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황해창 선임기자]미국 PGA에서 활약하고 있는 재미교포 프로골퍼 케빈 나(한국명 나상욱). 그가 또 다시 슬로우 플레이(Slow-play)로 구설수에 올랐다. 슬로우 플레이는 말 그대로 느린 경기다. 골프 샷을 포함한 일정한 반복 동작이나 그린에서 퍼팅을 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느리게 플레이를 하는 경우다.

나상욱은 지난 주말 PGA 발스파 챔피언십에서 아깝게 준우승을 차지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속개된 4라운드에서 1오버파를 쳐 합계 6언더파로 존 센든에 한타 뒤진 2위를 차지했다. 버디 3개를 잡고도 6번부터 8번 홀까지 3홀에서만 4타를 잃는 등 샷 난조를 보인 때문이다.

문제는 그의 2위성적보다 고질적인 슬로플레이가 더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나상욱과 동반 플레이를 했던 로버트 게리거스(미국) 측은 골프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케빈 나의 느린 경기 진행이 게리거스의 리듬을 빼앗는다”며 “케빈 나와 함께 경기하는 것은 불공정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사자인 나상욱은 “동반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3라운드에서도 사실 앞 조의 팻 페레즈가 공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다시 티샷을 하는 상황이 있었지만 마치 나 때문에 경기가 지연된 줄 아는 사람이 많더라”고 억울해했다.

실제로 나상욱은 2012년 5월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4라운드에서 무너져 공동 7위에 그쳤었다. 그 때 그의 슬로플레이는 극을 달렸다. 샷 하기 전 지나친 연습 스윙과 왜글(스냅 강약조절 운동)이 그대로 중계화면에 잡혔고 TV해설가의 비아냥거림과 갤러리들의 야유까지 그대로 전파를 탔다. 같이 플레이한 잭 존슨이 짜증을 부리는 모습까지 앵글에 잡혔고, 상황이 심각해지자 한 경기위원이 타임워치를 들고 나타나 그의 플레이를 일일이 체크하기도 했다. 5번 홀에서는 야유 때문에 샷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을 정도였고, 13번 홀에서는 티샷을 물에 빠뜨리자 노래를 부르며 조롱하기까지 했다.

분명 느림과 신중은 다르다. 한 두차례 왜글은 봐 줄만하다. 문제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몇 걸음 물러나 전방을 주시하다 연습 스윙을 최소한 두 차례 후려 패듯 해 대고는 다시 스탠스를 가다듬고 또 왜글이면 이건 최악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닌 경우도 있다. 티 높이를 조절하거나 클럽을 바꾸면서 캐디에게 했던 질문을 반복한다. 이런 정도면 부처도 돌아앉을 수밖에 없다. 혈압이 있거나 성질 급한 동반자는 이미 리듬을 잃고 구토까지 하고 만다.

경기를 끝내면 나상욱은 비난 받을 만 했다며 잘 못을 인정한다. 물론 나상욱은 슬로우 플레이를 없애거나 최소한 개선해야 한다. 골프 원조 황제 잭 니크라우스는 “슬로플레이는 마치 흡연 같아서 고치려 해도 잘 안되기 때문에 아예 시작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른다. 짐바브웨가 낳은 PGA의 또 하나 레전드 닉 프라이스는 “벌금과 2벌타를 부과해야 한다”고 까지 했다.

그러면 합리적인 플레이는 뭘까. PGA에서는 정기적으로 슬로우 플레이어 리스트를 선수들에게 발표하며 페어웨이 40초, 그린 1분 안에 샷이나 퍼팅을 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도 앞팀과 템포를 맞추되 만약 플레이가 지체되면 뒤 팀을 앞서 보내도록 하고 퍼팅을 마치면 즉시 그린을 떠나도록 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이 남는다. 나상욱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느냐는 질문이다. 나상욱은 2011년 프로데뷔 211경기 만에 생애 첫 우승을 일궈냈다. 1983년 9월15일 서울 태생으로 8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민을 떠나 9살부터 골프채를 잡았고, 팜크레스트 초등학교와 라카나다 중학교, 다이아몬드바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주니어골프계를 휩쓸며 미국 아마추어랭킹 1위에 오르는 등 ‘골프신동’으로 각광받았던 선수다.

좀 더 써보자. 2001년 6월 프로로 전향하기 이전까지는 각종 최연소기록도 수없이 갈아치웠다. 12세 때 US주니어 본선에 진출해 미국골프협회(USGA) 주관 대회 최연소출전 기록을 세웠고, 1999년과 2000년에는 타이거 우즈가 1991년 우승했던 LA시티챔피언십을 2연패했다. 2001년에는 뷰익오픈 월요예선을 통과해 당시 49년 역사를 자랑하던 이 대회 최연소출전 기록도 만들었다.

2003년 12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퀄리파잉(Q)스쿨 21위로 PGA투어에 합류해 우승에 대한 기대치도 높았다. 하지만 2005년 FBR오픈과 크라이슬러클래식에서 2위에 그치면서 눈물을 삼켰고, 이듬해에는 손가락 부상마저 겹쳐 한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는 무려 프로전향 후 10년을 우승에 목말랐고, 깊은 어둠에 갇혔던 긴긴 시간 주변에 대한 부담은 극에 달했으리라. 어쩌면 나상욱은 왕따 골퍼라는 또 하나의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인종차별 없는 첨단 민주사회라는 미국 땅에서 말이다.

여기서 결코 민족주의적 접근을 하자는 게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철저하게 샷을 할 것을 주문받아 결국 습관이 된 때문이라며 애써 양해를 구하는 그의 모습에서 찐한 한국적 DNA를 발견했고, 결국 이런 생뚱맞은 긴 글을 썼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