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9년 IMF로 심신이 지친 국민들의 답답한 속을 풀어준 노래 하나가 있다. 송대관의 ‘네박자’다. “쿵짝쿵짝 쿵짜작 쿵짝 네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울고 웃는 인생사 소설같은 세상사 모두가 네박자 쿵짝”
뽕짝 특유의 통속적 가사와 네박자 리듬은 당시 하루 아침에 길바닥으로 나앉은 하소연할 때 없는 이들의 마음을 달래주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송대관은 이후 ‘네박자’ 가수가 돼 버렸다. 힘든 시절마다 대중들의 희노애락과 함께 하며 사랑받아온 트로트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고속도로 여왕’으로 통하는 트로트 가수 금잔디는 10여년만에 다시 돌아온 트로트 흐름의 중심에 서 있다. 최근 싱글앨범 ‘어.쩔.사(어쩔 수 없는 사랑)’를 내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금잔디는 10,20대 아이돌 중심의 가요시장에선 낯선 이름이긴 하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여주인공 금잔디는 기억해도 가수 금잔디의 자리는 없다.
그렇더라도 이번 신곡 ‘어.쩔.사’의 첫 대목을 애써 들어본다면 귀가 번쩍 뜨일게 분명하다. 노래의 첫 대목 ‘당신을 사랑한다고 웃으며 말은 했지만’의 간드러진 비음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 이 목소리’ 싶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어쩔 수 없이’(?) 듣게 되는 그 목소리. 대한민국 방방곡곡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금잔디의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있다. 고속도로 위에서 생업을 일삼는 이들에게 금잔디는 아이돌이나 다름없다. 금잔디의 이름이 붙은 메들리음반의 누적판매량은 무려 1500만장. 2010년부터 매년 댄스, 불후의 명곡, 까페 음악 등 주제별로 재해석해 내놓은 40곡씩 담은 메들리 음반은 길 위의 음악으로 고속도로위의 수많은 시간과 함께 흘러왔다. 그동안 나훈아 주현미 김연자 김용임 등으로 나뉘고 점차 사그라들던 메들리계는 30대 가수 금잔디의 출현으로 새로 판이 짜였다.
메들리 음악으로 3루타를 쳤지만 금잔디는 이미 자신의 앨범을 여러장 낸 중견에 속한다. 특히 2009년 금잔디란 이름으로 처음 낸 싱글앨범 ‘일편단심’은 10년 무명생활을 한방에 날렸다. 고기판 닦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앨범을 내주기로 한 이들에게 두번의 사기를 당해 찜질방을 전전하며 살아온 설움과 아픔 끝에 낳은 음반이 ‘일편단심’이다.
돈이 없어 새 곡을 받지 못하고 절판돼 묻힌 추가열씨의 곡을 공짜로 받았다. 20만원을 빌려 기타 세션을 녹음하고, 또 20만원을 마련해 드럼을 넣는 식으로 어렵게 만들어 내놓았는데 이 ‘일편단심’이 효자노릇을 톡톡이 했다.
“‘일편단심’은 단숨에 인기를 얻었어요, 어르신들이 그만큼 들을 음악이 없었던거죠. 장년들이 10대가 듣는 달달한 노래를 들을 순 없잖아요. 이미자, 나훈아 이후에 정통 트로트가 없었던 거에요.”
즉각 반응이 왔다. 메들리 음반을 내는 회사에서 목소리가 신선하다며 제의가 왔다. 그는 남의 노래 부르는게 마뜩치 않았지만 내 노래를 더 많이 들려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제안을 했지요. 팔아서 수익이 나면 그걸로 더 많은 유통라인을 만들어서 더 많이 보급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요.”
밀리언셀러 가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몫은 거의 없다. 그래도 금잔디는 고속도로를 장악하며 ‘고속도로 여왕’이 됐다.
“트로트는 늘 수요가 있어요. ‘어머나’의 가수 장윤정이 2000년대 초 트로트를 부활시켜 대중적인 큰 인기를 얻은 것처럼 우리의 한과 흥을 가장 잘 담아내는게 트로트거든요. 그래서 트로트가수로 데뷔하려는 이들도 많고 음악관계자들도 관심이 높죠.”
그는 최근 트로트가 서서히 주목 받기 시작하는게 반갑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정통 트로트의 맥잇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답답한 심정이지만 점점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트로트가 돌아와준 것만 해도 고맙다.
“흔히 트로트는 행사성 음악으로 웃음을 유도하는 노래로 여기지만 그게 아니에요. 말로 표출하지 못하는 우리네 삶의 한과 정서를 표현해내는 수단인데 행사장에서 만나는 노래가 돼 버려서 안타까워요.”
실제로 금잔디의 ‘일편단심’은 치유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의 노래를 듣고 노래현장마다 쫒아다닌 한 여성은 병을 고쳤고, 우울증에 걸린 주부, 실어증에 걸린 노인 등이 상태가 나아져 그의 열성팬이 됐다는 얘기다.
금잔디를 ‘공주’라 부르는 그의 팬클럽 ‘잔디랑' 회원은 6000여명으로 40~60대가 주축이다. 하루에 4~6건씩 서울, 부산 각지를 오가며 활동하는 그를 위해 생업을 접고 직접 운전을 해줄 정도로 ’사생팬’(?)도 여럿이다.
지역축제현장에서 금잔디는 초청 1순위다. 세월호 침몰로 지역축제가 다수 취소됐지만 어느 지자체에선 짬을 내지 못하는 그를 위해 헬기를 띄우겠다는 제안을 했다.
무엇보다 금잔디의 소망은 트로트의 대중화다. 어르신들 뿐 아니라 10대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일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다.
“가수는 무대 위에서만 활동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노래로만 다가가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방송활동을 하고 있어요. 저를 통해서 트로트가 이런거구나 하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무엇보다 화가 났을 때 노래방에서 속을 달래줄 수 있는 것, 그런데서 금잔디의 노래가 툭툭 튀어나올 수 있게 하는 게 꿈이에요.”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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