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채권왕, 감세 덕에 자본소득 상승 인정…“죄 지은 느낌” - ‘월가 점령’시위대 독일 나치에 비유한 부호들 공개사과, 노이즈 마케팅 욕심? - 경영권 욕심ㆍ질병 확산ㆍ갑질 논란 등으로 공개사과한 국내부호 막전막후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홍승완ㆍ윤현종 기자] 우리는 언제나 타인과 부대끼며 삽니다. 갈등과 마찰이 생기는 건 당연합니다. 부자라고 다를 게 없습니다. 다만, 현재 그들이 보유한 부(富)와 사회적 지위(?)가 남다르다 보니 뭇사람의 관심을 더 받는 게 차이라면 차이겠죠.

최근들어 대중에게 ‘죄송한’ 부자들, 생각보다 꽤 많은 편인데요. 여러 형태로 공개사과를 하고 있습니다. 이유도 다양합니다. 그간 돈을 너무 많이 벌어 사과한 부호가 있는가 하면 말 실수로 곤욕을 치르기도 합니다. 욕심이 지나쳐서, 또는 일종의 ‘갑질’이 들통나 머리를 조아린 부자도 있죠.

“천 가지 만 가지 모양”이란 뜻의 단어 천태만상(千態萬象)이 절로 떠오르는, 부호들의 공개사과 막전막후를 살펴봤습니다.

1. ‘채권왕’ 빌 그로스:‘돈 많이 벌어 죄송합니다’

글로벌 투자사 핌코(PIMCO)창업자이자 ‘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71). 그는 매월 핌코 고객과 시장참여자에게 보내는 뉴스레터 격인 ‘인베스트먼트 아웃룩’을 통해 공개사과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돈 때문인데요. 미국의 소득격차를 소재로 한 2013년 11월 자 편지였습니다. 제목은 ‘스크루지 맥더크스(Scrooge McDucks)’였죠. 유명한 수전노 캐릭터입니다.

그로스는 편지에서 “레이건과 43대 부시(아들 부시)대통령의 감세정책으로 엄청난 (자본)소득 창출이 가능했다. 그러나 난 그동안 수많은 노동자 덕에 부자가 됐단 걸 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소득증대를 외면해 죄송하다”며 현재 미국의 엄청난 소득격차 상황을 우려합니다.

아울러 그는 “상위 1%와 10%의 소득격차는 지난 40여년 간 갑절로 커졌다”며 “자본소득세율이 노동소득세율보다 낮은 시대는 끝나야 한다. 실물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미안함의 대가로 본인부터 세금을 더 내겠다 공언한겁니다.

그로스는 1년 후 자신이 40여년 간 키워 1조700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게 된 핌코를 떠나 ’야누스 캐피털 그룹‘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현재 순자산 23억달러를 갖고있습니다.

2. 노이즈 마케팅 욕심? ‘대중 ≒ 독일 나치’ 발언으로 공개사과한 부자들

유명 벤처투자사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 바이어스’창업자 톰 퍼킨스(83)는 입을 잘못 놀려 여론 뭇매를 맞고 공개사과 한 경우인데요. 2012년 기준 80억달러를 손에 쥔 자산가이기도 한 그는 2014년 1월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편지 한 통을 보냅니다. 미국 대중이 계층간 경제 격차를 지적하며 벌인 ‘월가 점령’ 시위를 비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WSJ가 게재한 편지에서 퍼킨스는 “미국 상위 1%부자에 맞선 진보주의자의 전쟁은 부(富)를 악마화 한 행위다. 마치 나치 독일의 ‘크리슈탈나흐트(Kristallnacht)’를 연상시킨다”고 적었습니다.

크리슈탈나흐트(‘깨진 유리(창)의 밤’으로도 불립니다)는 1938년 독일과 오스트리아(당시 독일령)의 나치 민병대 조직이 자국에 사는 모든 유대인을 무차별 폭행하고 약탈ㆍ방화를 일삼은 사건입니다.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비판도 거셌습니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와 동종업계 관계자들조차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죠.

결국 이틀 뒤인 27일, 그는 여러 매체에 등장해 ‘나치 발언’을 사죄합니다. 블룸버그에 나온 퍼킨스는 “사과한다. 내가 (편지에서) 고른 단어는 끔찍했다. 잘못됐다”고 인정했죠.

