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논산 출생, 전주고 졸업 ▷1971년 서울대 농과대학 농공학과 졸업 ▷2000년 대전산업대 대학원 기계설계공학과(석사) ▷2004년 경북대 대학원 생물산업기계공학과(공학박사) ▷1977~1993년 국제종합기계(주) 공장장, 생산본부장, 기술연구소장 ▷1997~2004년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 ▷1998~현재 대한민국농업기계학회 부회장 ▷2001~현재 (사)통일농수산포럼 이사 ▷2002~현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2002~현재 농수산 TV 감사 ▷2003~현재 동양물산기업주식회사 부회장 ▷2004~현재 (주) 지엠티 회장 ▷2015.2~현재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농기계 국산화·세계화·남북협력 민간교류 40년 외길 열정…농기계의 대부 ‘미스터 트랙터’ 윤여두 ㈜지엠티 회장
윤여두 (주)지엠티(GMT) 회장(69)은 우리나라 농기계의 산증인이다. 40여년 전 아무도 가지 않던 ‘농기계의 길’을 선택해 특유의 집념과 끈기로 국내 농기계 제작 기술력을 세계 수준까지 끌어 올린 농기계의 대부(代父)로 통한다.
윤 회장은 국내 농기계 태동기인 1973년 공직에 입문해 국내 농업기계화사업계획을 수립하는데 중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후 국제종합기계, 동양물산기업 등 농기계 회사로 자리를 옮겨 40여년동안 국산 농업기계의 세계화를 위해 뜨거운 열정을 바치고 있다.
윤 회장은 국내에 농기계 검사에 대한 법규나 산업코드조차 없을 정도로 열악한 시절부터 국산 농기계 개발의 필요성을 인식한 선구자이다. 당시 마땅한 연구 자료가 없어 직접 외국산 농기계를 분해ㆍ조립하면서 농기계의 구조부터 원리를 파악했지만 이제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무장한 농기계를 다양하게 개발해 수출하고 있다. 해외 특허를 갖고있는 (주)지엠티의 로더(Loader)의 경우, 농기계 시장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유럽시장에서 반응이 뜨겁다. 연 매출의 80%이상을 이곳에서 거둬들이고 있다.
▶트랙터, 70평생 ‘운명의 길’ 열다= 윤 회장은 광복 2주년인 1947년 8월 15일 충남 논산 노성읍 파평 윤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읍내까지 산길을 두어시간 걸어야 하는 외진 농촌 마을이었다. 4살 때 한국전쟁(6ㆍ25)를 겪은 윤 회장은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거주지를 전주로 옮겨 서울대 입학전까지 그 곳에서 컸다.
나름 놀줄도 알았던 청소년 시절에도 최고의 엔지니어의 꿈을 한번도 버린 적 없다는 윤 회장은 ROCT(학군사관 후보생)로 소위로 임관해 공병부대 정비장교로 복무했다. 전역 직전에 대학 선배가 수원 농공이용연구소(농기계화연구소, 공학연구소의 전신)에서 함께 일하자고 농기계 연구에 가깝게 접근했다. 농공이용연구소는 당시 농림부에서 농촌진흥청 소속이 막 바뀌었다. “농기계 전공자들에겐 딱 맞는 직장이지요. 농진청 연구직 공무원이 된지 몇달 만에 농림부 농업자재검사소 검사 공무원으로 이동해 운명적인 트랙터를 만나게 됐습니다.”
윤 회장이 당시 처음 맡았던 보직은 소형 기계담당. 농업 분무기의 성능과 안전성을 검사하는 업무로 신임 검사관이 의례적으로 맡는 일이었다고 윤 회장은 회고했다. 그러나 당시 메이저 농기계 업체이던 대동공업이 포드 트랙터에 대한 검사를 위탁해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당시 문제는 검사 대상이 트랙터라는 것이 있었던 거예요. 그때 검사관 14명 가운데 7명이 트랙터라는 장비를 처음 접할 만큼 생소했거든요. 대부분 탈곡기 같은 농기계를 검사하는 수준이었는데 갑자기 트랙터가 등장한거죠. 영국제 트랙터가 말이죠.”
윤 회장과 트랙터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새 농업장비에 대한 검사를 누가할 것인가를 놓고 긴급회의가 열렸는데 결국 신입인 저에게 떨어진 거예요. 농기계를 전공하고 군 시절 공병장교로서 중장비 경험이 있는데 다 진흥청에서 짧게나마 트렉터를 접했으며 영어도 약간 한다는 제법 많은 이유가 붙으면서요”
윤 회장은 트랙터 검사 업무를 맡게 되면서 최단 시간내 일본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은 트랙터 선진국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어 교재를 몇 권 펴놓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어 단어를 쓰고 외우는 일종의 트랙터 고시에 들어간 셈이죠”
윤 회장의 피나는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검사의뢰를 받은 영국제 트랙터를 놓고 유압검사를 하다가 유압 하강량 시험에서 기준치 미달 현상을 잡아낸 것이다. 이로인해 윤 회장은 일약 국내 트랙터의 최고 기술자라는 평판을 받기 시작했다. “스스로 견뎌내기 힘들 정도가 되면 검사소 건물 밖 잔디에 누워서 하늘을 보며 농촌의 수많은 아버지, 어머니들을 떠올렸습니다. 내가 검사한 트랙터를 타고 웃으며 농사를 짓고 있는 모습을 말이죠.”
