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대법원이 과중한 재판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에는 대부분 동감한다. 대법원은 ‘상고법원 설치’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상고법원 설치법안은 반대여론에 부딪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상고법원 고집보단 과도한 상고심 업무 부담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에 대한 공론장 마련이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상고법원이 해답?=현재 대법원에는 교통사고 벌금 형사사건에서 500만원짜리 민사사건까지 올라온다. 그러다 보니 대법관 1인당 연간 3000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한다. 지난 10년 동안 대법원 사건은 2배 증가했다. 재판 당사자들도 장기간 기다려야 한다. 대법원 판결이 나도 그 이유가 너무 간략해 쉽게 수긍하지 못한다. 대법원은 ‘상고법원 설치’를 해법으로 내놨다.

상고법원은 3심 사건 중 법리적 이견이 크게 없는 사건을 담당케 하는 법원이다. 판례 변경, 법령 해석 통일이 필요하거나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 같은 경우는 기존과 같이 대법원이 맡는다. 현재 심리불속행 등으로 이유 설명 없이 기각되는 사건도 상고법원에서 충실하게 재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승 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은 “업무부담을 줄이고 정책법원으로 기능에 충실할 수 있다”며 상고법원 찬성 논리를 펼친 바 있다.

▶4심제 위헌?=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 위헌 여부다. 대한민국 헌법 제101조와 제110조는 대법원을 최고심으로 하고 있다. 상고법원을 설치하고 대법원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문제라는 주장이다. 즉 사건 당사자들은 3심 판결이 빠르고 충실하게 나는 것만큼이나, 상고법관들이 아닌 대법관들의 판단을 받아보고 싶은 것이다. 상고법원이 판단에 이의를 제기해 대법원 특별상고가 허용될 경우, 실질적 4심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일각에선 다양한 가치관을 대변할 수 있는 대법관 수를 늘리자는 의견도 나온다. 대법관을 12명을 증원하면 대법관 1인당 사건 수는 평균 1500건으로 줄어든다. 현재의 절반이다. 변협 상고심 제도 개선 TF소속 장주영 변호사는 “미국연방대법관도 1인당 1000건 가량을 처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대법관 늘면 합의不可…하급심 먼저?=그러나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 역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대법관을 늘리는 것만으로 해결될 사건의 수가 아닌데다 깊이 있는 토론도, 합의를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연구관 출신 재경법원의 모 부장판사는 “사법시험 스터디를 해도 10명이 넘어가면 토론이 불가능하다”며 “대법관 수를 늘린다는 것은 전원합의체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라고 말했다.

대법관이 아닌 일반 법관 대폭 증원을 통한 사실심 충실화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1ㆍ2심에서 사실관계 및 법리검토를 충분히 거쳐 상소하는 비율 자체를 낮추자는 것이다.

대법원 역시 5년에 걸쳐 370명의 판사를 증원하기로 한 바 있다. 기존 판사 정원 대비 1.13배 증원안이다. 그러나 로스쿨 출신이 법관 임용 후 연수를 받는 8개월의 공백 등을 고려하면 이 정도 증원으론 충분치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로 인구 8000만명의 독일 판사 수는 약 2만명이다. 인구 5000만명의 한국은 2700명 가량이다. 1인당 사건 수가 독일은 150건인 반면 한국은 500건을 넘는다.

▶공론의 장 마련 필요=국회의원 168명이 상고법원 설치 법안을 2014년 12월 국회에 냈을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나 19대 국회 임기가 사실상 끝난 현 시점에서 돌이켜 봤을 때, 대법원의 전략적 판단 실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설령 대법원 내부적으로 상고법원이 제일 나은 해결책으로 나왔다 하더라도 일단 현재 상황의 어려움을 강조하고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데 힘을 쏟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다양한 대안들을 논의하면서 상고법원에 대한 공감대가 생겼을 수도 있고, 다른 대안들에 대한 검토도 충실히 이뤄지면서 해법을 마련하고 추진하는 데 좀 더 힘을 받지 않았을까”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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