시가총액(5월 기준) 1492억달러, 직원 37만여명을 거느린 글로벌 인테리어 기업 홈 디포(Home Depot)의 케네스 랭곤(79)창업자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순자산 27억달러를 쥔 랭곤은 지난해 3월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월가 점령 시위를 두고 “1933년 나치 독일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의 발언을 합니다.

역시 랭곤을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자 그는 며칠 뒤 성명을 내고 “내 말에 상처받은 모두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러나 한동안 퍼킨스와 랭곤 둘 다 자신의 주장에서 ‘나치’ 두 글자를 걷어내면 문제없단 태도를 보여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억만장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에서 이들 이름이 대중에게 각인된 건 확실해 보입니다.

욕 먹을 걸 사실상 알면서도 과감히 발언한 부자들, 일종의 ‘노이즈마케팅’이었을까요.

3. 노욕(老慾)ㆍ질병ㆍ땅콩회항…한국 부자들 공개사과 맥락과 그 후

국내 부호들도 ‘대(對) 국민사과’를 자주 했습니다. 시민들은 유독 작년 말부터 몇 주 전까지 그들이 고개 숙인 모습을 ‘잊을만 하면’ 접해야 했죠. 사과에 이른 맥락도 다양합니다.

먼저 경영권 분쟁을 일단락 지은 롯데가(家)의 신격호(93) 총괄회장입니다. 그는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정점으로 치닫던 지난 2일, 사과 장면이 담긴 동영상으로 대중에게 죄송하단 메시지를 전합니다.

신 총괄회장은“국민여러분, 롯데그룹을…안타까운 모습을 보여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라며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을 가리켜 “70년간 롯데그룹을 키워온 아버지인 저를 배제하라고 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비판은 계속됩니다. 오히려 경영권을 둘러싼 부자 간 골육상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입니다. 몇몇 매체는 이 즈음 “이번 분쟁의 근본 원인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직접 이끌겠다는 신격호 회장의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됐다”고 적기도 했습니다.

차남 신 회장도 3일과 11일 연이어 대국민사과를 합니다. 한 번은 공항에서, 또 한 번은 집무실이 있는 롯데호텔에서였죠.

그는 “불미스런 사태로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여러분이 우려하는 점(그룹 지배구조 등)을 개혁하고 바꾸겠다”고 말합니다. 특히 두번 째 사과에서 그는 ‘자신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포브스 집계 기준 국내 3위 부호인 이재용(47) 삼성전자 부회장도 사과한 부자 명단에 들어있습니다. 6월 23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였죠. 이 부회장은 자신의 생일이기도 했던 이 날 메르스 확산 방지 실패와 관련, 사과문을 읽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당시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확산 진원지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이 병원은 삼성생명공익재단이 100% 소유하고 있죠.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됐습니다.

6월 23일 대국민 사과문을 읽으며 머리를 숙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헤럴드경제DB]
6월 23일 대국민 사과문을 읽으며 머리를 숙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헤럴드경제DB]

이 부회장은 사과문에서 “국민의 기대와 신뢰에 미치지 못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태가 수습되는대로 병원을 혁신할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공교롭게도 사과 직후 두 회사 기업가치(주가)는 올랐습니다. 롯데 그룹주 가치는 일제히 뛰었습니다. 삼성전자도 3% 오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해 말엔 ‘땅콩회항’사건으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부녀가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 공개사과 하기도 했죠.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은 작년 12월 12일 오후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취재진을 상대로 “여러분들께 심려를 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합니다. 이틀 뒤엔 사과 대상자를 직접 찾았지만 만나지 못하고 ‘쪽지’만 전달하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조 회장도 12일 오후 서울 공항동 그룹 본사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머리를 조아렸는데요. 그는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또한 조현아의 애비로서 국민 여러분의 너그러운 용서를 다시 한번 바란다”라며 “국토부와 검찰 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조현아를 대한항공 부사장직은 물론 계열사 등기이사와 계열사 대표 등 그룹 내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겠다”라고 밝힙니다.

당시 대한항공 주가는 2% 넘게 떨어졌습니다.


윤현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