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짧은 여행이라도 꼭 캐리어에 라면이며 볶음 고추장이며 반찬을 주섬주섬 담는 친구가 있었다. 현지에 가면 현지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나름의 지론으로 그 모습을 철 없이 바라볼때면,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엄마 밥상의 ‘매운맛’이 타국만 가면 그리도 생각난다는 친구의 변명아닌 변명이 돌아오곤 했다. 익숙한 맛이 그리워지는 것은 단 하루면 충분했다. 친구가 열심히 캐리어에 담았던 뻔한 먹거리들은 2~3일이면 금방 동이 났다. 오히려 그것들을 ‘탐’했던 것 친구보다 나였다.

더 플라자 교토 오반자이 [사진제공=더 플라자]
더 플라자 교토 오반자이 [사진제공=더 플라자]

화려한 것은 금방 질린다. 일 년에 한 번 입을까말까한 고가의 원피스가 장롱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동안 휘뚜루마뚜루 걸치기 좋은 면티며 바지는 수십번을 입으며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비단 옷 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 이 땅에서 삼시세끼를 먹은 이들만이 공유하는 익숙한 맛이 있다. 김치, 콩조림, 멸치 볶음, 진미채조림, 즉석김 등 냉장고에서 무심하게 꺼내서 심지어 접시에 덜지도 않은채 밀폐용기 째로 먹는 늘 그렇고 그런 반찬들은 무릇 외국의 어느 좋은 ‘코리안 레스토랑’에서는 만날 수 없는 정말 우리 밥상의 주인들이다. 별 것 아닌 것들은 낯선 것과 만났을 때 새삼 특별해진다. 아까운 캐리어 공간을 반찬에 양보했던 친구의 행동은 어쩌면 꽤 의미심장한 행위였던 셈이다.

▶정갈한 교토 가정식을 맛보다=‘가정식’이라는 간판을 건 식당들이 늘어나고 사람들의 발길이 그 곳으로 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학시절에 옆 학교 근방에 유명한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큰 마음을 먹고 갈때마다 기다림마저 포기하게 하는 긴 줄 탓에 그냥 돌아섰던 기억이 난다. 솥에 끓여낸 해산물 스튜, 신선한 샐러드, 갓 구워낸 듯한 초코 디저트 등을 내놓던 그 곳. 그 곳은 프랑스 요리라면 접시 옆을 가득 메운 커트러리를 보며 한 번 멘붕, 큰 접시에 손톱만큼 담겨 나오는 음식들에 문화충격을 받는 프렌치 파인레스토랑을 생각한 이들에게 편안하고 따뜻한, 진짜 프랑스 사람들이 먹는 한 끼를 경험하게 해준다. 한국 사람에게라면 일상에서 먹는 평범한 밥상 정도가 될 이 프랑스 가정식을 그다지 ‘저렴’하지 않은 돈을 내면서도 굳이 찾아가는 이유는, 이 평범한 한 끼가 더 특별하기 때문일테다.

평범하고 익숙한 밥상에 대한 긴 단상을 마치고 또 다른 가정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물 한잔’도 우아하게 먹는다는 일본의 옛 수도, 교토의 가정식 ‘오반자이’다. 일본의 고도(古都)로 오랜시간 문화의 중심지의 역할을 해온 교토의 정갈한 식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것이 오반자이의 특징.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접시에 깔끔하게 담아낸 오반자이 한 상은 일본 특유의 정갈함을 여과없이 뽐낸다.

매일 먹는 밥상이라는 오반자이의 정의가 무색하리만큼 쏟은 정성이 접시접시마다 묻어나는 오반자이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는 조리법을 사용, 식재의 맛과 조미한 소스의 맛이 최상의 시너지를 낸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호텔 더 플라자의 일식당 무라사키는 최근 특급호텔 일식당으로는 처음으로 교토 오반자이를 새로운 메뉴로 내놨다. 오반자이 아이 (愛), 오반자이 라쿠 (樂)로 준비된 오반자이 한 상에는 (아이 기준) 제철 생선회 2종과 장어계란말이, 도미조림, 메로된장구이, 가지튀김, 소고기완자 볶음, 삼치 남방츠케, 연근 긴파라, 얼갈이 다시절임, 영양밥, 토마토샐러드, 된장국, 디저트 등이 올라온다.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 건강한 조리법으로 영양적으로 부족함이 없지만 칼로리가 없는 차림을 완성했다. 해당 계절의 풍미를 담으면서도 숟가락을 놓는 순간까지도 일관된 담백함을 잃지 않았다. 조금 조금씩 많은 종류의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 여성들에게도 제격이다.

찬을 담은 그릇에도 세심함이 보인다. 눈으로 한 번 즐기고, 입으로 또 즐기는 오반자이의 매력을 한 껏 끌어올리는 그릇들은 일본 장인에게서 직접 공수한 것들이다. 재료의 특성에 맞게 그릇을 고르고 담아낸 정성은 교토의 한상에 우아함을 배가 시킨다. 호텔 관계자는 “오반자이는 교토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활용해 집을 방문한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최상의 음식과 서비스를 뜻한다”며 “식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전통 조리법을 활용해 오감만족 메뉴를 고객에게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축복받은 자연이 길러낸 교야사이(京野菜)=식재의 맛을 최대한 살린 교토 오반자이의 중심에는 식재가 있다. 재료에 대한 자신감이 깔끔한 맛의 한 상으로 나타나는 셈이다. 교토 오반자이에 주로 사용되는 식품들은 주로 교토에서 재배되는 특산물들이다. 교토에서 나고 자란 특산물로 만들어내는 한 끼는 교토가 갖고 있는 맛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교토의 특산물들은 흔히 ‘교야사이’라는 이름으로 물린다. 교야사이에는 교토의 축복받은 자연이 길러낸 야채라는 뜻이 담겨있다. 예부터 교토지역에서 재배되던 전통 채소를 브랜드화 한 것이지만 철저한 품질, 브랜드 관리로 지금의 ‘교야사이’는 보통명사처럼 불리고 있다. 교야사이는 농약, 화학비료가 없던 시대의 재배방식을 전승, 오랜 역사의 교토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재배된 것이 특징. 이 같은 교야사이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교토의 전통채소 및 그에 준한 채소로 교토의 전통 요리 등에 필수 또는 관계 있는 품목’이어야 한다. 이 일련의 모든 작업들은 교토의 전통있는 식문화를 계승하고 안전한 농산물로 수입, 타지역의 농산물과 차별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대표적인 교야사이에는 카모나스(가지), 쇼고인다이콘(순무), 겨자과 채소인 미즈나, 만가지 고추, 죽순 등이 있다. 가모나스는 교토에서 재배되는 특산물로 일반적으로 긴 모양의 가지와 달리 둥근 모양을 한 것이 특징이다. 가열해도 모양이 변하지 않아 조림에도 많이 쓰인다. ‘가지의 여왕’이라 불리는 가모나스는 오븐이나 후라이팬에 굽거나 튀김으로도 주로 활용된다. 쇼고인다이콘 역시 쉽게 모양이 부서지지 않아 조림이나 오뎅에 많이 사용된다. 이 외에도 토란의 일종인 에비이모나 만가지 고추도 조림형태로 오반자이에 자주 등장하는 채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