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에 회자 된 지 제법 된 신조어 중에 소위 ‘답정너’라는 말이 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너는 말만 하면 돼’라는 뜻이다. 모두들 ‘소통빈곤’에 시달리며 허기를 느끼고, ‘소통 고픔’을 갖고 있을 텐데 막상 이야기 할 때에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상대에게 말 못해 답답해하면서도 막상 상대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 말만 토해 내니 자기 욕망만 풀어내는 꼴이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답정너’라는 소리를 듣는다. 의견 수렴을 위해 상대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강조하면서도, 질문만 하고 상대는 그냥 대답만 하게 한다.

리더 중 소위 ‘답정너 팀장’으로 불리는 사람은 어디나 꼭 있다. 그런 팀장을 만나 어찌하여 당신이 그런 ‘답정너 상사나 팀장’이 되었냐고 웃으며 물어보면 대답이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들어봐야 나오는 대답이 뻔하고 거기서 거기니 그냥 들어 둔다는 것. 또 하나는 막상 대답을 듣고 나면 뭔가 말 해 주어야 하는데 해 줄 말도 없으니 그냥 말하게 내버려 둔다는 식이다. 둘 다 공연히 상대 의견을 물어봐 주지 않으면 자신에 대한 평가 여론에 불리할 수 있으니 물어는 보고 마는 것이다.

모두 소통허기를 느끼고는 있지만 그냥 상호 인식과 감정의 껍질만 접촉하고 있다.

한편 ‘고성과 팀장’을 만나 속을 들여다 보니 실상이 그리 만만하질 않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줄 잘못 서 있으면 버티지 못하고 죽 쑨다. 정말 조직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못 견디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일을 자주 본다.

하지만 개인을 위해서는 잘된 일이다.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발버둥 칠 필요 없다. 그러니 내 일만 하기도 바쁘다는 이야기다.

더 깊은 속으로 들어가 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시키는 일을 다 할 수는 없지만 ‘하는 척, 좋은 체’ , 뒤에 숨어 있어야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다는 고백이다.

자기들도 밑에 팀원들 심정을 모르겠는가? 팀원들에게 ‘아무리 갈아 넣어도 소용없는’ 팀장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 모두다 그렇게 팀장으로 올라온 것 아닌가? 버틸 수 없으면 어쩔 수 없이 나갈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할아버지 세대야 ‘한 손에 망치 들고 건설하면서 한 손에 총칼 들고 나가 싸우자’하는 시절이었지만 자신들은 ‘한 손에 탑 다운 과제 들고 밑을(부하들) 불태우고, 또 한 손에는 보고서를 상사 입맛에 맞게 빨아 올린다. (위에서 원하는 대로 보고서 고쳐서 올린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너무 힘들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어려운 일이라도 뭐든 할 수 있는 척하는 이른바 ‘척 체 하며’ 행동할 수 밖에 없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언제부터인지 직무 관련 일들을 말하면서 ‘갈아 넣는다. 불태운다. 빨아 올린다’는 표현이 무성하게 되었다. 답정너 같은 신조어는 아니지만 새로운 의미창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신조어는 현실에서 만나는 소통의 솔직한 단면이다.

이들의 대화가 영혼 없는 ‘답정너’식 대화이고, 보이는 행동이 ‘하는 척, 좋은 체’하는 행동이라면, 이런 이들의 얼굴 역시 슬프고 힘든데도 행복하고 당당한 척 하는 얼굴(penn face)을 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펜 페이스라는 신조어가 자살하는 명문대 생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이들이 진정으로 자기 자신의 얼굴, 자기 소신에 근거한 행동,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화를 하는 이른바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가면얼굴, 척 체 행동 답정너식 소통은 결코 자기 자신이 아니다.

이런 방식은 자기의 솔직한 감정에 접촉하는 것을 막고, 자기 삶을 자각하는 경험을 하지 못하게 차단한다. 이러다 보면 결국에는 자기 아닌 것에서 자기를 찾을 수 밖에 없으니 끝내 자기를 못 찾고 만다. 살아남을 지라도 진정한 자기를 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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