않는’ 암투에 따라 달라진다. 참여정부 첫 해 대선자금’ 수사로 당시 여권은 정치적 기반을 확고히 장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권과 ‘긴장 관계’에 가까웠던 검찰로 인해 집권 여당이 성공의 파이를 모두 차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MB 시절 검찰은 비교적 정권과 가까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대기업 수사에서 유난히 검찰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 배경을 두고 기업들의 치열한 로비 때문이라는 말들이 돌았었다. 친기업 성향 정권의 생리를 파고 든 기업들의 로비가 성층권에서 작용했다는 것이다.
당시 수사를 지켜봤던 검찰 관계자는 “지금과 달리 정권 핵심부에 검찰 출신 보다는 친기업 성향의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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