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여자가 있었다. 여자라면 의례적으로 차야 하는 그 억압에서 그녀는 탈출을 하고 싶었다. 어릴 적 그녀는 개에 물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개를 죽여 버렸다. 결혼 한 영혜는 어느 날 육식을 하며 피범벅이 된 자신을 꿈에서 본 후 냉장고의 고기를 다 버려 버린다. 육식을 하지 않고 야위어 가는 그녀는 언니 집 집들이에서 아버지에게 호통을 받는다. 아버지는 끝내 영혜의 입속으로 고기를 쑤셔넣는데 영혜는 반항을 하고 손목을 긋는 자해를 하며 병원으로 간다. 상식에 어긋난 그녀와 살 남자가 있을까? 그녀는 남편과 헤어진다. 영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언니 인혜로부터 들은 형부는 그녀에게 묘한 감정을 가진다. 그는 바디 페인팅에 관심이 많은 예술가였는데 처제를 모델로 삼는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는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처제와의 성관계를 하는 장면을 테이프에 담는다. 그 영상을 본 인혜는 영혜와 남편을 정신병원에 가두어 버린다. 남편은 구명 운동을 하며 정신병원에서 풀려나갔으나 영혜는 이제 모든 먹는 것을 거부하며 나무가 되고자 한다. 그런 동생을 바라보며 인혜는 그녀를 더 큰 병원으로 옮기고자 한다. 인혜는 영혜에게 이 모든 것이 꿈인지도 모른다고 속삭인다.
가부장적 아버지의 폭력성을 닮고 싶지 않았던 영혜. 불현듯 나타난 꿈은 영혜에게서 자신 역시 폭력성을 지닌 인물임을 깨닫게 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그게 뭐가 중요해.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며 채식주의자로서 자아해방을 꿈꾼 것이다. 영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편, 아버지, 형부는 영혜의 권리를 침해하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는 행여 상식과 정의라며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 것은 아닌지 소설은 독자에게 묻고 있다. 예술을 빙자하며 처제를 이해하며 다가온 형부는 그녀를 오로지 성적 대상으로 바라본 폭력적 인물이다.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게 아니라 소유물로 취급하여 영혜의 자아를 침해하는 존재란 것이다. 영혜는 왜 나무가 되고 싶어 했을까? 나무는 어쩌면 누구의 자유도 침해하지 않는 순수한 자기 해방의 주최가 아닐까? 우리는 각자가 서 있는 풍경에서 상대방을 바라본다. 자기 색깔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누구도 타인을 헤치지 않는 범위에서 폭력에 항거하고 자아 해방의 꿈을 꿀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정해진 길을 벗어난 위치의 사람은 더 이상 현실 세계의 내비게이션으로 설명할 수 없다. 흔히 억압받는 자에게는 입이 있어도 언어가 없다고 한다. 현실의 언어와 상식으로 설명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현실의 기준으로는 그저 ‘미친’ 상태이다. 영혜는 어쩌면 현실의 기준으로는 미친 영혼의 소유자인 것이다.
『채식주의자』는 결국 폭력에 대한 이야기로 정의할 수 있겠다. 소설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집중한다. 이런 일은 지금도 후진국은 물론이거니와 선진국에서도 만연하다. 소설에 드러난 폭력적 사건을 들여다보자. 권위적인 아버지로부터 영혜가 매를 맞는 장면, 형부의 강간, 육식 강요, 자해, 정신병원 수용 등. 목적과 수단이 달라져도 대상은 언제나 여성의 몸이기에 이 소설은 페미니즘을 자처한다.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여성을 그렸다. 영혜는 채식주의자라는 가명을 쓰고 여성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고 사회에 좌절한다. 소설을 쓴 시기(2002년-2005년)와 지금은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많은 변화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변화를 감안하며 책의 의미를 나름대로 분석해 보기로 한다.
책이 채식주의자가 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채식주의자가 더 깨끗한 영혼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채식의 의미를 새겨 보게 되었다. 흔히 채식주의자들은 인간 건강에 도움이 되고 지구상에서 생존할 수명을 높이는 데에는 채식주의 식단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싸서 그렇지 인조고기도 상당한 인기다. 식물 세포로 배양한 연어를 먹어본 적이 있는가. 동물 보다는 식물배양으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 가격만 합당하다면 좋을 것 같다. 동물 사육만큼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커피를 재배하는 땅의 88%가 2050년쯤에 사라진다면? 커피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핀란드에서 식물세포를 배양해 커피를 만드는 방법에 몰두하고 있다. 식물의 성체가 아닌 세포를 통해서 이 모든 목적을 도모한다고 하니 대단하지 않나.
