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아! 그 외국인 있는 밴드?” 지금도 그렇게 ‘불린다’고 한다. 데뷔 초에는 “외국인이라고 안 좋아한다”(해랑)며 방송 출연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보컬 해랑의 이국적인 외모, 일본인이냐는 오해를 받는다는 오천기(드럼), 남미 계열로 본다는 손동욱(베이스)까지. “아직도 그렇게 보냐”고 물으니 “여전히 그렇다”고 한다. “택시 타면 돌아가고. 아니 왜 홍대에서 신촌 가는데 30분이나 걸리는 거죠? 하하”(손동욱)
2000년 밴드를 결성해 올해로 데뷔 17년차가 됐다. 밴드를 알린 것은 데뷔곡 ‘내게 돌아와’(2002)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덕분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부분이 사람들에게 트랜스픽션이 각인될 수 있는 요소였어요. 밴드의 이름은 기억 못 하는데 외국인 닮은 사람 있는 밴드로는 아시더라고요. 장점이기도 하죠.”(손동욱)
오랜만에 트랜스픽션이 새 노래를 발표했다. “록밴드로는 이례적”(해랑)이라는 ‘여름노래’다. 이국적인 남국의 해안에서 넘실거리는 파도를 만나는 경쾌함이 묻어난다. 제목마저 ‘알로하’. “탄산음료가 터지는 사운드”를 통해 청량감도 더했다. 무려 3~4년을 묵혀뒀고, 편곡도 수차례 바뀐 노래다. “꼭 여름에 내려고 했어요. 원래 작년에 발표하려 했는데…”(해랑)
“이 시기를 놓치면 또 포기해야 하니”(오천기) 보컬 해랑은 교통사고로 전치 10주 부상을 입고서도 공연 일정과 레코딩까지 모두 소화했다. 오른쪽 쇄골 골절이었다.
“국내에는 없는 독특한 음색”을 자랑하는 해랑의 목소리와 함께 낯익은 기타 리프가 ‘알로하’에 입혀졌다.
“한동안 하드하고 어두운 이미지로 보여졌는데 ‘내게 돌아와’ 때처럼 무게를 빼려고 했어요. 곡조는 완전히 다르지만 의도적으로 ‘내게 돌아와’ 때의 기타 라인을 넣었죠.”(해랑)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저희가 한창 활동하던 20대 때의 브랜드 가치를 보여주고자 했죠.”(오천기)
트랜스픽션은 독특한 밴드다. 등장과 동시에 주목받았고, 지난 17년 동안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변곡점들을 몇 차례 맞았다. 이미 예정된 일인 것처럼 4년에 한 번이었다. 2002년 ‘내게 돌아와’가 출발이었다면, 2006년 독일월드컵 붉은 악마 공식응원가였던 ‘승리를 위하여’는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었던 두 번째 계기였다.
음반시장이 저물 그 무렵 2집을 발표했지만 “심혈을 기울여 앨범을 냈는데 CD 시장이 사라지는” 쓰라린 현실을 만났다. “다른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 월드컵이라는 기회가 왔어요.”(해랑) 이후 월드컵은 트랜스픽션의 대형 이벤트가 됐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응원가였던 ‘승리의 함성’ 역시 트랜스픽션이라는 밴드의 얼굴과 이름을 또 한 번 알린 계기였다. 빅뱅 김연아 버전의 리메이크도 인기를 모았다.
2012년 KBS2 ‘톱밴드2’의 출연도 또 한 번의 계기였다. “당시가 소속사를 나온 직후였어요. 저희끼리 뭔가를 해보자 했던 시기죠. 그런데 이전 소속사와도 멤버들 간에도 트러블이 잦다 보니 많이 지쳐있었고, 뭘 하려고 해도 수동적이었어요.”(오천기) ‘톱밴드2’의 출연은 “바닥난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팀이 다시 화합할 수 있는 활력소”(해랑)였다.
