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윤정희(부산) 기자] 139년간 항운노조가 독점해온 부산항 노무공급권이 개혁의 물살을 탈 전망이다.

그동안 부산항운노조를 둘러싸고 심심치 않게 들려왔던 취업비리는 부산항의 어두운 또다른 그늘이었다. 부산항에서 일하기 위해선 항운노조를 통하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했다. 국가 기간시설이라는 항만의 특성상 노무공급권을 노조가 독점해왔고 이 때문에 항만에 취업하기 위해서 항운노조에 줄을 대야하고 그 과정에서 금품과 접대가 비일비재 했다. 수많은 이들이 검은 돈에 이끌려 경찰의 수사망에 올랐던 이유다.

이처럼 부패의 고리가 됐던 노무공급권을 개혁하고, 항만인력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공급체제 도입을 위해서 부산항 노사정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부산항운노동조합, 부산항만물류협회, 부산항만산업협회, 부산지방해양수산청, 부산항만공사 대표 등은 8일 오전 11시 신국제여객터미널 컨퍼런스홀에서 ‘부산항 항만인력 수급관리를 위한 노사정 협약’을 체결했다.

이들 부산항 대표들은 협약식 직후 ‘항만인력수급관리협의회’를 출범시켰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총 5~6명의 위원들로 구성됐다. 여기에는 부산항운노동조합위원장, 부산항만물류협회장, 부산항만산업협회장, 부산항만공사사장 등이 포함된다. 항만인력수급관리협의회를 통해 부산항의 적정인력 산정과 항만인력 채용ㆍ교육 등에 노사정이 함께 참여하게 돼 공정하고 투명한 노무공급 및 효율적인 인력관리가 가능하다는 의도다.

하지만 아쉬움도 제기됐다. 인력 심의절차에서 항운노조에서 결원인력의 2배수 이상을 추천하는 것으로 한정했고 이들을 대상으로 실무협의회의 서류ㆍ면접시험 거쳐 수급관리협의회에서 최종 확정이 이뤄지는 형태다. 항만인력 채용과정에서 노조의 권한이 줄어들고 사측과 감독기관의 조정기능이 추가된 것은 긍정적 효과이지만 추천 자체를 항운노조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한정한 것은 기득권에 대한 완전한 포기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번 협약은 국내 주요 산업분야에서 노동개혁이 화두가 된 상황에서 국가 기반시설인 부산항의 노사정 평화협력체제를 위한 첫발을 내딛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부산항운노조가 독점해 온 항만인력 공급 독점권을 내려놓는 등 부산항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노사가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협조해 얻은 결실이라는 평가다.

또한 노사정은 항만인력수급관리협의회와는 별도로 ‘항만운송분쟁조정협의회’를 설치ㆍ운영하기로 합의했다. 부산항 북항 기능 재정립, 항만 운영사 통합 등 현안문제에 관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원활한 협의와 중재가 가능하게 되어 항만노동시장의 안정화를 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협약식 자리에서 노사정 대표는 “노조의 양보와 희생, 정부의 인내와 조정, 사측의 이해가 맞물려 이루어낸 이번 협약 체결은 항만노동시장의 투명화와 안정화는 물론 부산항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부산항 항만인력수급관리협의회는 전국 항만 중 처음으로 부산항에 도입되는 셈이다. 이번 협약 체결은 항만노동분야의 자율적인 개혁과 노사정 협력체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인천과 평택, 여수광양, 울산 등 다른 항만의 노사정 협상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