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엔리코 레타 이탈리아 총리…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긴축정책? 집권당수? 염문설? 다름아닌 바로 ‘말’(馬)이다. 동양의 12간지를 해외 정상들에게 들이밀기엔 다소 무리가 있으나 우연찮게도 이들은 모두 말의 해에 태어났다.
2014년 ‘청마(靑馬)의 해’, 올해는 유럽 정상들이 마음껏 누비는 한 해다.
메르켈 총리와 올랑드 대통령은 각각 1954년 7월과 8월에 태어났다. 레타 총리와 캐머런 총리는 1966년 8월과 10월 생이다. 이들 네 사람은 모두 동갑. 다르게는 메르켈 총리-올랑드 대통령과 레타-캐머런 총리는 띠동갑인 셈이다.
▶군마(War horse), 타고난 싸움꾼이자 승부사=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는 메르켈 총리에게 ‘메르키아벨리’란 별명을 붙여줬다. 메르켈 총리는 2008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침체에 빠진 유럽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긴축 정책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리스, 포르투갈 등 재정위기 현실에 직면해 구제금융을 제공받은 몇몇 국가들은 메르켈 총리의 일방적인 긴축정책 요구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으나 수 년이 지난 지금 이들 국가들의 경제상황은 많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승부사적 기질은 국내 정치에서도 발휘됐다. 기독교민주당 대표로 활약하던 2000년, 당 내 비밀 헌금 문제가 불거지자 헬무트 콜 전 총리와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5년엔 제 2차 좌파-우파 대연정을 통해 8대 총리로 취임했다. 독일의 첫 여성 총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영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에게 아낌없는 복지를 제공하는 국가지만 캐머런 총리는 국민의 비난을 뒤로하고 재정적자 감축에 나섰다. 그의 강한 추진력의 비결은 젊은 나이. 2010년 43세의 나이로 다우닝가 총리관저에 입성한 그는 200년 만의 최연소 총리가 됐다.
올랑드 대통령 역시 자신의 지지기반이기도 한 노동조합의 반발을 무릅쓰고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납부 기간을 연장하는 연금개혁법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레타 총리는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연정 구성에 성공하고 이탈리아 정국을 안정시켰지만 일부 정치인들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의원직 박탈에 반대하며 사임하자 지지세력을 이끌고 연정을 탈퇴, 자신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하는 승부수를 던지기도 했다. 결과는 재신임 성공. 이후 경제 재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인기 많고 사회성 강한 말띠, 화합을 주도=레타 총리는 두 달 동안 지속되던 혼란 속의 이탈리아 정국을 수습할 인물로 지명됐다. 이탈리아는 상대적으로 나이많은 정치인들이 다수를 차지해 세대교체가 요구되는 상황이었고 그의 젊은 나이와 이데올로기에 흔들리지 않는 이미지가 장점으로 부각됐다.
그는 민주당과 자유국민당, 중도연합이 뭉친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지난해 4월 이탈리아의 총리에 취임하는데 성공했다.
메르켈 총리도 지난해 3선 연임에 성공했다. 기민당은 9월 총선에서 630석의 의석 가운데 311석을 얻어 과반수 확보에는 실패했으나 선거에선 압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후 기민당과 자매정당인 기독교사회당 연합, 중도좌파 사회민주당과의 연정에 성공해 총리로 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난해 잠시 주춤했던 유럽 통합의 움직임도 메르켈 총리가 3선 연임에 성공하며 다시 힘을 얻게 됐다.
또한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27일 2차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 희생자를 기리는 행사에 참여해 피해자의 연설을 경청하고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 대변인을 통해 “자신들의 역할에 정직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이와 달리 갑오년생 동갑인 아베 총리는 과오를 뉘우치고 반성하기는 커녕 우경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길들여지지 않은 자유로운 야생마=올랑드 대통령에게 있어 여자 문제는 골칫거리다. 그는 결혼이 아닌 자유결합으로 4명의 자녀를 뒀고 2010년엔 신문 기자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와의 연인관계를 공식화 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최근엔 여배우인 쥘리 가예와 염문설에 휩싸였고 자유로운 사생활은 그의 정치 활동을 방해하기도 했다.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며 자신을 변호하고 신년엔 민생 살리기를 강조했지만 대중들에게 있어 공과 사는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메르켈 총리 역시 한 번의 이혼 경력이 있다. 1977년 물리학자인 울리히 메르켈과 결혼했으나 1982년 이혼했고 이후 1998년 화학 교수인 요아킴 자우어와 재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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