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거친 표면, 팔다리가 잘린 왜곡된 신체, 무릎을 꿇고 절규하는 듯한 인간의 모습…. 폐허속에서도 생명에 대한 본능적 의지가 강렬한 에너지로 표출된 이 작품은 원로 조각가 최만린의 ‘이브’ 연작이다.
최만린의 60년 작품세계를 돌아보는 전시회가 4월 8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최됐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회화, 공예, 조각, 사진, 건축, 실험예술 부문의 주요작가 22의 개인전으로 3년간 선보일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조각부문 첫번째 전시로, 그의 대표작 200여점이 소개됐다.
한국에서 수학한 조각 1세대 작가인 최만린은 해방과 전쟁이라는 격변기 한국 근현대사를 몸소 겪으며 한국적 조각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시는 총 인간, 뿌리, 생명, 비움 등 4개의 섹션으로 구성돼 있으며, 60년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세계를 전시공간을 거닐면서 큰 흐름으로 느낄 수 있도록 배치됐다.
첫번째 ‘인간‘ 섹션은 작가의 데뷔작인 ‘이브’ 연작으로 구성됐다. 한국전쟁 이후 파괴된 삶의 터전에서 좌절을 딛고 일어서려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들로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후 실존주의 맥락에서 읽히는 ‘이브‘ 연작에서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인간과 생명이라는 주제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 섹션인 ‘뿌리’에서는 1965년부터 1977년까지의 작품들로 채워졌다.이 시기 작품들은 ‘이브’의 성공 이후 일본 등 서구식 조각의 한계에서 벗어나 한국적 조각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최만린이 자신만의 독자적 조각 양식을 탐색하고 구축해나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천자문의 한자를 형상화한 ‘천ㆍ지ㆍ현ㆍ황(天地玄黃)’ 시리즈와 ‘일월’ ‘천지’ 등의 연작으로 구성된 이 시기 작품들에서는 점, 선, 면의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구분이 사라지고, 직관적이고 총체적인 한국 조각의 가능성이 발굴됐다.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체류하며 제작한 ‘아(雅)’ 연작은 주물로 뜨는 중간과정 없이 철을 작은 단위로 녹인 후 한방울씩 쌓아 올려 만든 작품으로, 구불구불한 원, 수직으로 상승하는 선 등이 강렬하게 표현됐다.
1975년에서 1989년 당시의 작품들로 구성된 세번째 ‘생명’ 섹션에서는 ‘태(胎)’와 ‘맥(脈)’ 연작들이 전시됐다. 막 잘린 탯줄, 동물의 장기 등을 연상시키는 꿈틀대는 형상이 생성과 성장, 소멸이라는 생명 순환의 원초적인 에너지들을 뿜어낸다.
10여년에 걸쳐 ‘태’ 시리즈에 천착했던 작가가 1980년대 후반 이후 제작해 온 ‘점’, ‘O’ 시리즈는 네번째 ‘비움‘ 섹션에 마련됐다.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O‘연작은 ‘오’ 혹은 ‘영’ 등 개념적인 텍스트로 읽히는 것을 거부하고, 열린 해석, 비움으로써 채우는 포용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태’와 ‘오’ 시리즈는 청동 주물 제작 이전 상태의 석고 원형을 완성작들과 함께 전시해, 작가의 작업 과정을 더욱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전시는 7월 6일까지.
amigo@heraldcorp.com
![86세 사미자, “단어 잘 안 떠올라” 치매 일까?…치매와 건망증 차이는 [그들의 건강美학]](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8/news-p.v1.20260908.d06bc010b97e4720abe8ba08bd68428e_T1.jpg?type=h&h=240)
![‘중위소득 70%’에 발목 잡힌 기초연금 개편…소득 보장 실효성 낮고 재정부담 가중[Deep Spot]](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7/news-p.v1.20260907.67992ac2e89a4eddbffab50b901154f7_T1.jpg?type=h&h=240)
![요즘 ‘큰손’들은 주식 팔지도 사지도 않는다…‘11월 3일’부터 본다, 왜? [큰손 따라잡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7/news-p.v1.20260826.97fcdbca4f2c4562acc488b50990cb2d_T1.jp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