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우리나라 경찰은 미 군정청의 경무국에서 비롯했다.

1945년 9월 9일 서울로 입성한 미군은 그달 12일 아치볼드 아놀드 소장을 미군정 장관으로 임명한다.

아놀드 장관은 이틀 뒤인 14일 조선총독부 내무부 산하의 일본인 경무국장을 파면하고서 ‘경찰권은 군정에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다.

이어 10월 21일 새 경무국장으로 조병옥 박사를 임명했다. 이날이 바로 우리 경찰이 창설된 날이다. 정부는 이날을 ‘경찰의 날’로 지정했다.

하지만 우리 경찰이 ‘창설’된 것인지, 아니면 조선총독부 경무국을 ‘승계’한 것인지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듬해에는 경찰 수장의 지위가 장관급으로 승격된다.

미 군정이 1946년 1월 16일 경무국을 경무부로 격상해 법무부, 재무부, 운수부, 농림부 등과 함께 별도 부처가 됐다.

경찰 수장의 지위가 이처럼 역대 최대로 높았던 것은 해방 이후 좌우 이념 대립에 의한 사회적 혼란으로 치안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직 국군이 창설되기 이전이어서 경찰이 38선의 경비를 맡기도 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경찰 수장의 위상은 크게 위축된다.

부처였던 경무부가 내무부 산하 치안국으로 격하된 것이다.

광복 후 미 군정이 새 경찰을 모집할 때 인원 부족으로 부적격자가 많이 들어왔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돼 정부조직이 편성될 때 바로 이 같은 경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반영됐다.

경찰 조직이 치안국이라는 이름으로 지방국, 통계국, 토목국 등과 함께 내무부 산하로 들어가면서 경찰 관련 예산과 인력, 기구도 축소됐다.

유신 시절인 1974년 말 다시 경찰 수장은 차관급으로 격상됐다.

그해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이 계기가 됐다.

정부는 경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경찰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조직법을 개정, 내무부 치안국을 치안본부로 개편하고 치안본부장을 차관급으로 올렸다.

경찰의 인원과 기능 등을 고려했을 때 다른 부처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경찰조직의 위상을 조정하려는 조처이기도 했다.

1991년 7월 경찰조직은 또 한 번의 변화를 겪는다.

내무부 산하 치안본부에서 내무부 소속이지만 독립된 외청인 ‘경찰청’으로 거듭났다.

경찰청장은 차관급으로 치안본부장과 직급은 같지만 독립된 경찰조직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위상은 더 높아졌다.

경찰 수장의 위상이 올라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이 그 역할과 가치를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았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 이유 때문이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경찰 중립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당시 경찰대 졸업생들도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 결과 현재와 같이 독립된 외청으로 경찰청이 발족했고, 정치적 중립성을 띤 경찰위원회가 경찰행정에 관한 사항을 심의ㆍ의결하게 됐다.

정치 외압으로부터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2003년 12월 도입된 경찰청장 임기제로 경찰청장의 위상이 한층 강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임기제 도입 후 임명된 경찰청장 8명 중 이택순 전 청장을 제외한 7명이 임기 2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9대 강신명 현 경찰청장의 임기는 내년 8월까지다. 강 청장이 임기를 지킨 두번째 청장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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