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안심번호 국민공천제. 생소한 이 제도가 여의도를 뒤흔들고 있다. 곳곳에서 오해와 진실이 터져나오고 반박에 재반박이 이어지니 혼란스럽다.
논란만 남긴 채 폐지될 것으로 보였지만 ‘심폐소생술’을 통해 부활할 조짐도 보인다. 안심번호의 취지와 전망을 기승전결(起承轉結)로 정리해봤다. ▶기(起), 050 정쟁의 서막 = 안심번호는 우선 생소한 방식은 아니다. 정치권을 벗어나면 생활 곳곳에서 쓰이고 있다. 안심번호는 개인정보, 즉 휴대폰 번호를 대체하는 번호다. 주민등록번호를 대신하는 아이핀을 생각하면 된다. 010이 아닌 050으로 시작하는 임시번호다. 택배에서 겉 포장지에 개인전화번호 대신 임시번호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도 안심번호가 쓰인다. 카카오택시도 사용한다. 택시기사에게 승객의 개인전화번호를 제공하지 않고자 쓰인다. 일회용 번호로, 활용된 후에는 폐기된다.
안심번호가 정치권에 처음 거론된 건 여론조사의 개선책이다. 현 여론조사 방식은 유선전화 중심인데 시대가 변하면서 응답률이 크게 떨어지고 노년층을 제외한 계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집전화가 없는 가정이 늘고, 경제활동인구는 자택에 머무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대안으로 휴대폰 설문조사를 도입하려니 지역 구분이 안되는 맹점이 지적됐다. 휴대폰 번호는 02, 032처럼 지역을 특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유출도 문제다. 집번호에 비해 소유주가 명확히 특정돼 있고 활용도가 높은 휴대폰 번호이기에 특히 개인정보 보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검토한 게 안심번호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도 이를 검토했고, 이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당시 이는 여론조사 방식의 개선책으로 논의됐으며 현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공천제와 직접 논의된 사항은 아녔다.
안심번호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건 김무성ㆍ문재인 여야 대표의 회동 때문이다. 회동을 통해 국민공천제 방식으로 안심번호제 도입에 합의했다.
▶승(承), 金ㆍ文 대표 회동, 안심번호와 국민공천제 결합 = 정개특위에서도 논의된 바 있던 안심번호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건 국민공천제 때문이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긴급 회동해 안심번호를 도입하는 국민공천제에 합의했다. 그전까진 큰 관심이 없던 국회의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공천제는 내년 총선 사활이 걸렸다.
여기저기서 백가쟁명식 주장이 쏟아졌다. 계파 갈등과 얽히면서 더 복잡해졌다. 모두에게 생소한 제도이니 편한 대로, 혹은 일단 이해하는 대로 주장이 터져 나왔다. 차분히 논의할 여유는 없었다. 친박계, 비박계의 공방이 펼쳐졌고 야당 역시 혁신위원회에 대한 평가와 맞물려 안심번호를 재단했다.
안심번호는 여론조사 방식의 하나임에도, 혹은 여론조사 방식의 새 방식임에도 안심번호가 곧 국민공천제로 인식하듯 안심번호를 놓고 국민공천제 반발이 터졌다. 안심번호가 문제인지, 여론조사에 따른 공천제가 문제인지, 100% 국민공천이 문제인지 명확히 구별되지 않은 채 정치권은 달아올랐다. 안심번호는 도화선이 됐다.
▶전(轉), 청와대의 정면 반발 안심번호 진실 공방 = 청와대가 안심번호의 문제점을 5가지로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갈등은 절정에 이르렀다. 청와대의 반박에 재반박이 이어지면서 혼란은 더했다. 김 대표가 “지적이 다 틀렸다”고 반발하는 등 상황은 복잡해졌다.
먼저 역선택의 문제다. 안심번호로 역선택을 차단할 수 있느냐는 반박이다. 역선택은 상대정당의 경선에 참여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후보를 지지하는 행위를 말한다. 역선택은 국민공천제에 반대하는 핵심 논리다. 당원명부가 아닌 일반 국민으로 참여를 확대하는 데에 따른 부작용이다. 새누리당이 여야 동시 도입을 주장했던 것도 이런 역선택을 막자는 이유였다.
관건은 역선택이 안심번호의 문제만이 아니란 점이다. 현 여론조사 역시 역선택을 100% 차단할 수 없다.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다. 안심번호는 한 명에게 한 번 전화를 건다. 이때 새누리당 지지자가 새정치민주연합 경선을 선택할 수 있다. 단 이럴 경우 새누리당 경선에는 참여할 수 없다. 본인 지지정당의 경선 투표 포기를 감수하면서 역선택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술적으론 가능하지만 역선택에 따른 손해도 만만치 않다. 기존 여론조사 역시 같은 이유로 역선택의 문제가 존재한다.
여론조사가 아닌 현장 경선투표를 하더라도 당원이 아닌 전체 국민에게 경선을 확대하는 이상 마찬가지로 역선택의 문제가 있다. 즉, 역선택의 문제는 안심번호나 여론조사 방식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참여, 즉 당원 외에 국민으로 경선을 확대하는 데에 따른 부작용이다. 역선택을 지적하려면 그 대상은 안심번호가 아닌 경선 참여 범위가 되는 게 맞다.
응답률도 지적된다. 통상 전화 여론조사 응답률이 2% 뿐이란 게 청와대의 지적이다. 이는 여론조사의 문제점으로도 끊임없이 지적돼 왔다. 휴대폰 조사를 도입하는 것도 응답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다. 다만, 안심번호를 활용하면 역으로 스마트폰 등에 익숙치 않은 노년층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유선전화로 진행하면 젊은층이, 무선전화로 하면 노년층이 소외되는 셈. 국민공천제인만큼 특정 계층이 소외되는 건 단점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는 안심번호를 넘어 여론조사로 국민공천제를 하는 데에 따른 문제점이다.
비용은 의견이 엇갈린다. 1인당 1000원에서 3000원까지 예상비용이 크게 다르다. 400억원이 넘게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는 반면, 범위과 시기 등을 규정하면 기존 여론조사와 비용 차가 크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현장투표로 경선을 치른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어느 비용이 더 들어갈지도 비교해야 한다.
▶결(結), 안심번호제 사라지나 유지되나 = 안심번호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김 대표는 “그날(9월 28일) 발표문을 보면 ‘이미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위에서 통과된 안심번호 관련 법안은 합의 처리키로 한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안심번호를 유지하겠다는 말로도 들린다. 여당은 특별기구를 통해 안심번호제를 포함한 공천제를 전면 재논의하기로 했다. 친박계는 안심번호 폐지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비박계는 안심번호제에 대한 비판에 연일 조목조목 대응하고 있다.
여야 둘 중 한 정당이라도 포기하게 되면 안심번호는 결국 도입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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