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지난 3월, 기자는 정세균<사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과 인왕산을 오른 적이 있다. 정 고문은 가끔씩 국회 출입기자들을 초청해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종로구 내에 숨겨진 명소들을 소개하곤 하는데 그날은 인왕산 둘레길을 걷고 윤동주 문학관을 들르는 코스였다. 둘레길 치고는 산세가 꽤 험한 오르막길을 한참 오르다가 평지에 다다르니 종로를 비롯한 서울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청와대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경치가 참 좋네요. 청와대도 잘 보이고” 정 고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그렇지요? 저기도 다시 가봐야 하는데 말이지.”
정 고문은 참여정부 시절 산업부 장관을 역임했다. 국무위원으로 청와대를 방문할 일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인왕산에서 그의 발언은 적어도 기자가 느끼기에는 장관으로 청와대에 다시 가야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주인이 되고 싶다’는 뜻으로 느껴졌다. 적어도 그 순간 그의 눈빛과, 그의 목소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의외’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사실 기자는 정 고문을 대선주자와 연결해서 생각해 본일이 없어서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던 정치적 배경을 잘 알지 못했던 이유도 있지만 대중의 인식 속에 ‘정세균 의원’은 문재인, 안철수, 손학규, 안희정, 박원순처럼 ‘잠룡’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의외였고, 그래서 기억에 남았다.
지난 5일, 정 고문이 정청래 새정치연합 최고위원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혔다. 내년 20대 총선에서 당선 되면 2017년 대선에 “도전해볼 생각이 있다”고 언급했다. 여야를 통틀어 사실상 첫 공식 대권 도전 선언이다.
정치권에서 정 고문의 대권 도전 의지는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단 ‘그만의 생각’이라는 반응이 많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야권 관계자는 정 고문의 팟캐스트 발언에 대해 묻자 고개를 저으며 “그가 넘어서야 할 벽은 대중 인지도”라고 덧붙였다.
이 말에는 배경이 숨어있다. 정 고문은 사실 당 내 최대 계파의 수장이다. 그의 측근들은 “정세균계(SK계)는 없다”고 항변하지만 의원은 물론 당원까지 조직 장악력이 으뜸으로 꼽힌다. “당직자만해도 70% 이상이 SK계”라는 말은 기자가 국회 출입을 시작하면서부터 들어오던 말이다. 실제 지난 2ㆍ8 전당대회도 SK계의 움직임이 당 대표는 물론 최고위원 순위를 좌우했다. 앞서 그가 당대표를 역임했을 당시 대승을 거둔 2010년 6ㆍ2 지방선거는 이후 수차례의 당 대표 교체에도 깨지지 않은, 근래 선거 중 가장 큰 승리였다.
그런데 여론조사는 정반대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이 지난 2012년 대선 후보 선출을 놓고 당내 경선을 벌였을 당시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2012년 7월 마지막주(27일) 공개했던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33.7%, 손학규 16.2%, 김두관 10.9%를 기록한 반면 정 고문은 2.5%에 그쳤다. 조경태 의원(2.7%)보다도 적은 지지도였다. 같은 시기 발표된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도 정 고문은 0.8%에 그쳤다.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가 34%, 문재인 의원이 33.2%였다. 그가 넘어서야 할 벽이 “여론”이라는 평가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정 고문은 지난 9월부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정국을 기점으로 2017년 정권교체를 위한 범야권 연석회의 구성을 제안했고, 이후 국정교과서 논란 등 현안 때마다 개인 성명을 내고 있다. 지난 6일 종로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문화제에서는 “반기문 UN사무총장이 국정교과서 검인정 실시를 권고해주면 좋겠다”고 밝히며 관심을 끌기도 했다. 각기 사안은 다르지만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는 공통된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그의 지역구인 종로를 두고 박진 전 새누리당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내년 총선 출마 경쟁이 뜨거워질수록 정 고문의 여론전 보폭이 넓어지는 점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그의 측근은 정 고문과 대권의 ‘빗나간 인연’에 대해 “정세균과 하늘의 호흡이 맞지 않았다”라고 갈음했다. 과연 이번에는 하늘과의 호흡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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