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0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25
레이싱 스쿨 전용 스피드웨이인 줄은 알았지만 개인을 위한 전용 시간대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를 테면 유호성은 하루 한 시간 동안 전용 스피드웨이를 혼자 누비며 드라이빙 테크닉을 익히는 특혜를 부여받은 셈이었다. 누구로부터? 물론 그의 아버지 유민 회장으로부터! 어떻게? 물론 돈 보따리를 풀어서였다.
“대통령 골프라고 들어보셨어요? 앞 팀 뒤 팀 다 빼버리고 느긋하게 라운드를 즐기는 골프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건 대통령 레이스입니다, 도련님. 안 그래요?”
‘돈이 웬수지, 돈이 웬수야’… 이걸 일본말로 뭐라고 하는지는 몰라도, 일본 사람인 서킷 관리인이 마치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만 같았다. 낯이 뜨거워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유호성은 곧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아버지 유민 회장의 깊은 뜻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른바 비밀 훈련!
“국가대항 A매치 축구경기를 할 때에도 연습경기조차 언론에 공개하길 거부하잖아요? 아버님이 하루 한 시간씩 서킷을 통째로 빌린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겠지요. 난 장차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5대륙 관통 랠리경기에 나갈 사람이니까요.”
유호성은 서킷 관리인의 따가운 시선을 일축하며 차 한 대를 대여받아 서킷으로 나아갔다. 여태까지 그를 수행 감시해왔던 유도 4단과 특공무술 3단도 서킷을 향해 늠름히 빠져나가는 그 차의 뒷모습을 보며 또다시 감격하기 시작했다. 오너와 종업원의 관계에서도 사제 간의 정은 싹트는 법, 그동안 겪어 온 모진 훈련과정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스쳐가는 모양이었다.
막상 대여 받은 차를 몰고나오니 웬걸, 3페달을 갖춘 MT차가 아니라 2페달로 이루어진 AT차였다. 2페달 차량에서는 시프트 웍도 문제였지만 스포츠 드라이빙의 기본이고 묘미라 할 수 있는 힐앤토(Heel&Toe)를 감행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 테크닉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타임 업을 이루는 데에 문제가 많게 된다.
힐앤토란 코너 바로 전에 브레이킹을 하면서 시프트 다운을 하고, 클러치를 연결하기 전에 엔진의 공회전을 높여 연결해내는 기술이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오른쪽 발끝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서 동시에 발뒤꿈치로는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아 엔진 회전을 높인다는 뜻이다.
그래도 알아듣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더 쉽게 설명하자면… 하여간 최고 속도로 코너를 돌기위해 써먹는 기술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아무리 연습과정이라고 해도 그 중요한 기술을 써먹을 수 없다니….
어쩔 수 없이 유호성은 왼발 브레이킹을 써가며 코너를 돌기로 작정했다. 따지고 보면 F1이나 WRC 세계랠리선수권전에서도 왼발 브레이킹이 오히려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이다. 보통 사람들은 AT차일 경우 브레이크 페달을 오른발로 밟지만, 그럴 경우 액셀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바꿔 밟는 과정에서 시간 로스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코너 진입에서 브레이킹을 시도할 즈음에 발을 옮기다보면 가속도 못하고 감속도 이루어지지 않는 어정쩡한 빈틈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어쨌든 발을 옮기느라 시간을 잡아먹게 되니 드라이버에겐 쥐약인 셈이다.
“아이쿠! 도련님이 왜 저러지? 어째서 차가 울컥대는 거야?”
“돈만 쏟아 부었지 운전 실력은 젬병이로구만…. 차라리 그 돈을 나한테 주지. 그러면 특공무술 유단자로 만들어줄 텐데, 그렇지 않습니까? 형님!”
“입 닥쳐, 시끄럽다. 그나마 간당대는 모가지마저 잘리려고 나불대는 거냐?”
“답답하다는 말이지요.”
연습과정 없이 왼발로 브레이크를 밟으면 누구나 힘 조절을 완만히 하지 못해서 차가 울컥거리게 된다. 적어도 사흘 이상 훈련을 지속해야만 컨트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모습을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바라보고만 있는 유도 4단과 특공무술 3단은 그저 혀를 끌끌 찰 따름이었다.
하지만 유호성은 비로소 명실상부한 레이서가 되었음을 스스로 감지하고 있었다. 총 길이 2125m 에 이르는 텅 빈 경주장에 관중이 있을 리 만무했지만, 그는 지금 3만명이 넘는 관중들의 뜨거운 환성과 숨결을 느끼는 중이었다. 환상이었다. 비록 미숙한 왼발 브레이킹 때문에 차가 울컥대긴 했지만 그의 가슴은 서서히 뜨거워지는 중이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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