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의 공포가 일상을 점령하고 있지만 최근 개봉한 영화 <쥬라기 월드>는 그런대로 선전을 하는 모양이다. <쥬라기 월드>는 뜻밖에 메르스 재난이라는 우리의 현실을 비쳐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정체를 규정할 수 없는 괴물 공룡, 기업의 경제적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첨단 과학기술과 자본, 공룡 탈출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매뉴얼로만 움직이는 관계자들, 공룡 탈출이 현실화 되자 재난의 발생을 신속히 알리지 않은 중앙 컨트롤타워, 또한 재난의 와중에 컨트롤타워를 장악하려는 새로운 세력의 등장 등이 모두 지금의 우리 현실과 유사하다.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이후 방송과 신문에서는 자칭 타칭의 전문가들, 정체를 알 수 없는 단골 논객들이 나와 상황에 따라 중구난방의 말들을 떠들고 있다. 그들에게 메르스 정국은 또 하나의 대목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 국무총리가 새로 임명되었다. 다행이다. 총리는 메르스 종식 총리가 되겠다는 공언을 하고 메르스와 민생 현장을 다니고 있다. 하지만 걱정도 앞선다. 총리의 행보가 아니라 대통령과 총리의 임무와 역할에 대한 모호성 때문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대통령은 신속히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다른 경쟁자들이 보였다. 그 때문에 자칫 대통령의 국정수행력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지지도가 30%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의 대통령제는 지금까지 마치 18세기 유럽의 계몽절대군주의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그런 역할을 강요받기도 했다. ‘군주는 국가의 제1 하인’이라 자처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18세기 유럽의 대표적 계몽절대군주였지만, 실상은 그가 모든 일을 직접 확인하고 재가(裁可)했다. 그의 일과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산더미 같이 쌓인 행정과 민원의 확인과 결재로 꽉 짜여 있었다. 자주 야전부대도 방문할 뿐 아니라, 학자와 예술가들도 만났으니 얼마나 바빴을까. 하지만 역사를 두고 보면 그것이 아무리 선의에 찬 통치라 할지라도 권위주의적 1인 통치에 다름이 아니었다.
그 역사적 경험이 바탕이 되었는지 현재 독일은 대통령 1인 통치가 아닌 내각책임제를 취하고 있다. 독일의 내각책임제에서는 대통령과 총리가 구조적으로 통치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대통령은 대표성과 연설을 통해, 총리는 정치적 책임과 행정을 통해 통치 행위를 수행한다. 대통령은 주요 민생의 현장을 찾고 국민들을 직접 만나 여론을 청취하는 일을 자주 한다. 국민들은 그를 현장에서 쉽게 만나 의견을 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가의 주요 이슈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과 연설은 모든 사람들이 경청할 수 있는 권위를 담을 수 있다.
대통령 중심제인 우리의 경우 독일과 평행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그 장점을 충분히 수용하면 이상적인 대통령제도 가능할 것이다. 요컨대 대통령은 항상 민생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이벤트 식으로 현장을 방문한다면 지금의 메르스 정국처럼 대통령은 총리 그리고 여야 정당의 대표들과 현장 방문을 경쟁하는 우스운 상황이 연출된다. 그리고 대통령은 현장에서 설명이나 지시보다는 현장의 소리를 듣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렇게 청취한 현장의 여론은 총리를 통해 내각에 지시하고 총리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고 그 지시가 실현되게 해야 한다. 즉 행정 행위는 총리에게 많이 위임하고, 대통령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과 결정 및 민생의 현장에 매달려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대통령의 발언과 결정은 권위와 신뢰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우리 정부에게는 북핵과 통일문제,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외교의 현안, 민생경제 등 결코 쉽지 않은 정치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그 어느 것도 적당히 결정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주장하는 원칙의 정치는 여기에 존재해야 하고, 집중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런 정치 현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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