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날개에 숨긴 칼 (34)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권도일이 도종호 상무와 로비스트 송달민을 다시 만난 것은 꼬박 일주일 만이었다. 언젠가 함께 만나 술 마시고 2차까지 단행했던 그 술집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세 사람은 달력에 X표를 쳐가며 하루하루를 셈하고 있었다. 물론 날짜를 꼽는 행위는 같았으나 바라는 바는 정 반대였다. 권도일이 기한 마지막 날까지 ‘치타’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면, 도종호, 송달민은 그가 좌절하는 꼴을 보기 위해 안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 여태껏 1974년 산 치타를 찾지 못했으니 당신은 아웃이요, 아웃!”

도종호 상무는 가슴 속으로부터 스멀스멀 치고 올라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이렇게 호통 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깍듯하게 권도일 전무님이라고 부르던 호칭도 은근슬쩍 당신이란 말로 바뀌어 있었다.

“아웃이라면… 저를 랠리에 참여시키지 못하시겠다는 말씀인가요?”

“그런 뜻입니다. 감히 회장님 2세 분의 명령을 어겼으니 결과야 뻔하지요.”

“꼭 1974년 산 치타로 출전할 필요가 있을까요?”

“치타야말로 우리 회사가 이 세상에 처음 내놓은 영광스러운 차 아닙니까? 이를테면 당시의 영광을 오늘날 재현하자는 것입니다. 확실한 명분을 살려서 대대적인 언론플레이를 하자는 것이 2세의 뜻입니다. 그래서 레이싱계의 지존이신 권 전무를 드라이버로 선택하신 것이고요. 다 낡아빠진 1974년산 치타를 끌고 랠리에서 입상할 실력을 지닌 사람으로 당신을 꼽았단 말이지요. 1974년 산 치타가 아니고 요즘 새로 만들어진 고급차로 출전하려면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면서 당신을 드라이버로 쓸 이유가 없단 말입니다.”

도종호는 소파 뒤로 드러눕듯이 몸을 발딱 젖혀가며 거만을 떨고 있었다. 그가 몸을 뒤로 젖힐 때마다 손에 들고 있던 양주가 흘러 넘쳤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송달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재벌 2세의 명령을 어기게 되었으니 근심스러울 만도 한데 오히려 그의 얼굴엔 화색이 넘치고 있었다.

“당신도 참 안 되었소. 그깟 똥차 하나를 못 구해서 신세를 망쳐?”

“말씀이 너무 과하십니다. 신세를 망치다뇨?”

“당신을 거성재벌에서 붙들고 있는 까닭은 5대륙 관통 랠리에 대한 기대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기대에 부응하긴 커녕, 참여조차도 못 한다면 거성에서도 당신을 잡고 있을 필요가 없지요. 토사구팽이라고… 평소에 토끼를 잘 잡아오던 개도 사냥이 끝나면 잡아먹는 판인데, 사냥조차 못하는 개를 어느 짝에 쓸까요?”

권도일은 울컥 피가 솟았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 맞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 부친이 창업했던 블루 아우토의 주식마저 이미 거성에 넘겼으니 랠리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자신은 빈털터리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자! 술값은 내가 낼 테니 당신은 술이나 실컷 마시고 취해버려요. 어차피 끝장 난 인생, 막장 부르스 아닙니까?”

“거 참 명언이십니다, 도 상무 님. 막장 부르스라…”

도종호와 송달민은 잔을 맞부딪치며 껄껄 웃어댔다. 하지만 그들의 오만방자한 태도에도 권도일은 묵묵부답,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었다. 까짓, 혼자 몸이라면 당당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평생의 한으로 담아두고 있는 복수… 유민 회장을 거꾸러뜨리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수모는 참아야만 할 것이다. 반신불수로 누워계시는 아버지 권일주의 뜻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므로.

“도와주십시오, 상무님!”

권도일은 이렇게 말하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예상대로 도종호와 송달민의 태도는 냉랭했다. 결국 그는 조용히 일어서서 탁자 옆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그제야 도종호와 송달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근엄한 목소리로 말을 잇기 시작했다.

“팬티만 입고 빌 수 있겠나? 언젠가 우리가 당신에게 브리핑하던 그 모습 그대로 말이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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