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1941년 9월 6일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 대한 개전을 결정한다. 당시 일본은 어전회의를 통해 9월 3일 루즈벨트의 대미협상 제안을 거부하고 “제국 국책 수행 요령”을 통해 참전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고노에 총리는 9월 3일 대사를 통해 루즈벨트 대통령에 ▲ 일본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이오의 지역으로는 진출하지 않는다 ▲ 필리핀의 독립을 존중한다 ▲ 미국은 일본과 정상적인 무역관계를 회복시킨다는 3개의 항을 제의했다.

이후 쇼와(昭和)일왕과 스기야마 겐(杉山 元) 참모총장을 중심으로 일본 수뇌부가 어전회의를 통해 “10월까지 우리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으면 미국, 영국, 네덜란드와 개전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때, 쇼와는 스기야마에 미국을 “확실히 이길 수 있는가”고 물었고 스가야마는 “꼭 이긴다고는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사실상 일본이 전쟁에 돌입한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자료=게티이미지]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자료=게티이미지]

미국은 1941년 7월 일본이 남진정책을 펼치며 북부 프랑스령인 인도차이나에 진주(進駐)를 개시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자 항공기 가솔린의 대일 수출금지령을 내렸다. 석유의 75%를 미국에 의존하던 일본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 五十六) 56 연합 함대의 사령장관은 이때 대미 전쟁의 조기 결착을 위해 공습전을 계획하게 됐다.

당시 기록은 “경제 봉새와 석유 금수 등의 피할 수 없는 사태에 몰린 일본은 동원할 수 있는 외교 수단을 다했지만 부득이 미ㆍ일 개전을 결의했다”고 남기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진주만 공습 작전은 훨씬 이전부터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 ‘오퍼레이션 z’라는 이름으로 그해 9월 2일, 도쿄 인근의 해군 대학에서 일본 주요 해군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도상훈련이 실시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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