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부계, 내용은 모계?”

최근 종방된 드라마 ‘로열패밀리’에는 ‘며느리의 난’이라는 말이 눈길을 끌었다. 시어머니가 수장인 재벌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고부간 권력암투 벌이는 모습을 소재로 삼았는데, “그럴수 있다”는 공감이 적지 않았다. 며느리와 시누이의 경쟁, 며느리와 시아주버니 간 갈등은 현실의 로열패밀리에도 있다.

2006년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 2007년 ‘하늘만큼 땅만큼’, ‘행복합니다’, 2009년 ‘미워도 다시 한번’ 등 요즘 드라마의 상당수가 장인장모를 부양하는 사위의 갈등과 행복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시부모 모시겠다’는 여대생보다 ‘장인ㆍ장모 모시겠다’는 남학생이 40%가량 더 많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태어날 자식의 성별 선호도는 딸이 아들을 제친지 몇 년 됐고, 아들 못낳은 회한을 담아 딸에다 붙인 ‘후남’,‘계남’,‘말녀’라는 이름은 30대미만 연령대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재혼녀-초혼남 커플수가 이른바 ‘재취’로 표현되는 초혼녀-재혼남 부부 수를 넘어선지는 한참 됐다.

가정경제의 주도권이 여성에게 넘어간지는 수십년이 지났고, 과거 금녀구역이나 다름없던 법조계, 공직, 전문직, 사관학교 등에서 딸들이 세를 확산하는 ‘여풍당당’이라는 헤드라인, 매맞는 남편의 증가, 할머니가 낸 이혼소송, 전업 (남자) ‘주부(主父)’의 삶과 관련한 소식은 더 이상 뉴스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가정내에서 대화의 상대자에서 배제된 아버지가 늘었고, 인터넷에서 회자된 ‘엄마,강아지,냉장고는 있어서 좋은데, 아버지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철부지의 글은 가부장의 몰락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여학생과의 경쟁을 피하려 남녀공학보다 남고를 택하려는 남학생도 적지 않다는 소식은 우리 아들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여필종부(女必從夫)’로 대표되는 가부장적 유교의 전통이 남아있는 대한민국 가정에 ‘여성중심’의 색채가 짙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모계사회로 가는 것이냐’는 물음에는 논란이 많다. 가족의 틀과 제도는 여전히 가부장적 요소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이 쌓이면 본질도 바뀐다고 하지 않았던가. 작금의 여러 사실들은 모계로의 질적 변화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성에게 치우친 가정내 권력구도를 재조정하는 ‘신(新)양성주의’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직장을 붙잡고 늘어지며 가족 부양에만 혼신을 다한 아버지가 가족과 온정을 나눌 기회를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하고, 한편으로는 봉건적, 권위적 사고에 매몰된 아버지들의 의식 전환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어느 한쪽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닌 모두의 노력으로 극복해야 ‘가족형식과 가정내 권력구도 간 모순’을 극복하고 상호존중에 기반한 새로운 양성평등의 문화가 가정내 정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임현진 서울대 교수는 “영어 female(여성)속에 male(남성)이 있고, womam(여자)속에 man(남자)가 있는 것은 남성은 여성을 떠날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면서 “일부 학자들은 모계사회가 부계사회를 거쳐 다시 모계로 환원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가정내 여성의 권력이 강해졌다고 해서 남성의 형식적 실질적 권위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모계사회’로 가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다만 남성이 구시대적 가부장제의 마인드에서 벗어나 가정내 화합을 도모하고 양보하는 것은 요즘 시대의 대세가 되고 있다”면서 남편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논문을 통해 “오늘날의 가족이 일터와 구별되는 휴식의 공간이자 정서적 공동체로 이해할 수 있는데, 유교가족 틀 속에서 자식과 여성은 가부장의 관리와 통제를 받는 존재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가질수 없었다. 이는 전제군주가 인민을 지배하는 원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분석한뒤, “대립과 차이를 인정하는 항려(伉儷:남편과 아내가 이루어진 짝)는 어느 한쪽의 지배와 다른 한쪽의 종속을 용인하지 않는다”면서 앞으로의 가족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함영훈 선임기자 @hamcho3> 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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