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해마다 5월, 지난 9년간 안방을 찾았던 MBC ‘휴먼다큐 사랑’이 돌아왔다. 9년의 시간동안 시청률은 부쩍 줄었지만 몇 개의 숫자보다 가치있는, 묵직하고 따뜻한 ‘사랑 이야기’는 절망이 삼켜버린 안방에 금세 희망을 채워넣었다.
지난 6일 MBC ‘휴먼다큐-사랑’ 첫 회분이 배우 유인나의 담백한 목소리와 함께 안방을 찾았다. 1회 방송의 주인공은 아동양육시설 삼혜원(전남 여수)에 살고 있는 듬직이와 세 명의 친구들. 가정 형편 때문에 부모들이 돌봐줄 수 없는 아이들이 또 다른 가족으로 지내고 있는 삼혜원, 그 곳에서도 202호에 옹기종기 뿌리 내린 네 명의 아이들이 안고 있는 사연은 저마다 다르다.
뇌병변 1급 장애를 가진 임듬직과 듬직이의 수호천사 염예린, 먹방 샛별 최은별, 떼쟁이 막내 김제희. 날 때부터 너무 많은 이별을 겪고 있는 아이들은 삼혜원에 와 여러 명의 엄마와 가족같은 친구들을 만났다.
듬직이는 출생 이후 장애아 보호시설에 가야 했지만, 국내 시설의 여건이 허락치 않아 같은 영아원에서 머물던 예린이와 함께 삼혜원에 오게 됐다. 동갑내기 두 친구는 그래서 더 각별하다. 강직성 뇌성마비로 하루종일 바닥에 누워있어야 하는 듬직이의 시선을 맞추려 예린이는 듬직이의 곁에 누워 살인미소를 보낸다. 꼬마 친구들의 귀여운 장면들만 놓고 보면 삼혜원은 평화롭고 달달하지만, 아이 넷이 모인 곳엔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은별이와 제희는 앙숙이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허기가 그치지 않는 듯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은별이는 먹성 좋게 어른의 음식을 먹어치운다. 막내 제희에게 늘 장난을 거는 것도 은별이다. 제희의 장난감을 짖궂게 빼앗아 집안이 떠나갈 듯 울음을 터뜨리게 하는 것도 은별이다. 그런 은별이도 음식을 마다할 때가 있다. 은별이를 돌볼 여력이 안돼 가끔씩 안부만 전하는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다. 때문에 함께 생활하는 삼혜원 엄마들의 사랑을 더 많이 갈구하고, 그 사랑이 채워지지 않을 때 서럽게 눈물도 흘린다.
제희는 잘 울고 떼도 부리지만, 재활훈련으로 하루도 견디기 힘든 형 듬직이에게 초코우유를 가져다주며 “형아도 맛있어?”하고 물어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막내다.
한창 사랑만 받고 자라야 할 나이에 상처가 더 많이 새겨진 아이들, 어른들의 보살핌이 필요할 나이에 만나게 된 아이들은 자신보다 조금 더 불편해보이는 듬직이를 사랑으로 돌본다. 음식을 나눠주고, 장난감을 챙겨주고, 신발을 닦아주며 작은 어깨를 조금씩 내어준다.
가족이었기에 이별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듬직이가 예쁜 신발을 신고 친구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내일을 그리기 위해선 전문적인 재활치료가 필요했다. 다시 찾아온 봄에 듬직이는 삼혜원을 떠나 장애인 거주시설로 몸을 옮겼다. 삼혜원과는 불과 30분 거리, 보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에겐 이별이 서럽기만 하다. 차마 말은 못 해도, 듬직이의 커다란 눈망울엔 “듬직이 가지마”를 쉼없이 말하며 울부짖는 예린이, 듬직이를 태운 차가 떠난 뒤에도 한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는 막내 제희, 무심한 듯 보여도 작은 주먹으로 눈물을 훔쳐내는 은별이와 삼혜원 엄마들의 모습이 꾹꾹 새겨진다. 새로 찾은 시설에선 이미 ‘미소천사’ 듬직이를 환영하는 가족들이 모여있고, 듬직이는 자신이 살아가야할 환경을 금세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묵묵히 고되기만 훈련을 받는다.
보름이 지나서야 다시 만난 삼혜원 엄마 품에 안기자 듬직이는 그제야 그리움과 서러움을 쏟아낸다. 차마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굵은 눈물을 흘리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보고서야 환한 미소를 짓는다.
‘사랑’의 힘은 컸다. 작은 아이들의 사랑 앞에서 시청자들은 희망을 봤고, 따뜻함을 공유했다. 듬직이와 삼혜원 아이들의 이야기에 방송 이후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블로그 등지에는 시청자들의 후기가 이어졌다. 한 네티즌(ID preg******)은 자신의 블로그에 “가족의 소중함, 사랑이라는 커다란 힘과 내 자신을 돌이켜보게 한다”며 “아이들이 희망을 찾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다시 한 번 눈시울이 불거진다”는 글을 남겼다. 또 다른 네티즌들은 “꽃보다 예는 천사들, 앞으로 더 많은 상처와 아픔도 잘 이겨나갔으면 좋겠다”는 응원을, “어른보다 크고 따뜻한 아이들의 사랑에 반성하고, 위로받게 된 시간이었다”, “듬직이가 씩씩하게 일어나 친구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날을 함께 기다리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가정의 달 특집으로 2006년 5월 첫 방송된 ‘휴먼다큐 사랑’은 ‘꽃보다 듬직이’ 편을 시작으로 다음달 2일까지 매주 안방을 찾는다. 오는 12일에는 ‘날아라 연지’, 19일에는 ‘수현아 컵짜이 나’, 6월 2일 ‘말괄량이 샴쌍둥이’ 편으로 꾸며져, 각각 오후 11시 15분 방송된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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