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홍승완 기자ㆍ이혜원 인턴기자]지구가 종말하면 인류도 사라질까. 영화 ‘킹스맨’엔 세상을 종말시키고 새 세상을 만드려는 야심찬 악당이 등장한다. 물론 일부는 살아남는다. 악당 발렌타인을 후원한 억만장자는 그가 만든 벙커에서 대피할 수 있다. 선택받은 0.01%만 살아남는 것이다.

슈퍼리치만을 위한 벙커는 현실에 엄연히 존재한다. 캘리포니아 기반 대피소개발업체 비보스(Vivos)는 지난 6월 재앙대비 지하 벙커인 ‘유로파원(Europa One)’ 분양을 시작했다. 독일 로데스타인에 위치한 ‘유로파원’은 냉전 시대에 소련이 군수품 저장 용도로 제작됐다. 통일 이후 독일정부가 경매에 내놨고, 비보스 그룹 창업자인 로버트 비치노(Robert Vicino)가 낙찰받아 은밀한 지하 벙커로 재탄생시켰다.

76에이커(약 30만7000㎡)에 들어선 이 시설은 어떤 외부 충격에도 안전하다. 핵폭발, 비행기 추락, 생화학 무기, 심지어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5㎞ 가량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그 사이 방사능차단문 3개도 넘어야 한다.

시멘트 터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지상 낙원이 펼쳐진다. 삭막한 외부 경관과 다르게 벙커 내부는 5성급 호텔 수준으로 꾸며졌다. 레스토랑, 베이커리, 헬스장, 탁아소, 기도실, 미용실, 극장 등 편의시설 대부분이 들어서있다. 교실, 회의실 뿐만 아니라 병원, 방송국, 통신센터, 구치소 등 인프라까지 갖춘 ‘축소판 사회’다. 회원들은 가족단위로 70평 가랑 공간을 할당받는다. 건축가를 고용해 인테리어를 꾸밀 수도 있다.

벙커 안 생활은 오랫동안 지속 가능하다. 자체 수원과 발전기, 정화시설 등이 갖춰 깨끗한 물과 공기, 전기 등을 제공한다. 음식도 걱정없다. 벙커 내부에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시설을 갖췄기 때문에, 외부 도움없이도 생활이 가능한 구조다. 창고에 저장된 음식 외에도 수경재배로 필요한 채소를 생산한다. 가축 또한 가능하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에는 선택받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다. 비치노 창업자는 세계 억만장자들에게 초대장을 보내 회원권을 파는 것으로 알려진다. 분양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로파원’의 현재 가치는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 가량이다. 재앙이 발생하면 회원들은 영화 ‘킹스맨’에서처럼 전용기를 타고 하나 둘 집결하게 된다. 인근 공항에 내리면 비보스가 제공한 헬리콥터를 이용해 벙커까지 이동한다. 모든 입소자들이 들어오면 출입문은 모두 폐쇄된다. 차단 후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헬리콥터뿐이다.

남은 인류는 어떻게 될까. 비보스는 시설 밖 70억 인구에게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존 상품을 판매한다. DNA를 추출해 벙커 안 은행에 저장하는 것이다. 육체는 죽지만 DNA가 남아, ‘홍수’가 끝나면 재탄생(?) 시켜주겠다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