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아침, 최강대국 미국은 풍요롭고 평화로웠다. 연방 정부는 재정 흑자였고, 브렌트유도 배럴당 28달러로 안정돼 있었다. 닷컴 신화 붕괴로 잠시 흔들렸던 미국 경제도 회복세였다. 미국을 위협하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유가는 배럴당 115달러로 5배 가량 폭등했고, 미국 정부는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예멘 등지에서는 여전히 ‘테러와의 전쟁’이 진행 중이다.
미국의 부채위기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요소가 됐다.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란 사상 초유의 사태는 ’슈퍼 파워’의 몰락을 확인시켜주는 듯 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T)는 6일 ’헤게모니의 종말’이라는 기사에서 9·11 테러 이후 미국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변화를 분석했다.
FT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고, 그의 호전적인 일방주의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지위를 약화시켰다”고 설명했다.
부시 행정부는 9·11테러를 계기로 미국의 중심으로 세계를 재편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2조 달러가 넘는 막대한 예산을 전비로 쏟아부었지만,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9·11 테러 공격의 희생자보다 2배 이상 많은 미군 전사자가 속출했다. 막대한 전비는 국가 재정난을 불러왔다. 부시 전 대통령이 바라던 미국 중심의 국제사회도 더 멀어졌다. 자기 편에 서기를 강요했던 미국에 세계의 민심은 등을 돌렸다. 미국의 패권적 지위도 흔들렸다.
미국 영토 내 테러는 줄었지만 발리(2002년), 마드리드(2004년), 런던(2005년) 등 여러 나라에서 폭탄 테러는 멈추지 않았다.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이후 알 카에다는 쇠락했지만, 여전히 위협적이다.
올초부터 리비아, 시리아 등 중동에서 민주화 열풍이 불고 있으나 미국은 뒷전에 밀려나있다.
그 사이 중국은 미국에 필적하는 G2로 급부상했다. 미국과 유로존 (유로화 사용 17개국)이 재정위기로 시달리면서 세계 경제의 중심 축은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 신흥시장으로 옮겨졌다.
FT는 “중국은 한때 미국에 적도 동지도 아닌 상대였지만, 최근 중국은 환태평양을 지배하면서 미국에 대등한 지위로 맞서고 있다”면서 “중국이 계란, 시멘트, 금 등의 최대 소비국으로 성장해 세계시장을 이끌고 있고, 자동차 시장은 미국보다 규모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FT는 10년동안 가장 의미심장한 국제지정학적 변화는 전쟁터나 아닌 금융시장에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FT는 유럽과 미국의 재정위기로 국제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미국은 위축됐고, 유럽은 중심부에서 밀려났으며, 아시아만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지적했다.
9·11테러 이후 10년만에 국제 질서가 다극 체제로 급변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에 실패한 미국이 군사적 패권을 잃은데이어 경제적 패권마저 내놓을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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