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논문 쓰는법을 제대로 배운적이 없는데 이것저것 짜깁기해서 대충 쓸 수 밖에 없죠. 취업 준비도 바빠 죽겠는데…”
서울소재 유명 사립대학 졸업을 앞둔 김기수(27ㆍ가명)씨는 도서관에서 빌린 몇권의 책과 인터넷 블로그 등을 종합해 졸업논문을 뚝딱 해치웠다.
김씨는 혹시나 싶어 인터넷 표절검사 프로그램을 이용해 문장을 조금씩 바꾼 뒤 논문을 제출해 심사를 통과했다.
문학계가 표절 논란으로 들끓는 가운데 대학가에 만연한 표절도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학가에 이른바 ‘복붙’(복사+붙여넣기)이 등장한 건 오래전 일이다. 웬만한 보고서나 과제는 인터넷에서 돈을 주고 구매가 가능하다.
과제에 대한 피드백은 커녕 다 읽어보지도 않고 제출 여부만을 따지는 교수들도 상당수다. 표절에 익숙해진 대학생들이 취업을 앞두고 논문에 시간을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한국콘텐츠학회가 발표한 ‘대학생들 정보윤리 의식과 과제표절 실태 분석’ 논문에서 서울 소재 H대학 학부생 165명을 대상으로 과제 표절에 관해 설문조사한 결과 127명(77%)이 과제 표절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절 경험이 있는 학생들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85명(51.5%)은 ‘인터넷에서 자료를 다운받아서 제출하거나 베꼈다’고 응답했다.
‘다른 사람의 과제를 베껴 냈다’거나 ‘책이나 인쇄 자료에서 베껴서 제출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각각 66명(40%), 57명(34.5%)이었다. ‘유료 사이트에서 리포트를 구입한 경험이 있다’는 학생도 28명(17%)이었다.
논문의 저자 오은주(경일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도덕적 일탈이 쉬운 인터넷 환경 뿐 아니라 표절의 심각성에 대한 교육 부재, 표절에 대한 불이익이 없는 무관심한 교수·학습 환경의 문제”라면서 “표절에 대한 교육 뿐 아니라 위반시 처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표절이 범죄라는 의식을 일깨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권 대학에선 표절이 밝혀지면 제적당하는 게 당연시된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걸 만들어서 제출하는 그 과정 자체가 교육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자 진리의 상아탑이 되기를 포기한 세태와 표절이 맞닿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평론가 이택광(경희대 영미문화과) 교수는 “대학이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하면서 교육이 총체적으로 부실해졌다”면서 “고도의 지적 작업을 할 필요성은 무시되고 좋은 학점과 학위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하니 표절 문제 자체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외국 대학들 경우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 대학을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리나라 대학은 단순히 학점과 학위를 주는 것에 그치고 있다”면서 “가뜩이나 취업난이 심해져 학부생에게 제대로 된 논문을 요구하는 교수가 오히려 나쁜 사람이 되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