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진리교 사건’으로 인해 일본에서는 포교활동이 금기시됐다. 그런데 또다른 금기가 있다. 바로 ‘천황폐지론’이다.
처음 공론화된 것은 제국주의 시기다.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으로 청 왕조가 멸망하고 공화정이 수립된 게 도화선이다. 이후 1925년까지 일본에서는 정치, 사회, 문화 각 방면 일련의 민주주의, 자유주의적인 사조가 유행한다. 이 때를 ‘다이쇼 데모크라시 (大正デモクラシ)라고 부른다.
당시 헌법학자이자 귀족의원이었던 미노베 다쓰키치(美濃部達吉)가 ‘천황기관설’을 주창하며 정당내각제를 지지하자 지식인들 사이에 일왕폐지론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천황기관설’은 주권은 법인인 국가에 있으며, 일왕은 국가의 최고 기관으로서 다른 기관의 도움을 얻어 통치권을 행사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1930년대 ‘천황주권설’을 내세운 군부를 중심으로 한 우익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미노베 다쓰키치는 저서 발행금지 처분을 받고 불경죄 혐의로 조사를 받은 후 의원직에서 사퇴한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 천황폐지론은 꾸준히 명맥을 잇는다. 대표적인 경우가 ‘맛의 달인’이란 만화로 유명한 작가 가리야 데쓰(雁屋哲)다.
그는 “천황제 폐지야말로 일본을 제국주의와 상명하복의 늪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슈간 킹요비(週間 金曜日)에서의 만화 연재를 통해 천황제의 성립배경에는 상명하복식 권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일본 군부들의 야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해당 만화는 ‘일본인과 천황’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출판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역사가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와 노벨문학상을 수상자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大江 健三)도 천황제도에 반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냉랭하다. 2015년 아사히(朝日) 신문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3000명 중 11%는 ‘천황제에 관한 헌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일본 대중이 일왕에 대해 반감을 가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일왕제도를 적극 지지하는 보수세력이 여론을 조성한 영향도 적지 않다. 산케이(産經) 신문은 천황폐지론이 2차 세계대전 패전 당시 미국의 신탁통치로 국가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때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주창됐던 논리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문재연 기자/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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