▶트랙터와 닮은 삶, 사람과 사람을 잇다= 윤 회장에게는 별명이 많다. 그 중에서도 윤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 ‘미스터 트랙터’다. “농기계와 운명적으로 만난 이후 트랙터는 제 인생의 심장이 돼 버렸습니다. 트랙터는 불도저와 다르죠. 불도저는 앞뒤 안 가리고 밀어붙이는 힘과 추진력을 상징하지만 트랙터는 주변을 잘 살피며 이것저것 연계된 길을 닦아야합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일흔인 윤 회장은 지금도 공동대표나 회장이란 직함이 불은 명함이 10여 개는 된다. 농업인ㆍ농업단체ㆍ관련 공직자 출신 친목단체를 비롯해 농기계사업조합,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중소기업협동조합들의 모임 협친회 등 다양한 모임을 통해 트랙터처럼 사람과 사람을 잇고 있다.
“트랙터는 무엇인가를 당기기 위해 만든 견인용 차량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당기느냐가 중요하죠. 무엇을 당길 것이냐에 따라 붙이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모르게 세상을 트랙터처럼 누구를 만나거나 무엇인가를 볼 때마다 ‘붙이고 당기고’하는 연관성을 생각하죠.” 윤 회장은 트랙터는 단순한 농기계가 아니라 ‘희망을 가는 새로운 소’다.
▶길 없는 길을 달리는 ‘미스터 트랙터’= 윤 회장은 남북관계가 해빙기이던 2001년 농기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었다. 그해 5월 NGO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남북 농업협력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방북을 추진했을 때 농기계 업계 대표로 합류했고 90여차례나 방북하면서 남북교류에 열정을 갖게 됐다.
윤 회장은 제대로 된 농기계만 있어도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을 상당 부분 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콤바인 같은 농기계만 보내도 북한의 작물 수확량을 대폭 끌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농업에서 경지정리, 농업체계 등 기본 인프라구축은 잘 돼 있으나 문제는 물자가 없다는 거예요. 특히 1990년대의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북한의 농업기계화율은 급속히 떨어졌습니다. 이 시기에 기술개발은 물론 생산도 거의 이뤄지지 않아 낙후된 노후 농기계를 계속 사용했거든요.”
윤 회장은 요즘도 남북경협 전문가답게 여기저기서 강연 콜을 받고 있다.
▶40여년 한 길, 세계 농기계 시장 평정= 윤회장은 1977년부터 국제종합기계 등 농기계 생산업체에서 대표이사로 취임해 트랙터, 등 주요 농기계를 개발하는데 온갖 열정을 다 바치고 있다. 2004년에는 지엠티의 모회사인 동양물산에 자리 잡게 된다. 동양물산의 부회장으로서 기술개발과 대북협력사업, 수출사업을 담당하던 윤 회장은 2007년 작업기 전문업체이면서 여성친화형 밭작물기계를 생산하는 (주)지엠티를 설립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윤회장이 이끄는 지엠티는 국산 농기계의 저력을 보여주며 국내 농기계 보급에 앞장서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산 농기계가 외국산 농기계보다 기술력과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제품들을 계속 시장에 내놓아 시장의 평판을 바꿔놓았다. 이제 국산 농기계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글로벌 농기계 제조업체로 인정을 받고 있다.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에 의한 농민들의 피해에 대해 일시적으로 보상해주는 것보다 고품질의 농작물을 싸게 생산 할 수 있도록 국내 농업의 힘을 기르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 차원에서 농업(설비 시설 기계)에 R&D 투자를 해 자동화 설비나 기계화를 갖출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특히 윤 회장은 농업 관련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곳에 예산이 안 쓰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여성 농업인이 급증하고 있어요. 전체 51%나 됩니다. 문제는 남자들이 이용하는 농기계를 여자들이 쓰다 보니 다치는 일이 허다하고 부부싸움도 자주 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성친화형 농기계 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정부가 정책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제작 지원도 하고 공급도 원활하게 터줘야 농촌이 활기띠고 농업도 되살릴 수 있지요.”
윤 회장의 농기계에 대한 뚝심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인간의 두뇌처럼 생각하고 인간의 근육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농기계를 개발하고 싶다고 했다. 윤 회장은 또 구직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개발이라고 몇차례나 강조했다.
“지금은 무한경쟁입니다. 청년들이 ‘남과 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말처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로 자기개발에 나서야합니다. 1등만 기억되는 세상으로 일류가 되지 않으면 치열하 생존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입니다.”
대담=황해창 정책섹션 에디터/hchwang@heraldcorp.com
정리=배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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