4년마다 찾아온 절정의 시간들 덕에 세대별로 트랜스픽션을 기억하는 노래도 다르다. “생각해보면 위기였을 때마다 늘 기회가 왔어요. 사실 17년을 이어온다는게 멤버간의 끈끈함 만으로는 힘든게 사실이에요. 그 때마다 굵직한 이벤트가 항상 있었고, 우리 노래에 대한 소구가 있었어요. 트랜스픽션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수밖에 없던 이유였던 거죠.”(오천기)
트랜스픽션은 홍대 클럽을 터전으로 삼았던 전혀 다른 두 밴드의 멤버들이 의기투합해 태어났다. “20세기였죠. 1998년이요.”(해랑) 같은 클럽에서 활동하는 완전히 다른 성향의 밴드였다. 오천기와 전호진(기타)은 중학교 동창으로 전자음악을 주로 해왔고, 해랑과 손동욱은 고교시절 같은 밴드에서 활동하며 글램락을 해왔다. “밀레니엄이 오고 더이상 안되겠구나 싶었죠. 각자 팀을 깨고 2000년에 트랜스픽션을 결성했어요.” 이후 여시현이 합류했다.
개성도 성격도 전혀 다른 멤버들이 모이니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다. “팀을 만들 때 서로 음악성향이 달라 초반엔 고생을 좀 했어요. 사실 ‘내게 돌아와’도 저희가 기획한 의도대로 나온 곡은 아니에요.”(손동욱)
“그 당시 유행하는 모든 걸 넣었죠. 힙합 베이스에 팝적인 멜로디도 넣었고요. 트렌디한 음악을 모두 모아서 냈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했던 게 ‘내게 돌아와’였어요. 멤버들은 랩도 넣자고 했는데 그건 절대 안 한다고 했죠.”(해랑)
이 노래가 ‘터진 것’ 자체가 의외였다고 한다. 혜성같이 등장한 트랜스픽션을 보고 음악 관계자들 역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데뷔 앨범을 낸 첫 주에 작은 클럽에서 팬미팅을 했어요. 16명이 와서 새우깡을 먹었어요.(웃음) 우리 미래는 끝났구나 이런 얘기도 했고요.”(손동욱)
“불과 2주 만에 같은 클럽에 200~300명이 모였어요. 줄이 너무 길어 다 들어오지도 못 했어요. 화장실도 못 가고 2시간 동안 싸인만 했어요. 앨범을 내고 3주 정도 지나니 다음 카페에 회원이 1만 명이 됐고요.”(해랑) “벌써 15년 전 얘기죠.”(손동욱) “그 땐 자뻑도 있었죠. 갑작스럽게 찾아온 관심에 정체성의 혼란도 느꼈고요.”(해랑)
“음악을 떠날 수 없었기에” 그 흔한 멤버 교체 없이 17년을 함께 했다. 지금도 멤버들은 20세기 소년들처럼 모이기만 하면 시끌벅적하다. “유튜브 대신 미군방송 AFKN을 통해 록스타의 뮤직비디오”(해랑)를 보고 자란 소년들은 “성룡과 이소룡을 우상으로 삼던 날들을 지나 건스앤로지스에 열광”(손동욱)하게 됐다.
“그 어떤 댄스가수들보다 록밴드의 퍼포먼스와 스타일이 더 멋졌던 거죠. 록밴드의 무대엔 경계선이 없잖아요.”(여시현)
한 때는 ‘젊음의 상징’이었던 록음악은 이제 트렌드에서 빗겨나 있다지만 트랜스픽션은 “트렌드는 다시 온다”고 믿는다. 그 변화에 트랜스픽션이 있다는 것도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저희 음악은 계속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세대를 초월해 록음악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록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변화하는 거죠.”(전호진)
‘알로하’ 역시 트랜스픽션에겐 ‘진화’이고 ‘변화’다. 데뷔 초의 색깔이 지금의 ‘알로하’로 이어졌다. 손동욱은 “음악은 계속 섞이며 발전하는 것”이라고, “장르를 섞어가며 길을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향후 촘촘히 예정된 공연과 페스티벌 일정을 소화하며 내년 발매를 목표로 한 정규앨범 준비에도 매진할 계획이다. 또 한 번 ‘진화’할 트랜스픽션의 새로운 음악으로 채우겠다는 생각이다.
“저희의 목표요? 롤링스톤즈처럼 60~70세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무대 위에서 연주할 수 있는 밴드요. 무대 위에서 죽는 팀이 되고 싶어요.”(해랑) “그게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여시현)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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