식물세포 배양을 통해 추출한 유효물질들의 성장성이 우수하다. 화장품, 향수 외에도 의약품, 건기식, 식물자원 등으로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고 농작물 위기가 현실화됨에 따라 식물세포 배양, 생산 기술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인조고기를 먹고 출장·여행을 위한 항공기 이용도 줄였다고 밝힌 것은 유명하다.
나무는 어떤 존재일까? 채식주의자의 초판 표지 그림은 에곤 실레의 『네 그루의 나무』다. 나무는 같은 수종이나 줄기, 가지, 잎에 덮인 모양은 제 각각이다. 자신을 가린 잎사귀를 멀리하고 세상과 마주하는 나무는 진정한 자아 찾기다. 인간이면 누구나 추구하기 쉬운 돈, 성공, 권력, 명예욕은 자신도 모르게 매여 살게 한다. 이런 경우 진정한 자아를 찾기 어렵다. 나무 옆에 돈다발을 던져보라. 나무가 좋아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영혜는 인간이 가진 집착을 버리고 놓아주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달라고 항변하고 있다. 어쩌면 그런 주장이 가능하지 않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녀의 태도는 그저 이상향일지도 모르겠다.
노벨 문학상을 탄 한강의 책 『채식주의자』는 경제학적으로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성인의 어린이에 대한 언어폭력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약 3000억 달러(2390억 파운드)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연구결과가 세계보건기구(WHO)와 대학이 올해 주최한 아동 언어폭력에 대한 첫 국제회의에서 발표됐다. 중국 농과대학과 조지아 주립대학 교수 연구팀은 캄보디아(1212명), 케냐(1099명), 콜롬비아(1415명), 몰도바(906명) 등 4개국에서 아동 언어폭력의 비용을 계산했다. 연구결과 4개국 아동 언어폭력의 평균 경제적 부담은 국내총생산(GDP)의 0.34%였다. 이를 전 세계 GDP에 적용했을 때 매년 약 3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소아 언어폭력으로 인한 손실이 유방암과 간암에 대한 해당 추정치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다. 고혈압성 심장질환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그 폭력의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중남미에는 가정폭력과 여성에 대한 극심한 차별이 난무하다.
소말리아 출신의 세계적 모델이자 인권 운동가인 와리스 디리(Waris Dirie)는 엄마에게 쓰는 화해의 편지에서 말한다. “엄마는 지금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사랑하고 나는 미래의 아프리카를 믿습니다. 자신들의 손으로 미래를 만드는 강하고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 사는 아프리카를 나는 꿈꿉니다.”
소말리아 사막에서 유목민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자신이 살던 부족의 다른 여자아이처럼 음핵을 제거하는 여성 할례를 당했다. 그녀가 14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그녀를 낙타 다섯 마리와 바꾸는 조건으로 60대 남자에게 시집 보내려고 했다. 소말리아 외교관이었던 이모부의 도움으로 미친 듯이 도망친 그녀는 영국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패션 잡지의 표지모델로 활동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다. 뉴욕으로 이주한 후 세계적 화장품 회사 레블론, 로레알과 계약하며 승승장구 했다.
개발 경제학계의 ‘선한 사마리아인’ 아마르티아 센의 철학을 살펴보자. 센은 불평등과 빈곤 연구의 대가이다. 그는 노벨경제학상 상금 760만 크로네를 모두 소녀들을 가르치는 인도 재단과 남녀평등에 땀 흘리는 방글라데시 재단에 내놓았다. 센을 경제학자들이 날카로운 지적 능력과 부드러운 인간미를 두루 갖춘 경제학계의 양심이자 경제학계 테레사라 부르는 이유다. 센은 정의를 중시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한 사람이다. 하지만 정의의 개념을 하나로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완전한 정의가 무엇인지 찾기보단, 현실에 있는 명백하고 확실한 불의를 찾아서 막자”고 주장했다. 경제학에 자본이 중심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인간 중심의 경제성장만이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한 마음이 따뜻한 인물이다. 센에게서 한강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면 과언일까? 소설 속 마지막 글을 음미하며 남녀평등과 폭력에 대한 저항을 생각해 본다.
조용히, 그녀는 숨을 들이 마신다. 활활 타오르는 도로변의 나무들을, 무수한 짐승들처럼 몸을 일으켜 일렁이는 초록빛의 불꽃들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아니,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그녀의 눈길은 어둡고 끈질기다.
이 구절을 보며 젊은 남성들은 또 다른 불평등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여하튼 서로 화합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자.
한강(1970-)은 대한민국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대중적인 재미와 거리가 먼, 인체를 주제로 한 불편하고 파격적인 소설을 쓰는데 대표작으로는 〈내 여자의 열매〉와 이상문학상 수상작 〈몽고반점〉이 있다. 〈아기 부처〉는 한강의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에 수록된 중편 소설이며, 〈몽고반점〉은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3편의 연작 《채식주의자》는 제작비 3억 원대의 독립영화로 제작되어 흥행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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