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측 ‘주체 분명한 도발 사과’ 요구에 북한측 이산상봉등 교류협력 카드 제시 대북확성기등 심리전 중단 훈령 받은듯 협상진전 있지만 인식차는 여전히 팽팽
한반도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시작된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은 무박3일 ‘끝장협상’으로 이어졌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장관은 북측의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비서를 상대로 판문점에서 22일 10여시간의 1차 마라톤협상을 가진데 이어 23일 오후부터 날을 넘긴 24일까지 2차 접촉을 진행했다.
▶“웬만한 현안 다 논의”=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24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남북 대표가 엄중한 한반도 위기 상황 속에서 장기간 팽팽한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북은 이번 접촉을 통해 군사적 대치는 물론 남북관계 전반에 걸친 내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치열한 수싸움을 벌였다.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22일 1차 접촉을 앞두고 의제와 관련, “현재 진행 중인 남북관계 상황”이라고 밝혀 군사적 대치 문제가 핵심이 될 것임을 예고했지만, 1차 접촉이 끝나고 민 대변인은 “최근 조성된 사태의 해결 방안과 앞으로의 남북관계 발전방안에 대해 폭넓게 협의했다”고 말했다.
회담 소식통은 “분단 이후 700여차례 남북회담이 있었는데 전례가 없는 장시간 협상”이라며 “웬만한 얘기는 다 논의됐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남측의 외교안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는 김관진 실장과 대북정책 책임자인 홍용표 장관, 그리고 북측의 군부 1인자인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대남라인의 1인자 김양건 비서가 나섰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간 간접대화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 박 대통령은 접촉 기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보고를 받으면서 판문점에 직간접적으로 훈령(訓令)을 전달하며 집중한 것으로 전해졌다.
▶南 “도발 사과” VS 北 “심리전 중단”=접촉 시작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한반도 명운을 판가름할 수 있는 접촉을 앞둔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판문점에 들어설 때만 해도 다소 긴장된 표정이었으나 1949년생으로 동갑인 김관진 실장의 얼굴을 보고 미소를 되찾았다.
김관진 실장과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지난해 10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계기로 만났던 인연이 있다.
하지만 접촉은 난항을 거듭했다. 우리측은 이번 사태가 촉발된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와 서부전선 포격 도발에 대해 북측이 인정하고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과거 몇 차례 있었던 주체가 불분명하고 두루뭉술한 유감 표명이 아닌 ‘주체가 분명한 사과 혹은 유감’ 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남북은 1, 2차 접촉 기간 수차례 휴회와 회의 재개를 반복하고 김관진 실장과 황병서 총정치국장간 ‘1:1 비공개회담’을 통해 합의 도출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매듭을 짓지는 못했다.
▶北 성동격서식 남북관계 개선안 제시=평양으로부터 어떻게든 대북 확성기 방송 등 심리전 중단이라는 성과를 안아오라는 지령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비서는 반대급부로 남북 교류협력 카드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양건 비서는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단하면 남북관계 개선의 출로를 찾을 수 있다”는 의사까지 밝혔다는 후문이다.
북한은 또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앞서 제70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부모 없는 자식이 없듯이 북한의 지도자들도 이산의 한은 풀어주겠다는 전향적인 자세로 문제를 풀어가 주길 바란다”면서 6만여명의 남한 이산가족 명단을 북한측에 일괄 전달하겠다며 북한도 이에 동참해 연내 남북 이산가족 명단을 교환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지뢰와 포격 도발에 대한 입장 표명을 회피하면서 대북 심리전 중단이라는 선물을 받아가기 위해 남측이 관심을 가질만한 의제를 의도적으로 꺼내든 셈이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5ㆍ24 대북제재 조치 해제와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제시해왔다는 점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도 자연스럽게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접촉 시간이 충분했던 만큼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DMZ 세계생태평화공원과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도 거론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평양시간 해프닝, 접촉 시작 30분씩 늦춰져=한편 북한이 지난 15일부터 일제 잔재 청산을 명분으로 기존보다 30분 늦은 ‘평양시간’을 새로운 표준시로 시행하는 바람에 이번 접촉 과정에서 남북의 시차가 새삼 확인되기도 했다.
애초 1차 접촉은 22일 오후 6시, 2차 접촉은 오후 3시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정작 30분씩 늦은 22일 오후 6시30분과 23일 오후 3시30분 시작됐다.
본격적인 협상을 앞두고 신경전이 펼쳐질 수도 있었지만 엄중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 북측은 우리 시간에 맞춰 회담장에 도착하고 남측은 평양시간에 맞춰 회담을 시작하는 식으로 절충점을 찾았다.
신대원 기자/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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